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적으로 피자 나누기

Hanna Kim·2020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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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종류의 피자가 있다. 한 피자당 다섯 조각. 25명이 사람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피자를 한 조각씩 먹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1. 선착순으로 한 조각씩 가져간다.
  2. 각자 자신이 가져가고 싶은 피자를 얘기하고 합의를 통해 결정한다.
  3. ...?

2번처럼 합의하다가는 피자가 식기 때문에 모두가 맛없는 피자를 먹어야 한다. 시간이 길어지면 효용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선착순으로 진행하면 피자가 식진 않지만 각자 좋아하는 피자를 먹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그닥 민주적이지 못하다. 분명 더 좋은 방안이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시간도 덜 쓰면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배분 방식은 뭘까?


매칭 이론이 그 해답을 줄 수 있다.

피자 예시와 같이 자원 배분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일상에서도 꽤 자주 마주하는 문제이다. 특히 해당 자원에 대해 시장이 없는 경우, 즉 자원이 돈으로 거래하는 대상이 아닌 경우에 더욱 어려워진다 (시장이 있다면 가장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사람이 가져가면 될테니까). 매칭 이론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한 경제학의 분야이다.

매칭 이론에서 매칭은 단어 그대로 짝을 지어주는 것이다. 일대일일 수도 있고, 일대다일 수도, 다대다일 수도 있다. 핵심은 연결이다. 어떻게 되든 연결해주면 그것이 매칭 메커니즘이다. 위에서 제안한 두 방식도 매칭 메커니즘이다.

그렇다면 많고 많은 메커니즘 중 어느 것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혹은 최선의 결과를 낳을까? 최적 메커니즘을 선택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는 무엇일까?

매칭 이론에선 메커니즘을 두 가지 조건으로 평가한다.
1. 매칭 결과가 안정적(Stable)인지
2. 매칭이 전략 방지적(Strategy-Proof, Nonmanipulable)인지

매칭의 안정성은 누구도 더 선호하는 대상과 새로 연결될 수 없는 상태이다. 최적의 매칭 결과가 유일하다는 보장도 하지 못하고, 다른 선택지로 바꾸면 누군가의 효용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와 교환하더라도 지금보다 나아질 순 없는 상태를 안정적이라고 한다.

파레토 효율성(Pareto Efficiency)와 유사해 보이지만, 안정성이 파레토 효율성보다 강한 개념이다. 즉 파레토 효율적이어도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다. 파레토 효율성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한 명 이상의 사람에게 효용 증가를 이뤄내지 못하는 상태, 즉 누군가의 효용이 올라가려면 다른 누군가의 효용이 내려가야 하는 상태이다.

전략 방지성은 단어 그대로, 서로의 선호를 알고 있을 때, 그 누구도 거짓 보고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페퍼로니 피자, 포테이토 피자, 치즈 피자 순으로 좋아하는 A가 자신의 선호를 그대로 보고할 경우 매칭 결과로 치즈 피자를 먹게 된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포테이토 피자, 페퍼로니 피자, 치즈 피자 순으로 거짓 보고했을 때 포테이토 피자를 먹을 수 있다면, 합리적인 A는 거짓말을 할 것이다.


피자 문제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매칭이론에 따르면 어떤 방식이 최적일까? 한쪽만이 경제적 주체이고 다른 쪽은 사물인 사물 배분 문제의 해결책으론 단순 순차적 독재주의가 있다.

이 방식에 따르면 배분이 이렇게 진행된다.

첫 번째 순서의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피자를 선택한다.
두 번째 순서의 사람이 남은 피자 중 가장 선호하는 피자를 선택한다.
마지막 순서까지 위 과정을 반복한다.

이 방법은 안정적이고 일정 조건 하에서는 전략 방지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순서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있다.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말 경제적인 해법이지만, 한편으론 마음 속의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데이터 분석을 배우고 있는 내가 갑자기 전공 수업 내용을 적어내려간 이유는, 오늘 이런 배분 문제를 마주했고 우리만의 메커니즘을 통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1~3순위를 적어내고 순위별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었다. 순위 내에서 신청 인원이 많으면 사다리에 운명을 맡기기로 했다. 애자일한 회의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위에 언급한 두 조건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 메커니즘은 전략 방지적이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오늘 우리는 각자 선호를 적어서 제출했기 때문에 서로의 선호를 알 수 없었고, 당연히 거짓 보고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만약 선호가 공개된다면, 다른 사람의 선호를 기반으로 본인의 선호를 수정했을 것이다.

각자의 선호를 기반으로 케이스를 따져보아야 안정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지 아닌지 얘기할 순 없지만, 일단은 아닐 것 같다. 사다리를 탄다는 것은 결국 무작위로 뽑는 것이므로 안정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조건이 모두 충족되지 않더라도 나는 오늘 메커니즘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 형평성을 고려하면, 주어진 여건에서 가장 파레토 효율적인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또 다시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땐 바로 오늘의 메커니즘을 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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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으며 배우는 중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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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0일

아하 그래서 회의할 때 눈치게임을 피하자는 말씀을 하셨군요! ㅋㅋㅋ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역시 프로 맨큐-이터는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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