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차🚙] 출근 3일 차

오늘은 비가 온다. 책을 어떻게 들고 다녀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제 지하철에서 서서 책을 꺼낼 수 있는 능력이 생겨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비 오는 분위기에 맞게 by the way의 조용한 음악을 켜고 책을 읽으면 어느새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비가 오는 날에도 기분이 축 쳐지지 않고 잔잔하게 나의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지금은 여자 둘이 살고 있어요라는 책을 읽고 있다. 보통은 30대 정도 되면 결혼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40대 여성 작가 두 분이 한집에서 살게 된 계기와 상황을 그리고 있다. 내가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며느리로 불려야 한다는 것. 이에 맞게 양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다 파헤치고 있는 것인지 나의 생각을 쿡쿡 찔러 뽑아서 글자로 보여주고 있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데 오늘 반절 이상 읽어서 이제 뭘 읽을지 고민해야 한다.

어제는 회의가 없는 날이었다. 아침에는 지금처럼 전날에 대한 회고로 시작했다. 바로 개발에 들어갈 수도 있으나, 거의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간에 내가 했던 일을 회상하고 나의 성장을 기하고, 내가 좋아하는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침을 맑게 깨워주는 일이다.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시간만 된다면.

글을 쓴 이후에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글이 술술 잘 읽힌다며, 옆에서 읽어주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 내가 또 칭찬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이 글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가능한 나의 회사 생활, 신입으로서 느끼는 점을 필터링 없이 드러내야겠다.

그제 PR을 하나 남기고 가서 깃허브 코멘트가 8개 정도 올라온 상태였다. 하나씩 읽어보며 팀장님의 정성을 느꼈다. 우리 회사에는 독특하고 꽤 괜찮은 코드 리뷰 문화가 있다. P1, P2, P3를 남겨놓는 것인데, 진짜 고쳐야 하는 거, 고쳤으면 하는 거, 고치든 말든 상관없는데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하는 것을 기준으로 코멘트를 남겨야 한다. 지금까지는 팀장님의 말이 나에게는 법이기 때문에 P3까지도 다 생각해보고 고치고 있다. 팀장님이 엄격하다는 말이 아니라, 시니어 개발자의 시선에서 크게 바라봤을 때 나의 코드는 확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내가 고치는 게 맞았다. 내 주위로 아주 멋진 시니어 개발자분들이 계신다. 든든하다.

8개면 후딱 고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거의 11시가 되었다. 이후 스타일 수정을 하니 점심 먹을 시간이 되었다. 우리 회사 문화 중 정말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막내가 메뉴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옛날 문화에 깃들어져 있는 건가 ㅋㅋ 밥 먹으러 가시죠~ 하면 단체로 1층에 내려가서 "뭐 먹기로 했어요?"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선택지가 나온다. 그중에서 골라서 가면 된다. 어느 중식집에 가서 옛날 볶음밥 + 후라이를 먹었다. 볶음밥이 좋은 게 아니라 계란에 끌린 것이었다. 팀원이 맛있다고 했는데 진짜 맛있었다. 밥을 남기기 싫어서 다 먹었더니 바지 단추가 터질 거 같았다.

보통 우리는 점심시간에 개발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그제는 "시니어 개발자는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많다"는 이야기를 했고, 어제는 우리는 앱/웹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을 연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과 최근 쿠팡에서 물류 시스템을 전부 자동화해서 사람이 다니는 길마저 없애버렸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작업할 때 이외의 시간에는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이나 외부 상황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언제까지 이럴지는 모르겠다. 밥값 너무 비싸다.

오후에는 다시 피드백을 받고 또 작업하였다. 거의 다 해서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라 "아, 남은 거 내가 알아서 진행하면 될까" 싶어서 혼자 생각하다가 혹시 내가 틀릴 수도 있으니 노션으로 회사 문서를 읽다가 팀장님을 마주쳐서 뭘 해야 할지 여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생각한 남은 것 중 일부는 이미 작업이 거의 완료된 상태였고, 난 다른 걸 해야 했다. 역시 혼자 생각하면 문제가 생긴다. 다~ 여쭤봐야 한다. 면접에서 모르는 게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하겠냐고 괜히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팀장님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이렇게 살게요.

작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막상 만들고 보면 시간이 드럽게 오래 걸린다. 아니, 분명 화면으로 볼 때는 2시간이면 될 거 같았는데 왜~ 계속 생각할 게 늘어나는 것인지. 거기다 오랫동안 앉아있을수록 집중력은 땅속으로 들어가 머리가 댕댕 울리고 있기 때문에 뭔 정신으로 사는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제 그 시각이 오후 4시경이었다. 1차적으로 시도한 방식은 싸이 노래 모음을 듣는 것이었다. 이번 콘서트를 가고 싶었지만 못 갔고, 학교 축제에서도 보지 못한 싸이였다. 난 회사에서 혼자 콘서트를 즐기리라. 흥을 타고 코드를 치면 좀 나아진다.

이렇게 해도 힘들어서 이제는 가사고 음정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다크서클이 턱 밑으로 흘러내릴 것 같을 때쯤 잠시 쉬고 요가매트로 가서 마사지볼로 발을 풀고 (지금 단어는 생각나지 않지만) 기다랗게 생긴 것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아, 사람은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바로 옆에 통유리로 된 회의실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가 보인다 해도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갔다.

이어서 작업을 했으나 하루 할당량이 거의 다 된 것인지 약간의 힘만 남아있었다. 이때 잠시 토의하였다. 여러 페이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디자인이 있는데, 이걸 프론트 개발자 3명 모두 다르게 작업하였다. 페이지에 굵은 선이 있었는데, 나는 border로, 팀장님은 div의 영역으로 그리고 동료는 선이 배경 위에 있는 컴포넌트 사이로 보이는 걸로 작업하였다. 하나를 봐도 모두가 다르게 작업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팀장님이 계시지 않아서 동료와 함께 이야기 했는데, 피그마에 컴포넌트가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고 디자이너와 소통을 편히 하기 위해서는 그대로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하였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오늘 이에 대해 결정하고 하나로 맞출 예정이다.

저녁에는 대학원생 친구를 만나 밥 먹고 돌아다니고 카페에 갔다. 이것은 네이버 블로그에 작성하겠다.

지금의 회사 생활은 돈 받고 개발하고 있는 느낌이라 하루하루 알차고 재밌다. 취업 준비를 했던 시간보다 하루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가고, 뭘 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던 나는 없고 일단 빨리 하나라도 무언가 해야 하는 나로 바뀌었다. 오늘도 개발하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