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9 묵상

만사·2020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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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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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2:12-13]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지난주에 묵상했던 말씀을 더 깊게 묵상하며 내 삶에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드로아에서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라고 당당하게 고백을 할 수 있는 바울의 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정말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며 당한 환난은 살 소망 마저 끊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에게 주 안에서 열린 복음의 문은 하나님 은혜의 행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았던 바울에게는 그간의 고생에 대한 엄청난 은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심령이 편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본인이 개척한 고린도교회의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책망하고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며 보냈던 편지를 통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회개를 하였을지, 다시 참 되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알았을지 너무나도 궁금한 그 소식을 디도를 통하여 드로아에서 듣기로 했었는데,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결국엔 드로아에서 열린 복음의 문을 떠니 마게도냐로 갔다.

마게도냐에서 디도를 만난 바울의 말씀은 7장에 나오는데,

[고후7:5-7]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5절 말씀을 보면 바울의 여정이 얼마나 고난의 연속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여전히 육체적으로 편하지 못했고, 생명의 말씀을 대적하는 세력이 사방으로 공격하여 환난을 당하였다.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다고 말씀한다.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세가지 비유가 생각이 났다. 잃은 양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집 나간 둘째 아들 비유. 잃은 양의 비유를 꺼낸 이유인즉, 결론 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이다.

세가지 비유의 본질은, 예수님은 나 한사람을 위해서도 이 땅에 오실 분이라는 것이다. 아마, 세상에 죄인이 나 혼자였더라도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을 것이다. 드로아를 제쳐두고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기 위해 마게도냐로 간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의 회개의 복된 소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열린 문의 도착점이기 때문이다. 회개한 영혼을 통하여 위로 받게하시고 기쁨이 넘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은 나 한사람을 위해 우주를 멈추실 분이시고, 나 한사람을 위로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분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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