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규모의 회사를 다니면서 내 안의 중심을 잡는 법

인덱스·2023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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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분석팀의 유일한 일원으로 일을 한지도 한 달이 되었다. 그간 했던 고민과 나름 찾은 해결책을 쓰며 곳곳에 감정을 녹여내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썼던 다짐글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을 쓰고 싶었는데 이 복기가 지금의 나에게는 더 필요한 글이라는 핑계를 대본다.

지난해 하반기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대기업 공채에 도전했다. 그동안 '나는 대기업과 어울리지 않아'나 '내가 어떻게 대기업에 가'와 같은 생각들로 도전조차 하지 않았었다. 왜 저런 생각들을 했었나 돌이켜보면 만족할 만한 성취의 경험이 없었거나 혹은 원인은 모르겠지만 계속 느껴지는 결핍에 스스로를 축소시켜왔던 것 같다.

데이터의 세계에 들어서면서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려 스스로를 감싸고 있던 막을 검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목표를 세웠고 크고 작은 성취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창하고 높은 목표보다는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상태를 정하고 이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정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데이터에 대한 지식과 함께 삶을 대하는 자세도 배우게 되었다.

  • 성장은 계단식이다.
  • 무엇이든 1년을 꾸준히 하면 조금은 아는 정도가 된다.
  • 잘 몰라서 재미있는 것 같다면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다.

혼자 긴 시간을 보내며 터득한 감각들에 감사했다. 하지만 취업은 별개였다. 취업 시장에서 나는 성장하고자 하는 기세만 넘치는 비전공자에 무경력자였다. 심지어 그동안 인턴을 세 번이나 한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도 면접 때마다 마주해야 했다. 공채라는 긴 호흡의 과정 속에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한순간에 꺼지기도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조마조마 함에 긴긴 하루를 보냈다.

하필 제일 가고 싶었던 회사가 마지막 카드로 남아 있었지만 면접을 되돌아보면 볼수록 점점 탈락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적중했다. 그러자 공백으로 남게 될 몇 개월과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통잔 잔고가 걱정됐다. 이보다 더 바닥일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이보다 더 바닥일 수 있구나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고 이게 바닥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게 연말을 보내면서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봤다. 나는 왜 데이터를 공부하려고 했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거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고 또 새로 적어보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 꾸준히 공부하는 것,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세상에 부딪히는 것.

불안할 때마다 공부했고, 지원서를 적었고,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다. 수없이 탈락했고 외면당했지만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집이랑 가까운 위치에 있어 걸어갔는데 이상하리만큼 긴장이 되지 않았다. 걷기가 도움이 되었을지 그간의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긴장하지 않은 채로 회사에 갔다.

기술이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유독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평소 생활 패턴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운동을 하는지, 호기심이 많은 편이지, 많다면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회사 생활하면서 힘든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는 내가 이 조직과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면 힘들다고 답했다. 20년 뒤에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질문에는 어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더라도 그걸 익히고 결국 데이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다고 답했다.

나는 그날의 대화가 만족스러웠고 결국 그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1. 회사의 크기와 나의 가능성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크든 작든 회사는 회사다.라고 생각했지만 2-3주차가 됐을 때는 심각하게 고민이 되었다. 거기다가 대기업을 가지 못한 내가 실패자라는 생각이 갑자기 물밀듯 들어왔고 연봉에 대한 회의감과 수습 기간에 대한 불안감까지 더해져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답을 내렸다.

Q. 괜찮을까?
A. 괜찮을 것 같다. 회사도, 나도.

회사는 회사고 나는 나다. 이 회사의 규모를 나와 동일시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였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도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졌다. 내가 담당하는 일이 명확했고 회사의 비전에 공감이 되었고 함께 일하는 분들의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회사의 크기와 상관없이 나만 내 스스로를 작아지게 안 만들면 된다.

2. 먼 미래를 상상하며 눈앞의 것에 집중한다.

지금 회사의 도메인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하고 싶었던 직무로 가고 싶었던 도메인의 지식을 익히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니,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래서 불안해질 때면 먼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본다.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 상상하다 보면 앞에 주어진 것에 신이 난다. 내 것으로 잘만 만들면 나는 상상하던 나와 가까워지는 거니까.

처음에는 당연히 잘 모르고 서툴다는 것에 도가 텄다. 그래서 헤맬 때마다 속상해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모르면 공부하면 되고 헤매면 안 헤맬 때까지 연습하면 된다. 그게 가능한 환경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3.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비즈니스와 기술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질문하고 명쾌한 답을 돌려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이분들이 하나씩 가르쳐 주실 때마다 얼마나 설레는지 모른다. 데이터 분석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은 아닐지라도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거나 해결 방법에 대한 여러 선택지가 있음을 알게 될 때마다 솔직히 짜릿하다.

물론, 데이터 분석에 대한 전문성이나 스킬업에 대한 고민이 동시에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혼자서 오래 지내온 시간들 덕분에 공부 습관이 잡혀 있기도 하고 때에 따라 필요한 공부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어서 일단 해보기로 한다. 결국 스킬은 도구이니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스스로를 갈고닦아야 한다. 지금은 도메인 지식에 무게를 더 싣기로!

그리고 회사가 집하고 가깝다 보니까 출퇴근을 주로 걸어서 하는데 이게 정말 큰 메리트다. 체력이 세잎 되다 보니까 저녁 시간에도 공부를 할 수 있고 아침저녁으로 걸으면서 스트레스 관리도 된다. 지난주에는 금요일 저녁에도 체력이 남아 있는 나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어느 정도 적응도 하고 체력 확인도 했으니 내일부터는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목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입사 첫날에 대표님이 물어보셨다. 그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무엇을 배웠냐고. 그때는 "나만의 모서리를 찾는 것"이라고 답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자면, "나라는 사람에게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답할 것 같다. 나에게는 성장이 너무 중요해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괴롭고 조금이라도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희망이 생긴다.

회사의 규모가 주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나라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라는 사람에게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앞으로도 종종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스스로 작아지는 날이 있겠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과 그로 인한 성장이 주는 기쁨에 금방 괜찮아질 것 같다. 지금의 회사에서 보내게 될 시간에 오늘 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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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맨 만큼 내 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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