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도시 이야기, 혹은 의지와 범주 오류로서 스마트 도시 / 애덤 그린필드

chaewonkang·2020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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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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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에 썼던 일기입니다.)

2017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획 도서로 워크룸에서 출간한 공유도시 시리즈 중 '네트워크'라는 주제 아래 묶인 아티클 중 하나를 읽었다. 애덤 그린필드의 '세 도시 이야기, 혹은 의지와 범주 오류로서 스마트 도시'라는 제목이다.

1980년대, 인터넷/정보통신이 고도로 가속화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합의되었던 신자유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종족 민족주의 (ethnonationalism)로의 전회가 이 합의의 균열에 있어 선명하게 비관적인 결과였다면, 희망적인 변화는 어떤 경계를 넘어 도시와 도시 안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과감한 상상의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네트워크화된 기술 속에 함축돼 있는 듯한 탈중심적 경향'과, 그러한 경향이 기본적으로 만들어내는 권력 구성을 지렛대로 삼아, 네트워크화된 도시 공유지가 어떤 모습이고 전지구적 규모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를 상상해볼 수도 있다." 라고 쓴다. 다만, 그 상상과 실제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타이틀에서 함축하듯 송도, 샌프란시스코, 서울이라는 세 도시를 예로 들어 특징들을 설명한다. 저자는 도시를 어떤 혼돈과 혼란을 복원하고 해독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으로 보지만 동시에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도시계획을 자처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짚어낸다.

"현재 우리는 네트워크화된 기술이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도시 공간 위에 다층화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나는 대개 다국적 기술 공급 업체의 수요의 기초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실리콘밸리의 창업 문화(startup culture)에 뿌리를 둔 방식이며, 나머지 하나는 미묘하되 이 중 가장 유망해 보이며 아직 분명한 윤곽을 드러내지는 않은 방식이다."

네트워크화된 기술 속에 '함축된'이 아니라, '함축 돼 있는 듯한' 탈중심적 경향이라고 쓴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진대, 첫 번째로 기술한 송도의 예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송도 신도시는 '스마트 도시'라는 이름 아래 계획된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한 비전 중 하나였지만, 위계적인 사업주체 (기술공급업체)와 지역 당국이라는 실행주체 사이에 각각의 이해관계와 기술에 대한 무지가 맞물려 빚어낸 비장소 (nonplace)로 전락하고 말았다.

  1. 첫 번째 문제는 지자체 규모의 사업주체들이 유력 공급업체들 (e.g. 지멘스, 아이비엠, 히타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세계 다국적 기업과 한국 내 유명 재벌기업)의 기반 시설, 시스템 통합, 부동산 개발 부문 등에 휘둘리고 있다.

  2. 정부 기관들은 어떤 종류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수요를 가장 잘 충족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만한 조직적 기술 역량이 없어서, 그런 공급업체들이 팔아야 하는 걸 살 수밖에 없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대량으로 조달되는 우버 택시가 전 세계 도시에서 급격히 일어나 기존 대중교통의 관습을 허물고 그 인력을 빼내왔듯이, 에어비앤비가 각 도시의 저가 임대 주거 시장을 해쳐왔다는 건 이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이는 이익을 사유화하고 비용은 아주 노골적으로 대중에게 전가하는 방식이어서, 더이상 그걸 '공유 경제'로 여기는 풍문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런 결과는 그런 서비스가 작동하는 모든 시장에서 감지할 수 있지만, 특히 캘리포니아 만안 지역에서 그런 편이다. 이 지역에서는 인구 분포로 보나 심리적 특성으로 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종종 거의 힘도 안 들이고 알고리즘만으로 합리화하는 편리한 삶을 사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나머지 모두를 위한 공적 영역은 천천히 쇠퇴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리는 분명 더 이상 진보(progress)가 아닌 '혁신(innovation)'만을 논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적 상상의 영역을 (한층 더 빈곤한 영혼인 트래비스 캘러닉(우버 창업자)이나 피터 틸(페이팔 창업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앨론 머스크(테슬라의 최고 경영자)와 제프 베조스(아마존 창업자/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최고경영자)의 기호에 내맡겨버린다."

그렇다면 서울의 경우.

"그리스 건축가이자 활동가인 스타브로스 스타브라이스(Stavros Stavrides)는 진정한 공유지에는 심오한 매력과 함께 근본적인 열림과 다공성의 특질이 있음을 강조한다. (...) 아마도 현재 가장 아이러니한 현상은 한국 특유의 도시계획에 속하는 어떤 측면들이 이미 그런 역할을 꽤 잘 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저자는 한국의 도시들이 "공동생활의 비전을 훨씬 더 잘 성취해내는 비공식적 공간을 견실하게 만들어 노련하게 활용하고 있다."라고 쓴다. "공유지는 국가의 가치나 시장의 가치가 득세하지 않고 오로지 상호성과 연대, 상승적 협력을 위한 여지를 남기는 환경일 때만 의미가 있다. (...) 개발 국가의 동력이 여전히 민족 정서를 강력하게 결속하는 한국같은 곳에서 어떻게 이런 모델이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지만, 분명 그것은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이름을 부여할 만한 도시는 이미 항상 스마트하며, 그런 도시의 지능은 그곳에 살면서 생기를 불어넣는 시민들에게 있다."

결국 '스마트 시티'를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은 결국, 그 도시를 살아갈 사람들이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보다 사람에 입각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을 하나씩 천천히 해소해 나가는 일이다. 저자는 "이런 시스템을 활용할 때 '어떤 종류의 주체성이 생겨나는지'를 아주 신중히 고려해야 하고, 그런 시스템이 출현할 때 그걸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며, 그 답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면 결국 모든 걸 다시 설계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저자는 옛날에도 번화했고, 지금도 번화한, 구 도심 지역과 신 도심 지역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서울 지역에서 나타나는 어떤 특성들을 비교적 희망적으로 썼지만, 이 책이 발간된 3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또 얼마나 빠르게 '기술집약적 전형'을 따르고 있는지...

처음 프로그래밍이라는 분야에 발을 걸치면서부터 끊임없이 드는 생각이다. 매 순간, 기술이 매서운 속도로 인간이 기존에 쌓아올린 인간성에 대한 합의와, 어느 정도로 가늠해 둔 인지의 가능성을 도약시키고 있는 현상을 바라볼 때 마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인간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나 의미를 확장하는 하나의 신체적/정신적 수단으로 기술을 확장하여 취하고 있는 현 시대에, 급속도로 자본화된 기술에는 아직 윤리가 개입할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 공존을 위해 내어준 분야 자체의 여유 영역이 없는 셈이다. SNS나 스마트 기술이 온전히 신자유주의의 미명 아래 발전, 전파, 소유된 시대와 공간에서는 효율성/수익성의 논리가 제 1의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분명 규제가 필요한 영역이지만, 기술 발전에 대한 '규제'라는 이름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을 해소하면서 기술과 함께 생태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가장 '덜'필요한 것이 속도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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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상상력과 기술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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