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서의 몸, 친구들, 사랑

chaewonkang·2020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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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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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새벽에 성수 2가 일대를 걷는데 아이파크 단지를 지나서 롯데 슈퍼를 건너 집으로 향하는 길의 주황색 불빛이 참 예뻤다. 동거인의 생일이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루종일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고 함께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황 빛이 어른 거리고 적당히 추운 그 새벽의 기분은 마치 중고등학교 때만 허락되는, 아무런 힘 들이지 않아도 나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쩐지 미시감이 들어서 올해 1월에 썼던 일기를 뒤적여 보니 이런 말이 있었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 라고는 진짜로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 주는 일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나, 혹은 그럴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구태여 서브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 그것에 대한 리터러시 이전에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시절." 사랑하는 사람들과 동네에서 함께하는 감각은 나에게 놀랄 정도로 그 때와 닮아지는, 솔직한 나의 모습을 되찾아 주고, 또 무척이나 큰 감동과 힘을 준다.

요새는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작업실에서 공부와 작업을 하고(집에서 1.5km 떨어져 있다), 가끔 스튜디오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역시 다른 방향으로 1.5km 떨어져 있다), 집에서 밥을 먹고 잠 자고, 근처의 카페와 식당을 드나들고, 공원과 거리를 어슬렁대며 걷고, 사진 찍고, 그러다 아무렇게나 걸어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하고, 같이 잠도 자고, 뭔가에 실려서 이동하고 내려지고 돌아가지 않아도 내가 의지 하는 발걸음으로 가고자 하는 곳에 금방 닿을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지금 머무르는 곳이 정말 나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독립된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경험은 한국의 여러가지 특성상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늦게 얻는 자유 중 하나다. 파리에 혼자 살았을 때는 신변을 지키기 위해 처리해야 할 많은 문제와 이방인으로써의 정체성 때문에 마음껏 누리지 못했지만, 열 번이 넘는 이사를 거치고 성수에 와서 지낸 요 몇 개월간의 감상은 공간적 자유는 인간의 정신적 독립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란 점이다. 이사 후에 내가 어디에 있을 때에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과 안정을 느끼는데, 여길 떠날 생각을 하면 벌써 마음이 아득하게 슬퍼진다.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장소와 공동체 그리고 문화가 우리의 뼛속 깊이 파고들어 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몸들이 도둑맞고, 거짓과 독을 주입받고, 우리로부터 억지로 떼어내질 수 있다는 것이 이해 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도둑맞은 몸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 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며칠 전에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 이라는 책에서 읽은 말이다.

선천적 장애인이자 젠더퀴어, 페미니스트,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서의 삶. 그리고 소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유-청년기를 지탱해 주었고, 상처받은 자아를 의탁하여 살아낼 수 있었던 장소에서의 탈출(이주)경험, 가장자리로 밀려나 날카로운 단어들로 구별지어지는 자신과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섬세하고 담담하게 얘기하는데, 이 말들이 가진 힘들을 그냥 지식으로 소비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어서 천천히 읽고 있다. 다 읽으면 자세하게 리뷰를 해 볼 생각이다.

내가 '집으로서의 몸'을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적 자유를 얻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직접 살 집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몇 번의 낙담과 좌절과 타협을 하고, 이 얘길 여기 쓸 일은 없겠지만 한 번은 길에서 맞을 뻔도 하고(?), 어쨌든 그 결과로 방해받지 않는 영역, 내가 보고싶고 갖고 싶은 것으로만 채운 방, 언제든 산책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돌이켜 보면 집으로서의 공간이 나에게 그런 자유를 허락한 시점부터 나는 천천히 나의 몸에 대해서도 탐구하기 시작했다. 내 몸과 친해지고, 내 몸을 관찰하고, 내가 무엇을 입을 때 편한지, 무엇을 취할 때 건강한지, 내 몸의 어디가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를 알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만지고 안아주고 나를 나로 받아들여주는 것 또한 인정하고 자연스레 여기게 되었다.

세상이 나를 판단하고 해석하는 나의 신체와 목소리, 그와 별개로 나의 아주 개인적인 이주와 탈출의 경험들, 내가 세상에 나를 위치지우는 방식, 내가 나를 받아들이는 것, 내 선택이 아닌 것들로 자꾸 나를 변호 해야 했던 반복적인 상황들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숙제 같았던 시절을 지나, 그것들을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이게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한 다음에, 사랑과 우정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시공간적 자유, 신체적 자유를 얻은 나에게 드디어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날개를 달아 준다.

나는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 채워져서 내가 느끼는 집으로서의 몸을 다시는 누군가가 점유하거나 함부로 판가름하지 못하게 할 거라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합의된 대화와 사고의 방식, 어떤 전형으로 읽히기를 거부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존재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리고 "검은 실과 흰 실을 함께 꾈 수 있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해도 세상의 한 가지 아름다움, 한 가지 방향의 죄만을 볼 수는 없다는 엄마의 가르침처럼,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면서, 모든 사건과 사람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고 누구도 섣불리 완벽한 죄인이라고 단정 짓거나 단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할 테지만, 그러나 누구도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이나 고통 받는 야갖들을 모른척 하거나 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별개로, 동네에서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얼른 학교에 가서 cub3d를 끝내야 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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