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는 생각들

푸글·2020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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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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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우리 가족은 나와 동생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이사를 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이사는 부모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설계, 디자인, 인테리어를 하셨다는 점이 특별하다. 막연히 성인이 되면 한 번쯤 가겠거니 하는 이사였는데, 섬세한 엄마의 취향을 저격하는 마땅한 집이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그러던 중 못 찾으면 만들면 된다는 초긍정적인 두 분의 마인드, 그리고 아빠의 집 짓기에 대한 오랜 꿈으로 지금의 집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 이사 소식을 접했을 때 외국에 있던 터라 또 무슨 지나갈 바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나는 유튜브에서 건축 관련 동영상들을 강제 시청하게 되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실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는데 계절이 바뀌며 완성되는 집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많이 설렜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전입 날짜가 전출 날짜보다 늦춰지고, 막상 입주한 집은 공사가 덜 되어 상황이 여러모로 꼬이게 되었다. 분명 이번 주엔 완공입니다! 정말입니다! 해서 예정보다 3주 정도 늦게 들어간 집은 뭐랄까 최종진짜완전최종이거2233.집 이런 느낌이었는데... 계단에 난간이 없다거나 화장실 타일을 엉뚱한 무늬를 붙여놓기도 하고, 샤워기 밑에 콘센트를 설치해놔서 첫 샤워에 골로 갈 뻔했다. 여하튼 우리 뚝딱 펜션은 저지른 과오를 처리하느라 처음 날짜보다 약 2달 정도 지나서야 진정한 우리 집🏡이 되었다.

그로부터 한두 달 정도가 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학원이 휴강해 오랜만에 집에서 일주일 정도 보내게 되었는데 엄마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날씨에 꼭 마당에서 부르스타에 라면을 끓여 먹고 싶다고 주장하셨다. 다행히 실천에 옮기기 전 엄마는 추위를 느낄 수 있었고 대신 커피 한 잔 때리고 배드민턴을 치기로 했다. 별것도 아니었는데 서브 하나 넣는 모습도 웃기고, 수면바지를 입고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는 내 모습도 그렇고 최근 들어 이렇게 웃은 적이 없었다. 밖은 코로나로 시끌시끌하고 미세먼지는 나쁨인 하루였는데 아빠 화분엔 배드민턴 공이 꽂혀있는 모습이 정말 웃겼다.

배드민턴 치면서 엄마한테 학원에서의 나는 말하는 감자 같다고 말했는데 감자 중엔 최고라고 해주셨다. 그리고 저녁엔 감자를 삶아먹었다...! 맛있었어...그럼 된 거지 뭐...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고 어제 본 것도 새로운 요즘 내 상태는 뚝딱 펜션 같다. 내가 치는 코드(내가 저지른 어제의 똥)를 만날 때마다 마치 샤워기 아래 콘센트처럼 당혹스럽지만 언젠간 뚝딱 푸글도 배드민턴 정도 칠 수는 있지 않을까?

잔디에 누워서 본 하늘이 예뻤다. 미세먼지 때문에 비염은 심해졌지만


사진은 지난번 눈 덮인 날 탄생한 rabbitSnowMan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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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4일

오... 부럽네요! 저도 제가 지은 집에 살고싶다는 로망이 있습니다.
그런게 다 추억이 되는 것 같아요. ㅋㅋㅋ 샤워기 밑 콘센트는 좀 위험한 것 같지만 😱
방학을 알차게 잘 보내고 계신 것 같아 부럽네요 😁
눈사람도 귀엽네요. 글 잘 읽었어요!
항상 화이팅!!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