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이 곧 우리 자신이다

chaewonkang·2020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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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일 많이 생각한 주제는 시간과 기억이다. 내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살면서도, 오늘 아침에 뭘 먹었는지 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나도 제법 자주 그러는데, 여기에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COVID 상황 안에서, 시간과 경험, 기억에 대한 통제권을 개인이 아닌 인류적 차원에서 박탈된 상황에서, 대체 시간과 경험, 기억이란 무엇이길래 그 둘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사람을 이토록 혼란스럽고 답답하게 하는지 고민해 보았다. 왜 사람들은 기억과 경험, 시간 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는 것이 주는 우울감에 빠질까? 어쩌면 그것들이 원래 나의 통제권 안에 있었다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과 기억은 개인이 운용 가능한 자산 같은 것이므로 그것을 잘 운용하면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해 보이고, 이것이 꽤 긴 시간동안 세상의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시간과 기억이 애초에 개인이 통제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간과 기억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직관적이고 단단한 실체가 있을까?

기억은 포인터 연산과 비슷하다. 메모리에는 모든 학습의 결과가 자리잡는다. 그리고 포인터의, 포인터의, 포인터의, 포인터의, 포인터의.... 3차원 포인터 연산만 해도 그 복잡도를 해석하려면 금방 차원의 저주에 빠지고 마는데, 우리 기억은 수억 차원의 포인터는 될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상호작용으로부터 뭔가를 학습한다. 자의로 이루어지는 학습은 없다. 왜냐하면, 개인의 유일한 존재만 가지고 형성할 수 있는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유일한 기억이 혼자 빈 방에 앉아 있는 기억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방을 이루는 입자들과 나라는 변수 사이에 상호작용한 결과를 기억하는 것이다.

환경에 노출되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얻어진 데이터는 반복을 통해 기억이 고정화되는 과정을 통해서, 대뇌 피질에 저장된다. 그리고 사람은 각자 받은 교육, 가정 환경, 경험, 미디어, 혹은 감각을 통해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흩어진 데이터를 군집화하고 연결해서 링크를 만든다. 이 링크들이 서로 연결되면 망이 된다. 우주의 은하계처럼, 연결망들의 거대한 집합은 장기 기억이 된다. 집합들은 각기 다른 특정한 패턴을 그리고, 그 패턴은 회상하는 과정을 통해 단단해지는데, 사람은 회상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차곡차곡 담긴 망들을 꺼내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망들을 엮어 또 새로운 뭔가를 만든다. 그러니까 그 연결망들로 엮인 그물이 기억이라면, 기억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의사 결정이나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도구가 된다. 내가 나의 도구로 또 이것 저것을 채집하러 다니면 당연히 도구는 단단해진다. 그러나 섬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또 금방 녹이 슨다.

기억이 존재의 특정 시점의 상태를 포착해서, 저장하고, 다시 꺼내쓸 수 있도록 연결해둔 링크라면 시간은 어떤 존재의 상태 변화를 의미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시간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시간'이라는 단어 하나로 만들기 위해 아주 느슨한 체계로 묶어낸 보편적인 관념일 뿐이다. 시계는 기계일 뿐이다. 태양이 뜨고 지면서 시간이 가고 하루가 가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도는 것이다. 시계와 달력은 언제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지, 내가 파리로 가려면 언제 나를 태워갈 비행기가 도착하는지, 정수기 필터를 몇 주마다 한 번 갈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편리하게 합의하기 위해 거대한 기준을 만든 것 뿐이다. 생일도 마찬가지다. 1년은 왜 365일일까? 누군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왜 24시간일까? 누군가 언젠가 그렇게 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른 시간에 태어나고 다른 시간에 죽는다. 이제 충분히 건강하기만 하다면 놀라울 정도로 오래 살 수도 있다.

그래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숫자는 체계에 불과하고, 체계는 관념에 불과하고, 관념은 지성에 의존하므로, 사실 시간은 어떤 자연의 법칙과는 무관하다. 이를테면 물건을 쥐고 있다가 허공에서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물리 법칙은 자연의 현상이지만, 시간은 흐른다는 문장은 ‘현상’과는 무관한 것이다. 물론 어떤 법칙 또한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인지 혹은 발명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니까 정정하자.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간은 자연과는 무관하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기억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거나 변화할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느슨하지만 거대한 체계일 뿐이다. 시간은 합의된 체계이고, 기억은 개인의 체계이다. 그래서 시간의 목적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보에 대한 셈과 계산, 복잡한 연산에 공통적인 변수를 제공하는 것이고 기억의 목적은 더 잘 예측하고, 더 잘 채집하기 위함에 있다.

그러니 시간과 기억으로 여겨지는 어떤 거대하고 느슨한 관념을 통제해서 더 효율성 높은 인간이 되려고 한다면, 또 누군가에게 되라고 한다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좋은 습관을 만들거나, 만들게 해 주는 것이다. 흄에 따르면, “경험은 과거 대상들의 몇 가지 연접에 대해 나를 가르치는 원리이다. 습관은 미래에도 동일한 것을 기대하도록 결정하는 또 다른 원리이다.” 습관은 정신이 경험을 초월하게 만든다. “습관과 경험은 항상 통합돼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흄은 습관이 경험을 조작할 수 있다고 본다. 습관은 “위조된 경험을 내세워 가장할 수 있고,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은 반복에 의해 믿음을 산출할 수도 있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다. 스스로 만든 좋은 습관은 시간과 기억이라는 거대한 통념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렇게 시간과 기억을 재고하면, 시간과 기억에 대한 무력함으로부터 생겨난 하위 관념인 후회에 대해서도 면역과 비판력이 생긴다.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만이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러니 계획이라는 부담스러운 말보단 작은 습관들을 실천하자. 습관이 곧 우리 자신이다.

(2020.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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