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내려오는 기척을 느끼고 나에게 미소지어주는 사람, 나는 천천히 부엌으로 가서, 고기 한 덩어리를 들어 입에 넣었다.
"잘잤니? 유인, 이걸 아야에게 가져다 주겠니."
작은 고기 한 덩어리가 담긴 그릇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갈게."
문이 열리자마자 아야가 달려들었다.
"유인!! 왔어?!"
그녀는 나를 와락 껴안았다. 여전히 이런 행동이 익숙하지 않았다.
"일단, 밥부터 먹어. 여기."
그녀의 손을 몸에서 떼고, 그릇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아야는 손을 뻗어 고기를 집어 들어 크게 베어 물었고, 나는 그녀가 먹고 있는 동안 창 밖을 둘러보았다. 소박하고 작은 마을 풍경이 보였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잠시 뒤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도 밖에 다녀오는 거야?"
나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것 밖에 없는데".
"조심히 다녀와..."
가지 말아달라는 것이 느껴지지만 나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의식해서 더 힘찬 말이 나왔다.
"응..!"
"유인 왔구나, 여기 망토는 빨아두었단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내가 늙어가지고..."
"아니에요, 저에게 은인이신데요. 이렇게라도 보답을 해야죠."
익숙하게 망토를 두르고, 아저씨에게 도끼를 받아서 마을 밖으로 향했다.
"멧돼지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오늘도 많이 있구나."
나는 멧돼지 시체를 수레에 실었다. 멧돼지들은 마을의 유일한 식량원으로 마을에서 좀 걸어나와서 산으로 가면 흔히 나오는 생물이었다. 멧돼지 고기는 생으로 먹으면 귀한 비타민도 채울 수 있고, 무엇이나 가장 얻기 쉽고 맛있는 재료였다.
"진화를 안 하는데도 끈질기게 살아남는구나...
미안하다. 내 하찮은 생 좀 이끌어가겠다. 너희를 죽이는 구나."
늘 느끼는 기분이다. 언제가는 나도 우월한 존재에게 유린 당하면서 죽는다고 생각하면, 계속 속죄하면서 살지 않으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아파서, 빨리 일을 끝내고 마을로 향했다.
"다 가만히 있어!"
마을로 가보니 적어도 다섯은 되보이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왜..? 우리 마을에 외부인들이.."
그들은 잠시 서로 대화를 나누더니, 곧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걸 보고 모두 밖으로 나왔지만 그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나서야 하나, 사람들이 위험한데....
어...쟤가 왜...!"
"그만하세요---!"
그 순간 아야가 나서서 소리쳤다. 그러자 한 놈이 거칠게 멱살을 잡아올렸다. 칼끝이 목에 닿았다. 도끼를 손에 꽉 쥐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 도끼를 크게 들어서 반동으로 그녀를 잡고 있는 팔을 내려쳤고, 재빨리 떨어지는 그녀를 받았다. 이후 그녀를 내려주고, 다시 발을 떼었다. 지켜야 한다. 지켜야.... 잘린 팔부분을 잡고 아파하는 사람의 다리에 도끼를 내려쳤고, 그 순간 뼈가 부서지는 감각이 도끼를 통해 손으로 넘어왔다. 다가오는 다른 한명의 가슴팍에 도끼를 던졌고, 순간의 단말마의 비명과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팔이 잘린 한 녀석은 충격으로 기절한 것 같았는데, 흘린 피의 양으로는 살지는 못 할 것 같았다. 다른 한명은 숨을 못 쉬어 켁켁 대었고, 그때마다 피를 토해냈다. 이 광경을 본 다른 패거리들은 살고 싶다는 듯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나는 서둘러서 아야에게 다가갔다.
"허..헉.. 아야 괜찮아...?"
아야는 울면서 안아주었고, 나는 피묻은 손을 보게 되었다. 이 손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쥔 건지....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의 눈빛에는 이제 어떻게 되는건지에 대한 두려움, 지금만큼은 지나갔다는 안도감, 나를 무서워하는 공포심이 서려보였다. 안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감정에 속이 안 좋았다. 이번 피는 씻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들어가는 집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아저씨가 나를 보고 살며시 안아주셨다. 마음이 심란해, 서둘러 방에 들어가는 나에게 주인 아주머니 잘 했다면서, 해야 할 일을 했다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문으로 보이는 방이 너무 좁아보였다. 사람을 죽인 나를 가둬둔 감옥처럼 느껴졌다. 너무 속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갈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밖은 공포로 생긴 혐오어린 시선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밖에... 누구야!!"
신경이 곤두서 있던 탓에 방문 밖의 기척에 소리치고 말았다.
"유인...들어가도 될까..?"
아야였다. 아야는 들어와서 흥분한 나를 아무 말도 하지않고 안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잠에 들었다.
"숨이 안 쉬어져... 앞도 안 보여.."
방에는 검은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나는 괴로워하며, 몸이 연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숨이 쉬어졌고, 시야가 돌아왔다. 어째선지 눈물이 살짝 흘렀다. 연기 때문만은 아니였다. 이윽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창문으로 보았을 때는 마을이 강렬한 불길에 삼켜지고 있었다. 안돼...아주머니, 아저씨....아야!!!
"아야, 일어나야 해! 빨리 제발.... 일어나줘!!!!!!!!!!"
아마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아야를 업고 밑으로 내려가서 아주머니 방 문을 열었다. 열자 불어오는 열기는 나를 태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것은 타고 그을린 재뿐이었다. 애써 침착하려는 손끝이 떨려 아야를 놓고 말았다. 그 충격인지 몰라도, 위에서 나무판자가 떨어져나갈 곳이 없어졌다.
"아야....너만은 살리고 싶어..
제발...."
그저 더 살기를 바래서 그녀를 안고, 내가 먼저 죽어 그녀가 살았으면, 나 타는 걸로 끝이었으면.....
푸르른 풀이 우거진 회색빛의 한 마을을 걷고 있었다. 바닥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있었다. 근데 그 모습이 검은색에 사람을 닮았고, 얼굴엔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다. 잔혹한 광경이어서일까, 눈에서 아무말없이 눈물이 나왔다. 눈을 닫고 다시 걸으며, 걸으면서 느껴지는 건 시원한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나를 다시 익숙한 곳으로 불러온 것처럼 알 수 있었다. 여긴 내 고향이구나. 폐허가 된 마을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안정감을 느꼈다. 모순에 잠식된 내 마음을 깨우는 듯이 발목에서부터 검은 시체들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 시체들은 나를 넘어뜨렸지만, 이상하게도 두려움은 없었다.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받아들였다. 눈앞에 얼굴 하나가 나타났다. 입부분이 찢어지면서, 새로 생긴 입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다… 너 때문이야!!!!!!!"
차가운 피가 튀었다. 정신이 확 들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아야를 안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믿기 힘들 정도로, 주변에는 불타고 있는 떨어진 판자랑 무너진 지붕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또한 내 몸에는 화상 자국 하나 없었다. 아야의 코 근처에 손을 가져가자, 따뜻한 콧바람이 느껴졌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살아있구나… 몸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고, 시야가 흐려져 점점 앞이 안 보였다.
"아...아야......."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