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입사한지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바라던 취직에 성공했는데, 전혀 기쁘지가 않고 만족스럽지 않다. 간절하게 원했던 개발자가 되었고,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기쁘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의 걱정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달라져 많은 것이 낯설고, 무엇이 어떻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나의 글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쓰는 글인데, 아마도 이 글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동경하던 스타트업 세상으로

군대에선, 싸지방을 가면 뒤에 사람들이 기다려서 하루에 30분밖에 컴퓨터를 못쓰곤 했다. 30분 동안 페이스북으로 매일매일 한국과 미국의 소식을 찾아보고, 휴가 때는 데모데이에 갔다. 그렇다. 나는 스타트업씬의 찐 덕후였다.

그렇게 막연하게 상상만 하고 동경하던 스타트업 세상에 어쩌다 보니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회사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만날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스타트업은 이렇다 말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지금 나는 동경이 이해로부터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 많고, 노련해 보이는 형들이 술 먹으면서 이상과 현실은 다른 거야라고 말할 때 난 속으로, "오 .. 뭔가 멋있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이라는 단어가 개인적으로 좀 마음에 안 들고, 정이 없어 보여서 나는 그런 말을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현실"속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시간이 자꾸 꽤 많이 지나가 있더라.

기획팀은 생존하기 위해 기획을 한다. 경쟁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신경 쓸 틈도 없다. 고객의 신고가 들어오고, CS 팀은 대응을 한다. 가끔은 너무 마음 아픈 신고가 들어올 때가 있다. 주간 회의를 하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고 저번에 있던 사람이 안 보이기도 한다.
나는 쌓여있는 todo 중에 가장 급한 것을 골라 개발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당연히 고를 수 있지만 급한 일이 있는데 내 취향이 무슨 상관이 있나 싶다. 그러다 버그가 발생하면, 얼른 해결해야 하는데, 잘 안된다. 해야 할 일도 버벅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른다.

프론트앤드 개발자로 입사를 했는데, 프론트앤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서버 코드를 직접 수정하게 되고, SQL을 공부해 쿼리를 날리고 있다.

원피스를 찍는 마음으로

이번 주에 짜고 있는 코드는 매출을 차트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략 하나의 차트를 그리기 위해 8번 정도의 함수 호출이 일어난다. 거울을 봤는데, 혀에 뭐가 나고 입술이 갈라져 있더라. 칼퇴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고, 도망칠 곳도 없다.

어쩌면 내가 너무 철이 없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만화를 좋아해서, 웹툰도 많이 보고 만화책도 많이 봤다. 그중에서도 소년만화를 좋아했다. 나도 만화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찐하게 살고 싶었고, 좋은 동료들과 허슬 하면서 부대끼고 싶었다. 그 삶이 멋있어 보였다.

막연히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스타트업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 상상과 실제로 하는 것의 차이일 뿐인데, 참 많이 다르다. 원피스를 읽는 것과 원피스를 찍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마무리하며

입사를 하기 전에 선배들을 만나서 조언을 구하곤 했다. 그러면 선배들은 "넌 왜... 굳이 스타트업을 하려고 해?"라고 물어보곤 했는데, 난 그때마다 1초도 고민 없이, "간지나서요" 라고 했다.

선배들은 멋있어 보여서 하고 싶은 거라면 절대 하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대 했다. 그게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멋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런 꿈을 꿀 생각도 못했을 거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꿈이 중요하다 말하면서 타협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서생적 문제의식과 현실적 상인 감각 사이에서의 타협. 회사에서는 시간과 욕심 사이에서의 타협인데, 대체로 타협이 안돼서 회사에서 자기도 한다. 요새는 왜 이리 회사에 모기가 많은 건지 자꾸 자다가 깬다.

이유도 핑계도 많지만 결국엔 내가 더 잘해지는 수밖에 없다.
정신건강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