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테크코스 한 달 생활기

후추·2023년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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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헤엄

어푸어푸. 세수를 한다. 페어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졸려서 나왔다. 밤 10시다. 정신이 멀쩡한 게 이상한 시간이었네. 다시, 어푸어푸. 얼굴에서 물이 뚝뚝 흐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꼭 물에 빠진 생쥐같다. 그래 어쩌면 정말 물 속이다. 우아한테크코스 이곳은

바다다.

분명 코딩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우아한형제들에서 주관하는 코딩 교육이라고. 슬쩍 찾아봤는데 체계가 있어 보였다. 외부에 비춰진 교육생들 모습도 폼이 났다. 다들 무릎에 근사한 노트북을 올려두고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 나도 저기서 배워야지. 그 길로 우아한테크코스에 들어왔다.

그런데 웬걸 냅다 바다에 빠뜨렸다. 가만히 있으면 미션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할 일이 모래사장만큼 쌓인다. 어라라 떠밀려서 죽는 건 아닐까. 영문을 모른 채 빠진 바다에서 팔을 휘휘 내젓는다. 어푸어푸. 살려주세요.

거북목

몸에서 힘을 빼야해. 물에 온몸을 맡겨. 그러면 두둥실 뜰거야. 팔을 노라고 생각하고 크게 저어봐. 리듬에 맞춰 발을 차야지 - 라고 구릿빛 피부를 가진 수영 선생님이 그랬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선생님. 어린 시절 나는 자꾸 가라 앉았다.

책임을 분리하셔야죠. 이 객체가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어요. 객체가 일하지 않네요. 객체가 직접 일하도록 해보세요. 객체를 의인화해서 생각하면 좋아요 - 라고 거북목을 가진 코치님이 그랬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코치님. 사실 코딩은 수영이었을까. 코딩을 못해서 이번에도 가라 앉는 중이다. 혹시 구명조끼를 주시면 안될까요. 저는 비전공자에요. 코치님은 방긋 웃으며 길게 뺀 거북목을 가로저었다.

펠프스

바다에는 나 말고도 다른 교육생들이 있다. 한번은 누군가 다가와 인사를 건네길래 나도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닉네임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분은, 저는 마이클 펠프스에요, 라고 했다. 와 그 유명한 펠프스라니. 과연 어깨가 떡 벌어지고 팔이 긴 게 예사롭지 않았다. 펠프스는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 뻐끔뻐끔 입을 놀렸다. 나중에서야 그게 의식적인 아가미 호흡 연습이라는 걸 알았다. 펠프스는 인사를 나누고 헤엄쳐 갔는데,

음 파 음 파

그렇게도 완벽한 호흡이라니. 유유히 멀어지는 그의 뒤에서 내 헤엄은 어린애 물장구가 되었다. 어라라 사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그날 밤은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알로하

바다에서 생활이 한 달 쯤 지나자 헤엄이 익숙해진다. 이제는 제법 앞으로 나아갈 줄도 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지. 내가 갈만한 곳이 있을까. 고개를 들어보니 펠프스는 벌써 멀리 한 점이 돼 있다. 저쪽에 있는 섬이 궁금해서 한번 돌아보고 오겠단다. 글쎄 나는 어디로 갈까. 일단은 음파음파가 되어야지. 그 다음은 뻐끔뻐끔이야. 그때쯤이면 가고 싶은 곳이 생기지 않을까.

큰 파도가 다가와서 또 다시 두 팔을 허우적거린다. 그럼에도 저만치 먼 바다에, 알로하. 인사를 건네본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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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4일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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