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일, 개발자 D-Day, 첫 출근

구직활동을 하면 굉장히 여러가지를 신경쓰게 된다. 이 회사가 망하진 않을지, 내가 원하는 연봉을 줄 수 있는지, 야근을 얼마나 시키는지, 얼마나 복지가 은혜로운지 등.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회사가 나를 일단 뽑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이번 취업이 개발자로서 첫 직장이지만 그전에 고달픈 디자이너 생활을 했기에 회사에서 이것만은 해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다.

밥 먹고 합시다.

구내식당

사실 내가 제일 원했던 것은 구내식당이다. 서울에, IT기업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구내식당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드문지는 잘 알지만, 나는 영양사가 있는 회사를 원했다. 그리고 자기 밥이랑 반찬을 알아서 퍼담을 수 있는 그런 훌륭한 회사. 나는 어째서인지 배가 굉장히 빨리 꺼지는 편이다. 옛날에 몸에 근육이 많았을 땐 그런가보다 했지만 지금은 다 살과 지방으로 바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특히 API 문서를 읽을 때와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작성할 때 배가 굉장히 빨리 꺼진다. 그 때마다 군것질을 할 수 없으니 밥을 산더미처럼 먹어둬야 한다.

식비지원

그렇다. 구내식당이 욕심인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밥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 식비가 많이 들기에 나는 내 돈으로 밥먹는 것 보다는 연봉과는 별도로 식비가 지원되는 회사를 택하고자 하였다. 점심 식비가 지원되는 것만으로 연 200 정도의 절약을 할 수 있다. 채용 오퍼를 준 곳 중 두 곳이 점심식비가 지원되는 회사였는데 두 군데 모두 연봉협상에 실패하였다.

쌓여있는 간식

그렇다. 만약에 식비가 지원되지 않더라도 회사 내에 간식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면 내가 배고플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허기질 때, 뭔가 잘 안 풀릴 때, 당이 떨어졌을 때 등등 뭔가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편의점을 감으로써 생기는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입사 지원을 할 때 그런 곳은 모조리 지원했지만 결과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던가 말던가 관심없던 것들

나는 내가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통근 거리

내가 사는 곳은 영등포구 당산동이다. 앞으로 얼마나 이 곳에 더 머무를지는 알 수 없으나 당산에서 잠실에 있는 사무실까지는 한 시간이면 출퇴근하고, 강남쪽은 4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나는 이번에 구직을 하면서 회사의 위치나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분당에 한 곳에서 긍정적인 소식이 있었으나 도저히 거긴... 면접을 본 열 군데 가량의 회사 중 여덟 곳 정도가 강남에 위치하였었고 나는 대충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버스로 10분이면 도착하는 옆 동네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워라밸

나는 사실 혼자 남겨지는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서 집에 있으면 외롭기도하고 개발 공부도 잘 안된다. 나는 어차피 아직 병아리고, 애송이고, 초보자고, 어린이고, 쥬니어기 때문에 한 1, 2년간은 그냥 회사와 물아일체가 되어 죽은 듯이 코드만 보고 살려고 했었다. 예전에 웹디자이너로 취업할 때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였고. 그럴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6시가 되면 칼퇴를 하는 직장에 취업을 해버렸다.

그리고 그 외에..

회사 휴게실에 다트 기계가 있었다. 안마 의자도 있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 사무실을 옮겨서 인테리어가 깨끗하고 새 물건으로 되어있다. 화장실이 굉장히 깔끔하고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에 음료가 가득 들어있다. 고급 캡슐 커피 머신이 있다. 사내 동호회가 잘 활성화 되어있는 듯 했고 직원들 끼리 사이가 되게 좋아보였다.

나는 이런 것들을 한 번도 원해본 적이 없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오로지 내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는 것. 나는 그런 회사를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지만 내 배를 채워줄 만한 회사들은 전부 연봉 협상에 실패해버리는 바람에 ..
나는 내가 찾던 회사는 아니지만 좋은 회사. 만족스럽지만 묘하게 불만족스러운 그런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