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장에서 넘어진다는 것

한시온·2023년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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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학교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스키장에 다녀왔다. 놀기로 한 것은 꽤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한 친구가 카셰어링 플랫폼에서 매우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받았다며 놀자고 했다. 그러다 내가 스키장을 제안했고, 우리는 그렇게 스키장을 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먼저 스키장을 정해야 하는데 각자 거주하는 곳이 달랐다. 3명은 포항, 1명은 경산, 1명은 울산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삼천포에 산다. 모두 경상도 내에 있으므로 경상권에 유일한 에덴벨리 스키장이 낙점되었다.

그 다음은 차량 한 대로 모두를 태우고 스키장에 가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야 했다. 출발지는 포항, 목적지는 에덴벨리 스키장으로 고정되어 있고 공유지의 순서를 정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포항에서 출발해서 스키장까지 바로 가도 1시간 반이 소요되는 데다 삼천포는 너무 멀어서 모두 경유하기에는 오전 중에 스키장에 도착할 계산이 서지 않았다. 결국 삼천포에 사는 친구와 울산에 사는 친구는 스키장이 위치한 양산까지 직접 오기로 합의를 보고 가는 경로는 포항 - 경산 - 스키장으로 확정되었다. 다같이 모이기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각자 일을 하면서 멀리 떨어져 지낼 때는 더 어렵겠지. 우연 같은 이 만남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로 필연이 되었다.

스키 초보인 우리에게 스키장은 스키를 잘 타기 위해 연습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추억을 쌓는 것이고, 스키장은 그 수단일 뿐이었다. 스키장을 가면서 “우리는 스키 타러 가는 게 아니고 사진 찍으러 가는 거”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스키장에서 사진 찍는 것을 민망해하는 친구가 있을까봐 사진 찍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스키장에서 나의 모습은 넘어짐의 연속이었다. 몸이 기억한다지만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남짓 타는데 감각이 금새 돌아오진 않는다. 슬로프를 한 번 내려오는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철푸덕 넘어졌지만 넘어짐도 스키(또는 보드)를 타는 과정 속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넘어진 나도 이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넘어진 것 가지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서 내려갈 수 있다는 생각

우리는 스키를 타다가 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넘어져도 괜찮다”고 여긴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내가 든 생각은 다음과 같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다 중간 지점에서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 중간 지점에서 출발하면 된다. 또 넘어지면 그 지점에서 일어나 출발하면 그만이다. 힘들면 바깥쪽에서 충분히 쉬다 일어나도 된다. 만약 타다 넘어졌는데 슬로프 정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면? 한두 번은 재밌겠지만 슬로프를 완전히 내려오기 위해서는 넘어지면 안되므로 넘어지는 것은 곧 실패가 된다. 이렇게 되면 넘어지는 게 겁이 난다.

나도 넘어질 수 있다는 생각

스키장에서 넘어짐에 관대한 또 하나의 이유는 넘어지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흔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넘어짐이 나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넘어진 사람에 대해 걱정하면 걱정했지 절대 비웃을 수 없다. 그런데 만일 스키를 타면서 넘어질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삿대질하며 비웃는다면? 슬로프 가장 자리로 이동해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빨리 일어나라고 닦달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웬만큼 멘탈이 세지 않는 이상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 넘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넘어지면 재빨리 일어나 주행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며 이때부터는 조급한 마음에 자신의 페이스대로 주행하기가 어렵다.

스키장 같은 공동체를 꿈꾼다

우리는 모두 스키장이 필요하다. 넘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안전지대 속에서 우리는 서로 연대하며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가 속한 전산 동아리인 슬기짜기와 고전강독학회가 스키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슬기짜기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과감히 시도해보는 공간으로, 고전강독학회는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스키장을 원한다면 아무래도 자기 자신부터 스키복을 입어야 할 것이다.

온 세상에 눈이 내리는 그날까지, 항상 겸손하고 성실하게 실력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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