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었다.

고현수·2021년 12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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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ichael Fousert on Unsplash

새로운 해가 되었다고 해봤자 어차피 그냥 11시 59분에서 00시로 바뀐 것 뿐이지만 법적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사람이 늙어가는 것은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매 초마다 늙어가겠지만 인류의 발명품인 달력 덕분에 365일이 지나야 늙는 느낌이다. 덕분에 해가 바뀌기 전까지 아직 미래에 맞이하게 될 나이보다 적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내년에는 조금 더 나아지겠지.'하는 막연한 기대 혹은 희망을 품는다.

어제는 어차피 내일 새해니까 하루 종일 놀까라고 누웠다가 좀이 쑤셔서 결국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나왔다. 곧 해가 바뀌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카페에 사람들은 많이 없었다. 아메리카노 한잔 시켜놓고 재야의 종이 울릴 때까지 있어야지 했는데 갑자기 저녁에 방역 기준 때문에 영업 시간이 단축됐다고 해서 생각보다 나와야했다.

카페에 가면 3가지 일을 주로 한다. 계속 조금씩 업데이트 하고 있는 프로젝트, 스크롤 애니메이션 헬퍼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이론 공부. 딱히 계획을 정해놓고 하는게 아니다. 그냥 그날 가장 급한 것을 해왔다. 프로젝트를 하다가 코드가 엉망이면 왜 엉망인지 찾다가 모듈이나 함수를 공부하고 다시 프로젝트에 적용하다가 다시 이론으로 돌아가기를 수백번 반복한다.

반복을 할 때마다 현타가 올때도 많다. 현타가 쎄게 오면 사실 공부를 하다가도 이게 뭐하는 건가 싶을 때가 많다. 가끔 이론과 실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게 된다. 어렸을 때 읽었던 로빈슨 크루소가 섬을 탈출하려고 시도를 했다가 해류에 휩쓸려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을 때, 후회하던 그 독백과 같은 마음이 들때도 있다. 재미있는 것, 적성에 맞는 것을 드디어 찾았다고 신나했던 그 마음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하게 된다.

재작년에 회사를 나왔을 때는(벌써 재작년이다.) 알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느낌이다. 올해는 특히나 더 심했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게 뭐지.', '누가 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만약에 실무에서 이런 일을 맞딱뜨리면 어떻게 해야하지.', '가서 실수로 서비스를 폭파시키면 어떻게하지.'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든다. 특히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구글을 한참을 뒤져도 해결을 못했을 때가 가장 아찔하다.

처음에 별거 아닐꺼라고 만들기 시작한 기능이 생각보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때, 한참을 멍때리게 된다. 다시 돌아가서 저걸 건져내야한다는 생각을 하면 언제 다시 가서 저걸 건져서 오냐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다가 가네 마네 가지고 앉아서 멍때리다가 결국 다시 가서 이론을 공부하고 다시 코드를 보고 다시 이론을 보고 코드를 보고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그냥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해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사실 나는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크게 느낀다. 그럴때는 그냥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미루고 미루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마감일이 점점 다가오면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극한까지 놀다가 마감일이 다 되어서야 벼락치기로 하고는 '조금 더 일찍 시작할껄.'이라며 후회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 두고나서 시작한 배달 알바는 그런 나의 습관에서 나를 먼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배달 하나를 끝낼 때마다 얻는 작은 성공은 내가 자신감에 휩쌓이도록 해주었다. 배달은 실패한적이 없다 그냥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안전하게 주소지로 가서 물건을 주기만 하면 된다. 늦게왔다고 고객이 욕을 하든 고생한다고 안부를 물어주든 관계 없이 배달은 항상 성공으로 끝난다. 심지어 내가 피자를 잘못 들고 왔거나 잘못 만든 피자를 들고 와도 다시 돌아가서 들고 목적지에 다시 도착하게 된다. 그냥 내가 중도에 오토바이를 버리고 집으로 도망가지만 않으면 피자 배달은 항상 성공으로 끝난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항상 정해진 시간에 코딩을 하는 것도 피자 배달을 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해야 할 것을 하는 그 행위가 나에겐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냥 하기 싫다고 몸부림을 쳐도, 그 몸부림 치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그냥 책상에 앉아서 몰입을 하는 순간 내가 몰입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 순간에 빠져 드는 것이 21년에 가장 좋은 순간이고 지금도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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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 프론트 앤드 개발자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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