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de ... 3개월을 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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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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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코드에서의 3개월 뿐만 아니라 나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회고에 맞춰 적었습니다.

0. 대학 입학과 도전

나는 송도에 있는 한 글로벌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있던 공대생이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랑 과학에 거의 관심이 없던 흔히 말하던 "문과생"이였다. 수학 공식으로 난해한 문제를 풀기보다는 소설의 작가가 어떻게 스토리를 이어나가는지 분석을 하는 것을 더 좋아했고, 과학적 이론보다는 현대 사회의 이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했다. 그런 내가 이렇게 공대를 진학하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아버지의 조언때문이였다. "너가 정말 인생을 성공하고 싶다면 문과대학 보다는 공대를 가라"... 그때 당시 바이오 관련 사업들이 이제 붐이 올거라는 얘기가 많기도 하고, 내가 갈 수 있는 한국 공과 대학은 많지 않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외국고등학교에서 졸업하고 가지고 있는 성적은 완전히 문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 입학경쟁이 치열한 한국 공과 대학에서 내가 설 자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흥하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거의 등 떠밀려 들어갔던 외국계 공과대학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으로 어려운 도전이였다. 처음으로 알게된 다양한 문자들과 개념들 ... 일반/유기화학,대학수학,기본생물학,기본물리학,정보처리학 ... 모든 과목들이 2학년을 올라가기 위한 필수과목들이였고, 하루에 못해도 6시간의 수업을 듣고 과제와 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부를 해서 어떻게든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다른 학생들이 쌓아올린 시간과 경험의 차이가 너무 커서 3개월안에 따라잡으리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첫 학기의 성적표를 받고 나의 노력에 대한 결과가 너무 처참해서 절망했었다.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주신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스러워서 처음 성적표를 보여드리지 못했고, 이렇게 가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한 학기를 휴학하고 6개월동안 다른 사람들은 전혀 만나지않고 카페알바와 대학 과목들 공부만했다. 그렇게 다시 대학교 1학년 과정에 도전하였고, 모든 과목들이 이제 평균이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것은 바로 정보처리학이란 과목이였다. 해당 과목은 파이썬 언어로 DNA 배열 같은 문자열을 분석하는 프로그래밍에 관한 학문이였다. 다양한 알고리즘과 문제해결방식을 공부할 수 있었고, 나도 내 성적을 보고 점수가 너무 높아 교수님께 정말 이 점수가 맞냐고 메일을 보낸 기억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서 학업적으로 적응을 조금 하고 나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1. 군대 전역 후 변화와 결정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는 동안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삶에 대한 자기주도적 생각이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 삶에 대한 결정을 내가 내린 것은 거의 전무했고, 부모님이 이끌어 주신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역을 하고 이제 정말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이 장점이며,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다. 이러던 도중 2학년을 마치게 되고 3학년을 올라가기전 대학의 정보처리학 교수님을 찾아뵈어 상담을 하러 갔다. 왜냐하면 이 정보처리학에서 배운 프로그래밍이 정말 흥미로워서 이것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으면 어떤 공부를 하면 되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때 교수님께 처음으로 들은 것은 외국에서 부트캠프라는 시스템이 있어 개발자로 취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였다. 내가 정말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다면 그런 시스템을 이용해서 나아가도 괜찮을 것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3학년 1학기를 다니던 중 한 번 개발자라는 길을 한 번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그때 당시 더 늦기 전에 결정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행히 우리 학교는 휴학이 자유로워 언제든 복학할 수 있는 환경이였다. 그래서 휴학을 해서 생명공학의 길과 개발자의 길을 한 번씩 겪어보고 나에게 무엇이 더 맞는 방향인지 알아보자는 큰 결정을 하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의 반발도 정말 심했다. 내가 이렇게 휴학을 하게 되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너무 다르게 인생을 살아가게 될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했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맞춰서 사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내가 이 결정이 맞는 선택이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하고 ...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2. 위코드 오기 전

사실 나에게 위코드는 첫 번째 부트캠프가 아니였다. 위코드를 다니기 전 스파르타 식의 교육을 하고 기간도 2년정도로 긴 부트캠프를 다녔다. 그 곳에서 약 3 달간의 학습을 진행했다. 그 곳의 교육 방식은 위코드와는 많이 달랐다. 첫번째로는 java를 배우면서 CLI기반 게임하나를 만들고, 두번째는 안드로이드 어플 ... 세번째는 php로 웹페이지를 구현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나는 한 단계 더 올라가고 얼마안가 여기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 둔 이유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과 계속 이곳과 나는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번 결과물을 발표하고, 거기에 대해 피드백을 들었다. 이 곳에서 내가 정말 힘들었던 부분은 공부가 힘들고 어렵기 보다는 분위기가 정말 무거웠다. 이것에 대해 자세히는 적지 못하지만, 나하고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팀원들은 모두 학원에 오는 것부터 자신의 발표 차례가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하면서 견뎠지만, 점차 나 자신은 자신감을 정말 많이 잃었고, 부모님도 그렇게 변한 나를 보면서 걱정을 정말 많이 하셨다. 그러던 도중 눈에 들어온 것이 위코드였다. 다들 즐겁게 학습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협업을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위코드를 알게되고 여러 위코드 후기를 읽느라 밤을 샜다.

3. 위코드

나는 고민을 하고 위코드에서 상담을 받고 여기서 내가 원하던 즐거운 분위기에서 모든 공부를 할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위코드의 예리님과 매니저 분은 한 시간 가량의 긴 상담에도 밝게 웃으시면서 내 질문들을 다 받아주시고 내가 한 번의 실패 아닌 실패를 했기 때문에 신중하게 질문을 드렸지만, 그 모든 것에 답변을 확신과 함께 주셨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개발을 하면서 놓치고 싶지 않는 가치관을 하나 생겼다. 바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밝은 분위기의 환경이다. 위코드에서는 그 점이 가장 눈에 들어왔고, 다른 부트캠프도 장점이 각자 있겠지만, 이 곳에서 나오는 밝은 환경만큼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이 점점 생겨났다. 그렇게 1주일 정도 고민을 하고, 나의 이번 선택이 틀리지 않길 바라며, 물러날 곳이 없다는 각오와 함께 위코드에 등록을 했다.

이 글은 위코드 커리큘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3개월동안 이 곳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적지 않을려고 한다. 대신 내가 이 곳에서 얻는 ..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하나 집어가고 싶다.

나는 위코드에서 함께 개발자로써 나아가는 동료들을 얻었다. 이들은 나와 함께한 15기 분들뿐만 아니라 위코드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이다. 멘토님들부터 선배/후기 기수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분들이고,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웃고
개발자의 길을 같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런 든든한 원군이 있어서 그런지 위코드에서의 3개월은 정말 행복했고, 과정을 이수하면서 힘든 점이 없었다. 처음에 오리엔테이션에서 은우님이 아마 3개월동안 정말 힘들겠다고 했지만, 흠... 스케쥴이 조금 빡빡한 날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힘들게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소망때문이였는지 이 곳에서의 모든 커리큘럼이 그저 새롭고 즐거운 나날의 연속이였다. 물론 중간에 코로나가 2.5단계로 격상하면서 위워크에서 잠시 못한 기간이 있었지만, 온라인으로 진행해도 다른 분들과 워낙 소통이 잘돼서 딱히 힘든 부분이나 불편했던 점은 딱히 없었던 것같다. 아! 위워크에서 제공되는 좋은 개발환경을 만끽하지 못한 점은 정말 아쉽다. ㅠㅠㅠ 그래도 마지막 기업협업 기간동안 위워크로 출근했으니 딱히 문제없다! 위코드에서 내가 원하던 즐겁고 밝은 환경에서 모두가 열심히 개발자로 나아가는 동료를 얻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위코드는 이렇게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내가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함께 일하면서 같이 나아갈 수 있는 개발자

위의 글이 쉽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된다. 뒤쳐지지 않고 함께 일을 할려면 꾸준한 공부를 해야되고, 같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 사람과 소통이 잘 이루어져만 한다. 또 나의 생각을 남들에게 잘 전달하며, 나도 남들의 생각에 쉽게 넘기지 않고 신중히 고민하면서 임해야된다. 그리고 어떤 결정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무언인지 결정하는 결단력도 있어야 되며, 많은 조건이 충족되야지만 위의 글과 같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것이다.

내가 이런 개발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사람은 혼자 나아가면 처음에는 빨리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함께 나아가면 오래갈 수 있다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10년 20년 개발을 하면서 계속해서 이 목표를 두고 지금은 비록 시작하는 단계라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추후에는 그런 도움을 나도 줄 수 있는 한 명의 개발자가 되고 싶다.

위코드에서 저와 함께해준 멘토님들과 15기 동기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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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 컴퓨터공학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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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1일

같이 일하고 싶은 백엔드 개발자를 꼽는다면 전 승재님 입니다~
소통이 이런거구나 깨닫게 해준 고마운 개발자이자 능력있는 개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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