2020/6/15 묵상

만사·2020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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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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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6:5-8, 새번역]
5 나는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여러분에게로 가겠습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서
6 여러분에게로 가면, 얼마 동안은 함께 지낼 것이고, 어쩌면 겨울을 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은,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7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여러분을 만나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고 싶습니다.
8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인정하지 않는 성도들이 있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바울을 마치 품삯을 받는 일꾼으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사도 직분을 맡는다고 여기는 성도들에게 고린도전서 9장에서 말씀한다.

[고전9:3-7, 새번역]
3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변합니다.
4 우리에게 먹고 마실 권리가 없습니까?
5 우리에게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동생들이나 게바처럼, 믿는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6 나와 바나바에게만은 노동하지 않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7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4~8절 말씀은 바울 사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답변인데, 그 답변 중 7절을 보면 바울 본인을 군에 복무하는 사람, 포도원 만들고 가꾸는 농부, 양 떼를 치는 목자로 표현한다. 즉, 이런 수고를 하는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 품삯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답변을 했다는 것은, 바울 사도가 교회로부터 목적 헌금을 받고, 본인의 전도여행에 필요한 물질을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씀한다. 7장에서 말한 바울의 답변은 불만을 가진 성도들에 대한 변명이나 타이르는 말이 아니라 답변이다. 1장에서 말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라는 이 마음이 있는 성도들은 애초에 불만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단 말은 바울의 답변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 여정을 전적으로 책임 져달라는 의미이다. 이 말씀에서 바울의 담대함을 볼 수 있다. 바울의 모든 여정은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길이었다. 이 말씀이 성도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만약 성도들의 불만을 수긍하고 자신의 여정을 책임져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면, 성도들이 가진 불만은 해소할 수 있겠으나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성도들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더라도 여정을 책임져 달라는 부탁을 해서 여정을 할 수 있다면, 성도들은 싫든 좋든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가 맡은 일은 무엇인가?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내는 열심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내는 열심간의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는 열심히 오히려 내 유익을 위한 열심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불만을 가진 성도들에게 위로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것을 뒤로하고 자신이 오해를 받더라도 한 성도라도 더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도록 자신을 내려놓았다.

[요11:38-42, 새번역]
38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하게 여기시면서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어귀는 돌로 막아 놓았다.
39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아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40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41 사람들이 그 돌을 옮겨 놓았다.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시체가 있던 동굴 무덤의 입구에 놓인 돌을 옮겨 놓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나사로의 동생 마르다가 이렇게 말했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주님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이 의미보다는, 내가 그 돌을 옮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하는 불만이다. 예수님은 그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네게 말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보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시점은, 사람들이 그 돌을 옮겨 놓았을 때이다. 사람들이 돌을 옮겼을 때,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셨다. 38절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하게 여기시면서..” 라고 나오는데, 이 비통은 죽은 나사로에 대한 아픔보다는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비통함과 불만을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순간으로 만드셨다. 돌을 움직이는 것으로..!

바울 사도 역시 자신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성도들에게 비통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통함을 풀어주고 오해를 푸는 것보다 더 중요한건, 그들을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시키려는 사도로서의 사명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영광이 임하는 순간은, 성도들이 드린 헌금이 쓰이는 순간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는 그 순간이다. 그렇기에 주님께 항상 집중하고 중심을 드릴 때 할 수 있는 , 작은 순종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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