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회고

여니링·2022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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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SW 개발자 (이하 개발자) 친구 분들을 통해서 건너건너 넘어오는 글들을 보니까 많은 개발자들이 회고라는 문화를 공유하는 것 같다.
가끔씩 눌러보면 나랑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껴지고, 정말 '좋은 회사'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런 수준인가? 나는 그런 좋은 회사는 못 가겠는걸...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실 나같이 회사 일만으로도 하루가 고된 평범한 개발자들이 훨씬 많긴 할 것이다. 기술 블로그까지 운영하면서 회고를 작성하는 사람들의 평균 수준이 높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새해에는 위에 이탤릭체로 써 있는 사람들의 반열에 나도 슬쩍 껴보고 싶은 바람이 쪼금 있었다. 그래서 기술 블로그를 새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나도 회고란 걸 한번 써보기로 했다.

사실 회고에 걸맞게 2021년 마지막 날에 쓰고, '2021년 마지막 날에 쓰는 블로그 첫 글!' 같은 느낌을 내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글을 슉슉 써내려가기가 어려워서 새해 첫 날 글이 되었다. 2022년 첫 날에 쓰는 블로그 첫 글!

이미지와 본문은 관련이 없습니다... 아마도...

#첫회사

사실 첫 회사에 입사를 했던 건 작년... 아니 이젠 재작년,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길었던 취준생활이 드디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첫 회사와의 연은 얼마 가지 못했다. 제대로 된 코드도 못 만져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에 박혀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생활이 시작됐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가뜩이나 없었던 자신감도 더 많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빅테크' 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있는 이름있는 스타트업이나 중견기업을 목표로 했었지만, 더이상 취준기간을 길게 가져가기는 힘들었다. 목표를 재조정해 로켓펀치에서 초기 단계 스타트업 몇 군데를 찾아 지원을 했다 (프로그래머스나 원티드 등 다른 플랫폼들에 비해서 로켓펀치에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 정보가 많았다). 지난 21년 초였다. 한 곳에서 합격 소식을 전해왔고, 고민 끝에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스타트업

사원 수 10명이 채 안되는 작은 스타트업. 그래도 기술 중심의 회사 같았고, 유명 서비스 회사 출신의 개발자 분도 계셔서 나만 잘하면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혹은 태도가 좋지 않아서 수습 탈락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개월 뒤에 회사에 더이상 남지 않게 된 건 내가 아니라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선임 개발자 분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주니어 개발자분도 퇴사하고 공부를 더 하겠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회사에 내 자리가 없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나 혼자 남아버려서 걱정하게 되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스타트업은 불안정하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였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빠져나가도 여전히 일할 사람들이 충분하거나, 금방 새 사람들로 그 자리를 메꾸거나 할 수 있었을텐데, 우리 같은 스타트업에선 그게 안 되는 것이다.

다행히 같은 사무실을 쓰는 모회사 시니어 개발자분의 긴급수혈을 받았다. 모회사라지만 어디까지나 본업은 그쪽 일이니 우리 회사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케어해주실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엉망진창이었던 개발환경을 정리해 주셨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의지할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라 해야 할지, 그분 덕에 이전 3개월보다 더 많은 배움을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있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개발자에게도 좋은 동료들을 곁에 많이 두는 것이 빠른 성장의 비결이라 들었다. 그 시니어 개발자분 말고 다른 개발자분을 최근에 새로 모셨고, 새로운 CTO님도 오실 예정이라지만, 한동안은 여전히 작은 규모의 개발팀일 것이다. 뛰어난 개발자들이 많은 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나 SNS를 볼 때마다 저런 사람들이랑 점점 격차가 벌어질텐데...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스타트업이라서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도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한다 (스파이더맨 뽕이 아직 안 빠졌어,,). 큰 회사에서 내가 뭘 잘못 건드려서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후폭풍이 엄청날테니까... 애초에 그럴 여지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운영 DB나 서버를 신입 개발자가 직접 건드리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나는 불과 한두달만에 DB와 AWS 인프라를 직접 손대고, 서버를 배포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기보다는, 해야 했다.

새로 만든 기능을 개발 DB에서 테스트해야 하는데 운영 DB에서 테스트하는 바람에 유저들이 보는 목록이 바뀌어버린 적도 있고, 배포하다가 에러가 나서 서비스가 죽은 적도 있다. 실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큰 돈이 오가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얘기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것도 의도한건 아니지만 선임 개발자들이 죄다 나가는 바람에 서비스를 지탱하는 각 부분들의 모든 코드를 내가 맡게 됐으니, 부담감도 없진 않지만 나름 뿌듯함도 있다. 1단 로켓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자유로움을 꿈꾸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회사들도 많다고 하더라.
그런 점에선 우리 회사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일단 워라밸이 좋다. 연차 쓰는 건 정말로 자유롭고, 갑자기 서버에 급한 문제가 생기거나 그런게 아닌 이상에야 야근 강요도 없다. '꼰대 부장님' 도 없고, 사람 스트레스가 적다. 사실 사람이 있어야 사람 스트레스도 있는건데 사람이 없으니 당연한 걸지두 (...)

#프로덕트

일년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일을 하면서 얻었던 가장 큰 깨달음은, '프로젝트' 랑 '프로덕트' 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개발자로서 회사에서 개발 일을 시작한지는 아직 일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를 만들어본 경험은 생각해보면 꽤 있었다. 학부 시절에도 실습 과목이나 졸업과제 같은 것들을 했었고, 대학원 시절에는 논문을 쓰고 연구 프로젝트 보고서에 넣기 위해 개발을 했었고, 취업하기 직전에는 부트캠프에서도 팀을 이루어 개발 프로젝트를 했었다.

흔히 토이 프로젝트, 사이드 프로젝트라 부르는 이런 산출물들의 특징은 실제로 쓰는 유저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고... 최근에 이슈가 됐던 크리스마스 트리 사이트처럼 사이드 프로젝트를 많은 유저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케이스도 있겠지만, 보통은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힌 것으로 끝나거나 발표나 포트폴리오를 위해 잠깐 시연될 뿐이다.

딱 한번만 잘 보이면 되니까, 미리 준비한 테스트 케이스에서만 잘 동작하면 된다. 그러니 예외처리도 필요없고,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는 별도의 인터페이스도 딱히 필요없다. 동시접속자 수가 많아야 몇 명이나 십수명일 테니까 서버가 처리할 수 있는 트래픽의 양이나 트랜잭션 같은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응답 속도도 늘 사용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잠깐 보고 마는 것이니 크게 체감하기 어렵다. 발표하고 나면 더이상 유지보수도 필요 없으니 코드 퀄리티도 중요하지 않다.
이런 것들보다는 힙한 최신 기술 스택과 복잡해보이는 기능, 유려한 디자인이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는 더 크게 어필할 수 있다 (실무 경험이 많은 뛰어난 개발자들은 그렇게 평가하지 않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환경은 그랬다). 나는 최신 트렌드를 접목한 아이디어와 어떻게든 기능을 만들어내는 것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부트캠프에서는 상도 여러 번 받았다. 그땐 기고만장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만들게 된 건 실제 유저가 있는 '프로덕트' 였다. 우리 회사같은 경우엔 모바일 앱을 만드니까 그 앱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있고, 앱에 들어갈 컨텐츠를 DB에 입력하기 위한 관리자용 사이트 (백오피스) 가 있는데 그 사이트를 사용하는 기획자와 디자이너 또한 유저다. 앱이 느리고 불안정하면 유저가 이탈하고 삭제율이 올라간다. 관리자 사이트가 느리면 기획자가 답답함을 호소한다.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누가 자세히 가르쳐준 적도 없고, 그런 일을 겪어보질 않았으니 따로 공부한 적도 없었다.

지난 한 해동안 회사에서의 개발을 경험하면서, 특히 기존 개발자들이 다 퇴사한 뒤에 그 모회사 시니어분과 함께하면서 새롭게 배운 것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런 내용일 것 같다.

토이 프로젝트 개발과 실제 서비스 개발은 어떻게 다른가...!?

이 내용으로 한동안 블로그를 꾸려나가볼까 생각한다.

#직장인의삶

직장인으로서 '출퇴근' 이란 걸 하게 되면서 절실히 느꼈던 건 체력의 필요성이었다.

다행히 스타트업에 대해 갖고 있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우리 회사는 워라밸이 좋긴 하지만, 회사가 집에서 꽤 멀다. 편도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데, 출퇴근 시간을 합하면 2시간 반 정도를 출퇴근길에 쓴다.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러시아워를 살짝 피하고 싶어서 10 to 7 근무를 주로 하는데, 집에 도착하면 보통 8시 반 정도가 된다.

회사랑 집이 가까우면 제일 좋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쉽지 않구... ㅜㅜ 취미생활이 됐든 자기계발이 됐든 퇴근하고 나서 뭘 할 기력이 남아있어야 할텐데, 집에 들어오면 으어어 하면서 드러누워버리니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 들어서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다행히 주말은 보통 프리해서 취미생활 정도는 하긴 하지만... 내년엔 체력을 어떻게 좀 키워서 평일에도 퇴근하고 나서 뭘 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얘길 회사에서 했더니 청약 꾸준히 넣어보라고...
청약 하니까 생각난건데 취업을 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또 많이 신기했던 (?) 게 대화 주제였다. 나는 평소에 친구를 만나거나 SNS에서 대화를 하면 보통 취미나 관심사, 아니면 가벼운 일상 얘길 많이 하는데, 회사에 들어가보니 밥 먹으면서 제일 많이 오가는 대화 주제가 주식이랑 집, 재테크 얘기였다. 한동안은 비트코인 얘기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많이 들었고 (주로 한 분 때문이었지만)... 내가 참 그런 현실적인 (??) 것들에 무신경한가 싶기도 하구, 아무래도 회사니까 그 이전에 내가 속해있던 집단이나 친구들보다는 평균 나이대가 높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 그렇다.

워낙 주식, 코인 얘기가 자주 나오다보니 문외한이었던 나도 최근 들어서 주식을 시작했다. 취업한 기념으로 적금을 들었는데 이율이 너무 귀염뽀쨕해서 이래서 다들 주식, 코인 하는구나 싶었던 것도 있구,,

그러니까 삼전 화이팅! 떡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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