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개발자 탄생기] #2 내가 군인이라니

김민준·2019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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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과는 약간만 상관이 있는 내용이라 조심스럽네요.
저는 이제 막 1년 차를 넘긴 주니어 개발자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걸쳐서 나는 개발자가 되었다라는 내용을 공유 하고 싶었습니다.
무겁지 않게 재밌게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의 특성상 반말로 작성된점 먼저 양해 부탁드립니다.


롤에 학창시절을 꼴아박은 고등학생이 대입을 앞두고 어찌저찌 정했던 컴퓨터 소프트웨어 학과 로 진학.

학교를 보고 굳은 결심을 하게되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2학년... 그리고 군입대를 하게되었다.

군생활

입대

2014년 10월 진주 공군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보통의 동기들은 이미 2학년 시작전에 입대를 하였거나 혹은 9월에 칼같이 갔던 반면에 나는 당시 복무기간 24개월

이어서 칼복학을 못하게 되었다. 다들 나에게 왜 그때 갔어? 빨리안가고? 내 대답은 그러게나 말이다 였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군대 입대가 대학 입시만큼 경쟁률이 높아서 육군으로 지원했던 내 동기는

분명 1학년 마치고 휴학을 했지만 나랑 입대 동기가 되는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지원하려는 공군같은 경우에

는 수능성적도 보기에 SKY 학생들이 드글거리는 공군에서 한번에 붙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생각했기에 나 역시 한번에

붙을꺼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애매한 시기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훈련소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다보니 어느새 수료식이 다가왔다.

구른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에 와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초반에는 뭣도 모르고 해킹 이나 게임개발 을 해보고 싶다 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수료식 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나는 바보 같은짓을 해버렸다.

공군의 경우는 입대를 한뒤 훈련과 필기시험 (여러분이 아는 그 필기시험 맞다 ) 의 점수를 합산하여서 위에서 부터

차례대로 원하는 보직 ( 하는일 )자대 ( 근무지 ) 를 정하게 된다. 회사를 갈때도 회사가 먼지 무슨일을 하는지 꼼꼼

하게 따져보고 신중히 고르는데 군대는 오죽하겠나. 위 에서 부터 꿀보직과 서울에서 가까운 노다지 자대는 전부 채가고

밑으로 갈수록 멀고도 험한 군생활 라이프 확정되는 2년빵 걸고 경쟁하는 경쟁사회 의 끝판왕 이 바로 공군 훈련소

할수 있겠다.

자대 묻고 보직 더블로가!

하지만 나는 특기병으로 들어갔기에 보직이 정해져 있어서 자대만 서울과 가까운데만 걸리게 해달라 천지신명님

에게 손이 앞발에 되도록 기도를 올리고 있는중 조교가 정보체계관리병 (컴퓨터 쪽하는 특기병) 들을 따로 모았다.

그리고 보안체계 관리병 이라는 히든전직을 우리에게 제안을 하였다.

보안. 얼마나 멋진 두 글자인가. 아까도 말했듯이 뭣도 모르고 해킹 에 관심이 있던터라 선뜻 지원을 했고

2 기수 중 단 5명만 뽑는 보안체계관리병 이 되었다.

만일 위의 글씨를 보고 흠칫했다면 당신은 군필자 일것이다.

자대

꿈은 하늘인데 현실은 시궁창 이라 했던가. 내가 딱 그랬다.

멋진 보안을 생각했지만 현실은 콜센터 + 수리기사 였다.

이런건줄 고를떄는 몰랐지... 안알려 줬다고...

불행중 다행으로 자대는 오산 미군기지 (송탄) 으로 가게 되었는데 이곳이 꿈을 주게된건 조금더 나중의 일이다.

기대와는 다르게 근무를 하면서 배울수 있을꺼라 기대한 기술들은 나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술들이었다.

도움이 조금 된거라면 암호에대한 약간의 기초지식 정도?

이런거 아닙니다...

같은 부대의 동기들이 개발병으로 가서 개발을 하거나 브라우저 에서 JS 를 공부하는걸 보고 부러워 하며

열심히 어두운 벙커에서 암호장비를 뚝딱뚝딱 고치며 지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브라우저는 있었으니 JS 를 공부 했으면 도움이 많이 되었을꺼 같았지만 당시에는

안드로이드쪽에만 살짝 관심이 있었고 웹은 아예 관심이 전무해서 쳐다도 안봤다.

그땐 내가 미래에 JS 로 돈벌고 있을줄 몰랐지...

군대가 준것

군생활을 하며 얻은것이 없진 않다. 오히려 확실하게 얻어 왔다고 할수있다.

예를들면

  1. 허리디스크
  2. 인류애의 상실
  3. 애국심의 상실
  4. 간부 혐오

등이 있는데 정말 중요한 위의 것을 빼고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것만 얘기를 해보자

  1. 영어에 대한 관심 및 기초 공부
  2. 꿈을 가지게 해준것
  3. 정보처리 산업기사
  4. 기초 체력과 약간의 근육
  5. 운동에 대한 기본상식
  6. 사회 예절

1번부터 얘기를 해보자면 할얘기가 많다. 전편에서 얘기 했다시피 나는 롤 배치고사를 모평보다 중요시했던 훌륭한

학생이었기에 시험기간에만 조금 공부하고 전공적성에 올인을 했지만 영어만큼은 예외였다.

흥선대원군의 척화비를 대뇌 중앙에 박아놓고 서양 오랑캐의 문자따위는 배우지 않겠다라며 영어따윈 불굴의 의지로

쳐다도 않보던 삐뚤어진 애국심을 가진 대한의 학생 이었다. 하지만 군대에 와서 약간의 생각이 바뀌게 되는데, 사실

군입대 전 까지는 여권조차 없었지만 해외에 대한 호기심은 항상 넘쳐났다. 해외를 갔다오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나도 언젠간 꼭 가봐야지를 생각하던중 입대를 하게 된것인데. 앞의 이야기를 하기전 이쯤에서 먼저 자대 설명

반드시하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자대는 오산 미군기지 라는 단어 그대로 미군부대와 한국군 이 함께 사용하는 기지로 정말 엄청나게 크다.

얼마나 크냐면 미국 마을이 (비유가 아니라 초등학교와 유치원, 마트, 볼링장, 아파트까지 있다.)통째로 들어가 있고

정문에서 후문까지 버스로 (기지내에 버스가 돌아다님) 15분은 타고가야 했다.

나는 운동을 종종 하곤 했는데 그때 조깅을 하러 나가면 항상 미군 기지로 들어가서 활주로 옆을 쭉 따라 뛰었는데

항상 그 미군 마을을 지날때에 어딘가모를 가슴이 두근거림과 일렁임을 느꼈고 어느순간 아, 해외로 나가자 라는

꿈이 처음으로 생기게 되었다. 영어공부역시 꿈에서 비롯되었다.

위에서 말한 대뇌에 박힌 척화비를 빼는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어느정도였나면 I am 과 I was 의 차이를 몰랐으며

캔커피의 Let's be 의 be 가 뭐냐고 묻고다닌적이있다. 순수한 호기심이고 질문이었지만 그때의 후임들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후임들의 보는 나의 모습.jpg

시저... 레츠비...

너무도 부족한 영어기초를 채우기 위해서 여러 책을 보던중에 Grammar in Basic use 이라는 책을 정독을 하였는데

이게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상병쯤 되었을까.

전역후에 복학까지의 10 개월의 공백기가 있었기에 전역후 계획을 세워 보았다.

여기서 3가지 선택지가 생겼는데

  1.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2. 어학연수
  3. 전공공부

3번은 일단 제껴 뒀고 1번과 2번 선택지중에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 발생의 전환을 해보니 한국말 조금도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간단한 의사소통이라도 되는 외국인 노동자중 나라면 누구를 고용할것인가를 생각해보니

광활한 딸기밭에서 딸기 채취를 열심히 하고있는 미래가 훤히 보였다.

쉬고있는 미래의 나

그래서 어학연수를 선택을 하게되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중 말레이시아로 정하였다.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다음에 좀더 자세히 얘기 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세워진 계획은

  1. 2016년 10월말 전역
  2. 11월에 일본여행 (이시국씨는 당시에 안계셨습니다)
  3. 12월 ~ 4월 약 5개월 동안 400~500 만원 저금
  4. 3,4월 영어회화 공부
  5. 5~8월 말레이시아 어학연수
  6. 8~9월 복학전 개발하여 전공관련 작품 출품
  7. 2016년 내에 토익스피킹 자격증 취득
  8. 2017년 글로벌인턴쉽 프로그램 참가

라는 거의 1년치 계획이 생겼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2016년 10월 말.

마침내 전역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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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습니다. 된다고 다가 아닌 개발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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