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고대하던 작업실을 얻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좋아서 공간을 나눠 쓸 사람을 모으고, 땀을 흘리며 함께 부동산을 돌고, 적당한 매물을 찾고, 계약하고, 페인트를 칠하고, 가구를 들이고, 재료와 도구를 옮겼다. 정리가 끝난 뒤부터 도시락을 챙겨 거의 매일 출근했다. 저녁에 혼자 있을 땐 노래를 크게 틀고 그냥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튼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슬슬 더워지던 올해 초여름, 작업실을 나왔다.
함께 사용하는 멤버들과 대판 싸우고 뛰쳐나온 건 아니다. 지금까지 하던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야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 일이란 참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일러스트레이터 겸 직물 공예가로 일했다. 꼼꼼하게 물건을 만들고, 끈질기게 가장 좋은 제작법을 찾아내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일은 내게 잘 맞았다. 하지만 먹고 사는 일이 모두 그렇듯 여러 고민이 항상 따라다녔다. 입은 웃고 눈은 울면서 쌓인 일 속을 헤쳐나가는 와중에, 주로 이용하는 SNS에서 '개발자'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와 끈기를 갖춘 사람에게 알맞다는 설명과 함께.
내 얘긴데? 하하. 처음엔 그렇게 생각만 하고 지나쳤다. 하지만 '개발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는 산들바람처럼 고요하고 은근하게 계속 타임라인을 떠다녔다. 개발자로 전직한 친구 이야기, 여성 개발자 컨퍼런스 소식, 너무나도 잘 정리된 학습 코스 추천 글.. '개발자'가 더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밟혔을 때, 생활코딩에서 코딩 야학을 진행한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바로 신청서를 넣었다. 한번 해 보자.

작업실에서 집에 돌아와 한두 시간정도 HTML, CSS, JavaScript 순서로 영상을 보고 실습하면서 재미가 들렸다. 자연스럽게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는 '프로그래머 로드맵', '신입 개발자가 되려면?', '백엔드와 프런트엔드', '비전공자가 개발자 취업 가능?' 등 매일 수많은 글을 검색하고 읽었다. 해외 취업 정보를 알아보면서 일본에서 일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고, 비자를 수월하게 받으려면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기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기출 문제만 되풀면 합격하는 시험이라고들 했지만, 주기억장치가 하드 드라이브인 줄 알았던 나에게는 기초적인 컴퓨터와 네트워크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 밖에도 컨퍼런스와 밋업에 참가하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제일 심적으로 도움이 됐던 건 IT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은 일이었다. 너무 늦은 건 아닐지 고민했던 내 도전이 '해 볼 수 있는 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경험은 마음에 안정감과 용기를 줬다.

작업실에서 이사 나온 후, 여러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독학하던 와중에 코드 스테이츠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읽었다. Women Career Change, 커리어 전환을 준비하는 여성을 지원하는 장학 프로그램이었다. 웹 개발 기초 과정을 차근차근 진행할 수 있고, 동시에 나와 비슷한 스텝을 밟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 동안 퇴고한 지원서를 하루 더 퇴고하고 제출했다. 그리고 다행히 합격했다.

Pre Course

코드 스테이츠의 프리코스 Pre Course는 총 10주간, 매주 화/목요일에 온라인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웹 풀스택 개발자 입문 프로그램이다(현재 온+오프라인 프리코스도 있다). 내가 속한 35기는 이제 6주 차에 들어간다. 독학과 비교했을 때 프리코스의 좋은 점을 정리해보았다.

  • 과제 제출 기한, 수업 일정이 정해져 있어 진도를 따라가려면 게으름 피우기 어렵다.
  • 슬랙, 깃헙, 터미널 등 협업과 소통에 필요한 도구들을 수업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 정규 수업 시간에 포함된 Q&A세션과 게시판을 통해 전문가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Q&A세션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과 그 답에서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답변과 대응도 꼼꼼하다.
  • 학습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스스로 공부해나가기 좋다.
  • 같은 문제를 풀어낸 서로의 코드를 보고 리뷰하거나, 내가 잘 모르는 문제를 함께 풀거나 그 반대로 진행하는 페어 프로그래밍 시간이 있다. 내 코드를 상대에게 설명하면서 '사람이 이해하기에 용이한 코드'란 무엇인지 생각할 기회를 얻었고, 논리적인 코드 작성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생각하지 못한 풀이법을 볼 수 있어 유익하다.
  • 커뮤니티에 속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극과 용기를 얻는다.

그에 반해 몇 가지 주의할 부분도 있다.

  • 자바스크립트 초급(기본개념)을 예습하고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에 따라 진도를 따라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다르겠지만, 완전히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면 1~3주 차에는 마음이 조급할 듯하다. 수업 중에 배우는 개념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실습해보거나 미리 알고 있으면 좋다.
  •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장을 다니거나 기타 주 업무를 병행하며 프로그램을 듣는다면 여가가 전혀 없을 것 같다. 코스 소개에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폭발적 성장을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대로 진도가 상당히 빠르고, 과제도 적지 않다. 진도 내에서 주어지는 자료를 모두 둘러보고 충분히 흡수하려면 일 외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게 될 듯싶다.
  • Q&A와 게시판, 페어 프로그래밍 등 정보와 경험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 매우 많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서른이 넘어 직업을 바꾼다고 하면 너무 늦었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른다. 자기가 원하는 목표가 뭔지, 주어진 여건은 어떤지 살피고 '바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에' 늦었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위에 성실함, 그리고 WCC 장학생으로 선발된 운을 더해 개발자에 도전하기로 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취업만 할 수 있다면 어디라도'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더 좋은 환경에 데려다주고 싶다. 이미 잡은 기회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앞으로 만날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WCC가 좋아 로고도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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