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정론적일까, 확률론적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 모든 곳에는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이 사용된다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것을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과 많이들 비유한다.
linear하게 성장하는게 아니라, 한 순간 jump했다가 정체되고(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또 꾸준히하면 어느 순간 jump한다.
나는 다르게 정의하고 싶다. 통계학과니깐..
한 1차원 직선이 있다. 숫자 1부터 끝없이 펼쳐진 수직선..
그리고 그 위에는 종 모양(Bell Shape)인 정규 분포가 위에 생성되어 있다.
이것은 출생의 시작에 대한 분포다.
우리는 운에 의해, 우연에 의해,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에서부터 선진국의 고소득층이 될 수 있다.
매우 극소수만이, 선진국의 고소득층이 될 수 있다. 극 소수만이 개발도상국의 저소득층이 될 수 있다. (세계 전체를 봤을때)
매우 높은 확률로 우리는 mean +- 3 s.e.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99.7%를 포함한다.)
3 s.e.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기며, 누군가는 울고 고통받는다.
(평균이 좋다는 사회주의 같은 게 아니다. 단지, -3 s.e.와 +3 s.e.의 차이로 수많은 사회 부작용, 해악이 생긴다는 것이다.)
순서는 없지만, 재능의 정규분포가 있다.
우리 모두는 어느 한 분야에서는 재능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정규분포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극 소수만의 재능으로 인해 성공할 것이고, 극 소수는 재능이 없어서, 아무리해도 안될 것이다.(나는 음치, 비염으로, 가수는 꿈꿔보지도 않았다.). 재능에는 돈벌기, 주식, 수학, 영어, 뭐 세상에는 엄청 많다.
즉, 모든 재능의 수직선에 각각 정규분포가 생성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노력의 정규분포"가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설명할때, 좌표계의 개념을 만들어 이해를 도왔다.
나도 좌표계 개념의 들여, 노력의 상대성을 설명할려고 한다.
노력의 정규분포는 상대적으로 생성된다.
다시말해서, 재능의 정규분포, 출생의 정규분포는 절대적으로 생성된다.
이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거다.
시작할때 이미 결정되어버려진 정규분포들이다.
하지만 노력의 정규분포는 내가 서 있는 곳에 생성된다.
그래서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서있는 대학교, 내가 서있는 인간관계, 내가 서있는 역량, 내가 서있는 돈, 내가 서있는 연인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는 내가 환경에 의해, 바운더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환경에 대해서, 각각의 노력의 정규분포가 생성된다.
내가 노력을 해서 어느 한 정규분포의 극단치로 갈수록, 그 다음 단계의 환경으로 갈 가능성이 높이지게 된다.
노력을 할수록 극단치로 간다는게 포인트이다.
극단치로 가면, 나를 바운더리 시키는 환경에 의해 영향을 덜 받게 되고,
다른 환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어느 환경으로 가는 건, 또 정규분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노력의 정규분포로 인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원하는 환경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아쉽게도, 사람마다 노력에 들이는 시간 대비 효율성, 즉 노력의 질도 정규분포를 따르는 것같다. 하지만 노력의 질에 대한 정규분포도 노력의 정규분포에 포함된다.
이는 기존에 노력하면 잘해진다랑 똑같은 말을 반복한 게 아닌가?
통계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은 어떤 곡선이든 정규분포를 통해 근사시켜, 곡선의 빠진 값이나 미래의 값을 예측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생각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다는 주장하는 거 아닌가?
나는 확률로써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모든건 그저 사람의 외적인 것에 비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