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빛미디어 서평단 <나는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협찬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미니멀한 가치를 좋아한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덜어내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사실 흥미를 느끼는 것과 실제로 삶에 녹여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기도 하다. 짐을 버리지 못해 방에 한껏 짐을 쌓아두기도 하고, 유지보수를 위해 간소한 코드를 짜야 함을 알면서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비대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AI-Native 시대에 와서는 코드 작성을 위임할 수 있게 되었고, 대체로 효율적인 코드를 뱉어주기 때문에 전보다 간소한 코드 베이스를 갖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오버엔지니어링을 하기도 하지만, 적당히 방향성을 잡고 길 안내만 잘해주면 ‘알잘딱깔센’으로 최적화까지 깔끔하게 처리한 코드를 내어놓는다.
요즘은 개발 자체의 가치보다 AI에 관한 이야기가 훨씬 많은 시대다. ‘이 AI는 미쳤습니다’, ‘딸깍 하나로 모든 게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AI에 대한 청사진만 가득한 시점에 개발 본연의 가치를 이야기한들 사실 큰 관심을 받기 어렵다. 개발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AI에 대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에 시달리는 시대라, 그에 걸맞은 ‘마음 편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라고 뭐 특별히 다르지도 않다. 오늘만해도 하네스 관련 아티클을 읽다가 퇴근할 것 같다.
개발 경력이 그렇게 길진 않지만, AI 기반 개발이 없던 시절부터 개발해 왔다. 그 무렵에는 본연의 가치를 많이 강조해 왔다. 의존성을 줄여라, 최적화해라, 개발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라, 소프트스킬 길러라, 코드 가독성을 높여라 등등. 흔하게 들어왔던 이 모든 가치가 이 책에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물론 200페이지 정도 분량이기에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목차만 보고도 다시금 이런 글을 접하는 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이 책은 그저 추상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발 과정에서 복잡함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현실적으로 짚는다. 의존성을 늘리는 일, 과한 추상화, 반복되는 수작업, 비효율적인 협업과 설명되지 않은 맥락까지, 결국 복잡함은 코드 몇 줄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자의 환경과 습관, 팀의 소통 방식 전반에서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컨대 ‘지긋지긋한 회의 줄이기’, ‘이야기 엮기’와 같은 내용은 코드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이건 팀 단위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어떤 효율적인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또 비개발자와의 소통에서는 어떤 태도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보듯 막연하게 개발자를 떠올리면 화면에 알 수 없는 코드들이 날아다니고 천재 개발자처럼 코드만 짤 것 같지만, 사실 현업에서 일하다 보면 코딩보다 협업을 위한 소통의 비중이 높은 하루도 꽤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볼륨은 작지만 다루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코드 정리법을 넘어 의존성을 줄이고, 자동화의 영역을 다루고, 개발 환경을 정비하고, 협업에서의 소통 비용을 낮추는 방향까지 함께 다룬다. 마지막에는 다시 데이터와 흐름이나 가독성 높은 코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오는데, 미니멀한 가치를 코드 스타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일하는 방식 전체의 원칙으로 확장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
단순함은 늘 중요하지만 미뤄지는 가치가 되기 쉽다. 책에서는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지금 줄일 수 있는 복잡함이 무엇인지부터 묻게 만든다. 읽으면서 새로운 걸 배운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흐릿해졌던 기준을 다시 꺼내 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저연차의 개발자가 읽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용일 가능성이 높고, 그 내용을 다분히 쉽게 설명해 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같은 AI 시대에 가치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 코드를 빠르게 쳐내는 능력보다도, 오버엔지니어링과 아키텍처를 파악해 무엇을 덜어낼지 판단하는 감각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추상화할지, 감수해야 할 복잡함과 줄여나갈 수 있는 복잡함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시대와 동떨어진 책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일수록 다시 읽어볼 만한 개발의 기준을 담고 있는 책처럼 느껴졌다.
결국 이 책은 덜 만들자는 선언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남기기 위해 덜어내자는 제안이다.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더 단순하게, 더 이해할 수 있게,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것을 더 익히는 일보다 무엇을 버릴지를 판단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