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차🚙] 출근 4, 5일 차

지하철에서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다 읽었다. 이 책에서 추천해준 "피프티 피플"을 다음 주부터 읽을 예정이다. 움직이는 시간이 나의 독서 시간이 되었다니. 이전에 현장실습할 때는 이동 시간이 30분 정도 되어서 책을 읽다 만 느낌이 들어 출근하고 일을 하기 전까지도 책을 읽고, 점심시간에도 읽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읽고 싶은 만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왕복 2시간이기 때문에 하루 일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시간이 되었다. 보통은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책을 읽을 때는 작가의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 다만 어느 역이었는지 계속 잊어버리기 때문에 자주 전광판을 들여다봐야 한다.

글은 오늘 아침에 출근했을 때 적어야 했으나, 주 40시간 근무 중 4.6시간 남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우리 회사는 아주 좋은 문화가 있는데, 월~금 8~11시 사이에 출근하고 아무때나 퇴근하고 주 40시간만 채우면 된다. 목요일까지 시간을 다 채우면 금요일에 출근 안 해도 된다. 이걸 시도해보려고 이번 주에 8시 반 이전에 출근했는데, 이렇게 해도 9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은 정말 힘들어서 금요일에 쉬는 일은 휴가를 쓰는 것 빼고는 없을 거 같다.

목요일에는 회의 없이 하루종일 코딩만 했다. 점심에 뭘 먹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사진을 보니 알겠다. 한 달에 한 번씩 회사 전 직원이 랜덤으로 섞여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있다. 이게 목요일 점심이었다. 성수 스케줄이라는 양식집에 갔다. 압구정에 있는 스케줄도 있는데, 거기는 차가 코너를 돌 때까지 기다려서 먹는다고 한다. 인스타에 사진을 올리기 위함이다. 나는 맛있게! 먹었다. 역시 나는 한국인 입맛을 가진 자라 김치볶음밥이 제일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분이 곧 여름휴가를 가신다는 것, 다른 분이 사모님과 함께 술을 자주 즐기신다는 것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연차는 5일 정도 써서 해외로 다니시는 거 같다. 나의 창창한 미래가 보인다!

오늘은 아까 말했듯이 매우 바빴다. 사실 오늘은 평소보다 15분 늦게 도착하였다. 오전 6시 20분경 코드 리뷰를 확인했는데 여러 개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내가 팀장님의 마음을 너무 못 알아듣는 거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잘못한 건가" 반성을 하느라고 오래 걸렸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거 하세요! 하고 정해두고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믿고 할 수 있는 만큼 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 부담스러웠다. 내가 제대로 못 하면 내가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는 걸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차라리 어디까지 하라고 정해두면 좋을 거 같은데. (하지만 난 자유로운 걸 더 좋아한다. 나를 채찍질해서 더 강해진다. 이런 청개구리 같은 자식.) 어쨌거나 출근은 해야 했기에 약간 늦게 도착하였다. 덕분에 요즘 인사를 자주 하고 있는 부품유통팀 팀원분을 만나뵈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원래 회사가 성수에 있었는데, 부품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여 회사가 분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개발자랑 이야기를 해서 이런 사실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다음 달 랜덤 미팅이 기대된다.

10시 반에는 프론트 스터디를 했다. 주제가 상당히 많았는데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빠르게 넘기는 부분이 많아 못 알아들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지막에 가장 핫했던 주제는 UI 컴포넌트를 만들 때 GraphQL의 스키마를 그대로 사용할 것인가, UI를 위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였다. 이 논쟁은 15분 정도 지속되었고,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아 다음 주에 이어서 하기로 했다. 이때 CTO님의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두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들어주시고, 마지막에는 "내가 OO보다 프론트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정리해서 다음 주에 더 자세하게 말해줄래요?"라고 하셨다. 나는 이 회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주말에는 GraphQL 공부를 해야겠다.

12시에는 프론트 회식을 하였다. 원래 조금 더 빠른 일정이었는데 내가 온 후에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어서 오늘로 지정하였다고 하셨다. 세심한 배려 :) 우리는 7명이라 한 번에 하나의 식당에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여 중식집 예약을 하고 갔다. 와, 무슨 가지 튀김이 38,000원이다. 멘보샤, 팔보채 등 비싼 건 여러 가지 먹어봤다. 팔보채가 가장 맛있었다. 역시 나에게 튀김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는 대학 시절 전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분은 법대 출신이셔서 우영우 이야기를 해주셨다. 실제 공판에서는 그렇게 재밌지 않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의제기를 하는데, 실제로는 문서로 다 이미 제출해두기 때문에 말을 잘 안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소문난 곳에 살고 계시는 분도 계셨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정겨운 곳이라고 한다.

스쿼드 개발자들이 모여 현재 진행 상황을 공유하였다. 역시 시니어 개발자이신 분들은 개발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이거 할게요, 끝낼게요, 하면 그냥 그날로 다 해치우신다. 어떻게 속도가 이렇게 되는 거지? 손가락과 두뇌에 부스터가 달리신 게 분명하다. 이후 팀장님과 1:1 미팅을 하였다. 이번 주 어땠는지, 앞으로 바라는 게 뭔지 물어보셨다. 우리 회사의 좋은 문화가 또 있는데, 이런 작은 미팅도 문서화한다는 것이다. 어디에 저장되어 있는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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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일주일간 다녀봤는데, 어때요?

나: 전 사실 회사 다니는 게 재밌어요. 좋아요. 다만, 요즘 팀장님이 너무 바빠 보이시는데 제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거 같아서 죄송해요. 그래서 앞으로는 개발 속도를 좀 더 붙이고 싶어요.

팀장님: 전 원래 바빠요 ㅋㅋ 그리고 신입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아요. 처음에 오면 회사 사람들과 친해져야 하고, 문화를 익혀야 하고, 다른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아요. 그리고 빠르게 하려고 하면 분명 기술 부채가 쌓이니까 이럴 바엔 잘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노력하는 게 좋아요.

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팀장님 짱이다. 나를 이렇게 위로, 응원해 주시다니)

팀장님: 뭐 부족한 건 없어요? 정말 소소한 거 말해도 괜찮아요. 실제로 다른 분들하고도 미팅을 하는데, 커피 원두 바꿔 달라는 말도 해요. (누군가 말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근 원두 5종류가 들어왔다.)

나: 저는 정말 부족한 게 없는데 음... 아! 둥글레차 티백 좀 넣어주세요... 지금 하나 남아있는데 제가 거의 다 먹었어요.

팀장님: 원래 둥글레차가 있었어요? ㅋㅋ

나: 네~ 그리고 저는 원하는 게 없어서 생각나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팀장님: 제가 원래는 개발적인 것 외에 회사 생활에 대한 피드백도 드리는데, 제가 요즘에 너무 바빠서 봐줄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다음에는 이런 것까지 말씀드릴게요.

이러고 끝났다. 내가 이렇게 좋은 사수님들 곁에 있다니. 아주 복 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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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시간이 부족하여 연장 근무를 하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PR은 남겼다.

퇴근 이후 옷을 사려고 혼자 건대입구에 갔다. 원래 나는 편한 옷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에 다녀보니 깔끔하고 편한 걸 좋아하는 거였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훌렁훌렁하고 검은 옷만 입고 다녀서 입을 옷이 없어 둘러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어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마음은 꽉 찼다.

개발자에게 웃길지 모를 유머 하나를 남기고 마치겠다. 점심 식사 이후에 자리에서 떠들고는 하는데, 나는 코딩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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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트팀 팀원: 아니 왜 개발자들은 다 검은 옷이에요? 다~ 꺼매. 헬렌만 흰색이네.

프론트 개발자 팀원: 유지보수하기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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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고 있던 내가 엄청 크게 웃었다. 아니 옷에서도 유지보수 이야기가 나오다니. 더 놀라운 건 한 번에 모든 의미를 이해해버렸다는 것이다. 아, 유지보수 중요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5일 중에 3일을 검은 옷, 2일은 흰옷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