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떻게 프라이버시를 배반했나

chaewonkang·2020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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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깨달으면서도 매일 실패하는 듯이 여겨지는 것. 생각하기 시작하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주제다. 바로 Privacy 보호하기. 하루에 열 몇 시간을 인터넷에 푸티지를 남기면서, 구글링을 하고, 3사 통신사 중 하나를 이용하고, 위치 데이터를 허용하고, 마이크와 카메라를 허용하면서 어떻게 개인이 개인의 정보 보호를 위해 움직일 수 있을까? 우리는 바닷 속 저 어딘가에 묻혀있는, 엄청난 열을 내뿜는 데이터 센터에 매 순간 내 데이터가 전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볼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이에 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NYT 아티클이 있어 찾아 읽었다.

원문은 여기

자본주의는 어떻게 프라이버시를 배반했나

한 때 부를 창출하는 세력은 혼자 남을 권리를 장려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우리가 지금 '프라이버시'라고 부르는 것은 부유하다는 의미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프라이버시는 '부유함'과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사람들 중 아주 소수에게만 해당되거나 아예 해당되지 않는 것과 같았다. 농부, 노예, 농노들은 단출한 거처에서 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간혹은 동물들과 공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들은 삶에서 의미있는 순간들이 타인들과 공유되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제한하거나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과 개인의 방이 있어야 했다. 이것은 오직 부유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현대 문명화의 틀림없는 성취 중 하나인 대중 프라이버시의 확산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업적에 의존한다: 중산층의 출현이다. 불과 300여년이라는 기간동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부와 사유재산의 획득을 통해 그들의 물리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프라이버시의 용어는 물론이고 마침내는 그에 대한 실제적인 권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는, 실질적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란 무엇인가?

프라이버시와 부를 창출하는 세력간의 역사적인 연결고리는 왜 프라이버시가 작전행위 안에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첫번 째로 이 사실은 우리에게 집단 프라이버시는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특성이 아니라, 특정한 경제적 합의에 의한 부산물임을 일깨우며, 결과적으로 집단 프라이버시는 불확실하며 영구적이지 않은 상태의 일임을 말해준다. 두번 째로, 이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리의 기준점은 자본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이것은 변했다.

부의 창출 세력은 프라이버시의 확산에 더이상 호의적이지 않으며 그 기반을 약화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내가 "attention merchants(주의 상인들)"이라고 칭하며, 사회학자 Shoshana Zuboff가 "serveillance capitalism(감시 자본주의)"라고 부른 것들의 출현을 지켜봐왔으며, 페이스북이나 구글같은 테크 자이언트들과, 통신, 전기와 같은 여러 분야들에서 그들을 모방하는 자들에 의한 우리의 개인정보에 대한 상품화를 목도해 왔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피하게 적용되는 역동적인 감시가 비즈니스에 있어서 아주 일상적인 부분인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농노 신분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원하는 미국인들에게 미래는 아직 운명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아주 근본적으로 프라이버시 경제를 개조하는 법 제도를 필요로 한다.

틀림없이, 지금이 프라이버시가 공격을 당한 첫번 째 시대는 아니다. 금주운동의 절정기에 미국의 윤리학자들은 경찰 당국에게 집에 잠입하여 취한 사람이나 간음한 사람, 동성애자들을 체포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추진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전쟁 혹은 사회 불안의 시기를 겪고 있을 때,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주들은 불안정한 권력 속에서 스파이와 광범위한 비밀 경찰 조직들을 이용해 대중의 프라이버시에 대항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프라이버시의 적대자들 중 누구도 그들의 편에 자본주의를 확고하게 내세우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프라이버시가 20세기를 재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의 성과는 1965년 프라이버시(개인 정보)에 대한 헌법의 권리를 대법원에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인 승리가 그것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경제적 권력을 무마해서는 안 된다.

1960년대에 사유재산을 가진 중산층의 출현은 개개인을 그들의 성 안으로 이끌었고, 개개인의 애주가들은 그의 살롱 안에, 개개인의 노동자는 그의 사무실 안에, 그리고 개개인의 어린 아이는 자신만의 방을 갖도록 만들었다. 사적인 물리적 공간은, 모텔이나 대중목욕탕, 댄스클럽과 같은 반-사적인(semiprivate) 공간들과 함께, 그들 고유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냈다(조금 지난 뒤에는, 개인 컴퓨터나 하드드라이브 같은 가상 공간도.). 이러한 배경에서 법적인 사상가들과 활동가들은 프라이버시의 권리, 시선의 대상이 되지 않고 혼자 남을 권리를 즐기는 대중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는 프라이버시의 편에 있었다.

이러한 옛 시대에, 감시는 특별히 이윤을 창출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이론들과 결부된 새로운 기술들은 프라이버시의 경제 구조를 변형시켜 왔다. 인터넷 덕분에, 대중 감시에 대한 비용이 극적으로 하락하면서, 이는 우리의 정보(data)와 우리의 주의(attention)이라는 두 종류의 자산 가치를 증대시켜 왔다. 이러한 자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크고 작은 기업들의 경주는 '감시'를 신흥 성장 산업으로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자본주의는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직도 당신은 아주 많은 양의 자본을 더욱 전통적인 방법으로 벌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들은 가능한 많은 추적 장치과 장비들, 스크린을 우리의 집 안이나 우리의 몸에 가능한 밀착하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 축적된 데이터들은 경쟁력 있는 이점들을 창출하고, 자본은 개인에 대해 알려진 모든 것들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페이스북, 구글, 그리고 온라인 광고 산업에 의해 촉발되었고, 이제 다른 경제 분야에서도 이를 원한다. 콤캐스트나 베리존과 같은 케이블, 통신 회사가 그렇듯 아마존도 전향했고, "스마트" 디바이스가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는 전자 산업 또한 마찬가지다. 또한 많은 고용주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직원들을 감시한다.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감시가 거의 모든 산업과 산업 구조에 침투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몇몇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지속적인 감시의 시대 속에서도, 어쨌든 비밀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광고업자들이나 다른 상업적인 기업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이러한 "spying(첩보 행위)"는 단지 상품을 더 좋게 만들고, 광고들을 더 개인화하는 것일 뿐이다. 최종적으로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다. 그들을 시베리아에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난 10년간 우리가 깨달은 심각한 진실들을 무시하고 있다.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데이터와 감시 네트워크는 다른 것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고, 쓰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페이스북이나 안드로이드가 보관하고 있는 어떠한 개인 정보에 대해, 온 세상의 정부 기관이 접근하려 하거나 도둑들이 훔치려 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정해야 한다.

캠브릿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에서 비슷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페이스북은 수백만 유저들의 정보를 하나의 용도를 위해 수집했다. 그러나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를 위해 일했던 정치적 데이터 회사인 캠브릿지 애널리티카에서는 이 정보를 미국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아마도 우리가 깨달은 가장 심각한 진실은, 당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은 떨쳐내기 힘든 감각일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경험들이 명백히 보여주었듯이, 우리는 우리가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완전히 다르게 행동한다. 대중 프라이버시는 감시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행동할 자유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진정 우리 자신일 수 있는 자유이다. 즉, 영혼과 같은 문제이다.

92퍼센트의 미국인은 더 강력한 프라이버시 보호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의회에서 새로운 주 프라이버시 법(new state privacy laws)와 새로운 프라이버시 법안(new privacy bills)들이 빗발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더 많은 안내, 읽기를 거부하고 클릭해서 넘어가기, 계정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과도하게 복잡한 옵션들 같이, 너무 많은 개입은 소구경(small bore)과 같다. 모서리에서 사색하는 것은 아무 효력이 없다.

정말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관련 법안은 불필요한 감시와 무분별한 개인 정보 축척을 우대하는 것에 대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우리는 기업들이 그들의 고객 개인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예방하는 더 강력한 금지가 필요하다. EU의 "right to be forgotten(잊혀질 권리)"처럼, 고객의 새로운 권리들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민감한 정보들을 보호하는 데에 실패하는 기업들은 끔찍한 결과들을 직면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구매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기업들을 지지하고, 그들에게 보상해야 한다. 프라이버시의 경제학은 충분한 고객들이 우리를 감시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치 않는 시선들을 피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돕는 물건들을 가진 기업들에게서 구매할 때 변화할 것이다.

프라이버시는 간혹 과도하게 민감한 엘리트들만의 걱정거리로 치부되고는 한다. 그러나, 대중의 소양이나, 아동 노동을 멈추는 것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이렇듯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현대 문명화를 추동하는 동기는 봉건적 존재로부터 우리를 끌어냈고, 한때는 일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사치라고 여겨지던 것들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금은 과거로 회귀할 때가 아니다. 특히나 진보라는 미명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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