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I Eat - 03. 악어

LSA·2022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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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I 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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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암에는 정이 있다.

'성인돼지파티' 라는 말을 아시는지? 이전에 sns에서 유행을 탄 단어로서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즐겁게 먹는 모임을 뜻한다.
물론 나에게도 이 성인돼지파티를 즐기는 멤버가 있다.
우리들의 인연은 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었지만 결국 우리는 졸업까지 같이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연락은 완전히 끊기지 않았고, 사회인이 된 우리는 학교 다닐때 먹지 못했던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먹어보기로 했다.
마지막 돼지파티 이후로 몇 년이 지나고, 내가 들른 악어라는 식당은 이 친구들의 강력 추천 원픽으로 꼽혀 다시 모이게 된 곳이다.

나폴리탄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식당이라기보다는 술집이다. 그러나 안주가 굉장히 맛있는 술집.
술자리에 잘 참여하지 않고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술집을 갈 일이 없었기에 어두운 조명과 이국적인 인테리어가 다소 생소했다.
친구들이 메뉴판을 펼친 나에게 말했다. "나폴리탄. 나폴리탄은 꼭 먹어봐야해! 우리는 여기 올때마다 나폴리탄을 먹거든."
사진만 봐도 대충 만든 것 같지는 않다. 각자 마음에 드는 술을 시키고, 안주 몇 가지를 더 주문했다.

오동통한 스파게티 면과 케찹 소스, 각종 야채와 소시지로 볶아진 후 루꼴라가 올려진 나폴리탄. 사실상 우리나라에서는 나폴리탄보다 이탈리안 파스타 파는 곳이 더 많다.
일본식 스파게티인 나폴리탄은 오x기 사의 '스파게티' 인스턴트 라면 혹은 학교 급식에서 주던 스파게티와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다. 레시피도 간단하다. 때문에 '고급스럽고 풍미가 살아있는' 등의 표현과는 근본적으로 멀다고 생각한다.

나폴리탄의 매력은 저렴하게 느껴지는 맛임에도 계속해서 손이 가는 중독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루꼴라 올려주고 건더기가 많다는 점에서 저렴까진 아니지만..)
집에서 해먹었다면 반드시 '한 그릇 더' 라는 말이 나올 법한 맛.

개인적으로는 케찹 소스의 맛의 비율이 좋았다. 짜고 달지만 그렇다고 과하지 않다. 야채를 많이 넣어서 이 짠 맛을 중화시키는건가...술안주가 아닌 식사로도 훌륭했다.

고사리 오일파스타

나폴리탄과 함께 추가로 시킨 것은 고사리파스타이다.
아니 그런데 고사리가 파스타에 들어간다고? 이게 가능해?
가능했다.
앞서 친구가 설명해주기로는, '느끼해도 한국의 맛이다' 라고 했던 것 같다.

오일파스타와 표고버섯, 고사리, 마늘, 들깨가루가 듬뿍 올려진 비주얼.친구가 왜 한국의 맛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했다.

나폴리탄과는 전혀 다른 기름 맛이다.(당연하지 오일 파스타잖아)
그런데 느끼함 속에 표고의 향과 고사리의 살짝 쌉쌀한 맛이 '그래도 맛있지?' 하고 포크를 부추긴다. 잡채를 먹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향토적인 재료와 서양의 요리가 조화를 이루는 음식을 참 좋아한다. 한국답게 마늘도 넉넉히 넣어져서 마지막 한 톨까지 맛있게 해치웠다.
이 메뉴가 아직도 남아있을까?

마라샹궈

2접시를 비우게 한 장본인(?)

앞서 기름진것 들어갔으니 매콤한 것도 나와줘야 한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마라샹궈 먹자! 라는 의견이 나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마라샹궈의 비주얼과 비교해 조금 더 착해 보였다. (보통 마라탕집에서 엄청 빨갛고 매운 마라샹궈를 먹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라샹궈에는 면이 들어가있지 않아, 파스타 메뉴보다는 양이 조금 더 적은 안주메뉴에 가까웠다.

한입 먹고 든 생각 : 불맛!
불맛이 적절히 들어간 매콤한 마라샹궈의 맛이다. 매운것에 약한 사람들은 위장을 생각하여 다른 걸 먹자.

볶음요리는 불맛이 참 좋은 것 같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맛인데도 계속 샹궈를 집어먹고 있어, 우리는 결국 마무리 안주로 마라샹궈를 하나 더 시켰다.

여자의 우정은 식탁에서 피어난다

주인분 입장에서는 여자 셋이서 술보다 안주만 4접시를 비우는걸 지켜보면서 감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반대로 술을 계속 시켜도 신기한 일이다.)
친구들도 원래 이렇게까지 안주를 못먹는데, 나까지 와서 갑자기 위장이 늘어나 먹고싶은 메뉴를 많이 먹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물론 나도 혼자 왔다면 1접시도 겨우 비웠을것이다.
그렇게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근처 카페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못본 시간만큼 각자 잘 살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서로의 거리가 멀어 자주는 못보지만, 다음에 볼때는 또 맛있는 돼지파티를 하자는 다짐을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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