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Y Combinator 채널에 올라온 개리 탄(Garry Tan) 대표의 Y Combinator Startup School 2026 강연 "Own Your Intelligence"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코딩 에이전트를 쓰면 생산성이 몇 배 오른다"는 단순한 실무 팁이 아니라, 17세기 스피노자의 철학부터 산업혁명 당시 도구 소유권의 변화, 그리고 AI 시대 지식 노동자가 마주한 인지 외재화 문제까지 다루는 흥미로운 강연이었습니다.
월 20달러짜리 챗봇 구독에 머무르는 것과, 자신만의 데이터와 업무 방식을 자산화해 작업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강연 내용을 상세히 정리해 봅니다.
개리 탄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가장 AI에 과몰입한 사람"이라 부른다며,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합니다.
1656년 7월 27일, 23세의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파문을 당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죄목은 '금지된 생각을 품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동체는 파문 전, 그에게 매년 1,000길더(당시 기준 상당한 금액)를 줄 테니 가끔 회당에 얼굴만 비추고 침묵하라고 회유했습니다. 스타트업 관점으로 치면 "신사업을 멈추는 대가로 편안한 연봉을 제시한 것"과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1만 길더를 준대도 싫다. 안락함보다 진실을 원한다"며 거절했습니다. 이후 암살 위협으로 칼에 망토가 찢겼을 때도, 생각의 대가를 기억하겠다며 평생 그 옷을 꿰매지 않고 입었습니다.
이후 그는 낮에는 생업으로 광학 렌즈를 깎고, 밤에는 당시 출판조차 할 수 없던 책(에티카)을 썼습니다. 44세에 유리 가루로 인한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독립된 힘으로 도구를 만들고 생각을 기록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처럼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내적 동력을 코나투스(Conatus)라 불렀습니다.
"에이전트가 일주일 걸릴 업무를 반나절 만에 끝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편의가 아닙니다. 스피노자의 정의 그대로,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이 확장되면서 경험하는 기쁨에 가깝습니다."
스피노자가 파문당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신은 옥좌에 앉아 인간을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자연 만물에 널리 퍼져 있는 법칙 그 자체(Deus sive Natura)"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개리 탄은 우리가 지금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고 얘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AGI를 빅테크 데이터센터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발표될 거대한 단일 사건이나 완성된 초지능으로 기다립니다. 하지만 개리 탄이 제시하는 관점은 다릅니다.
"모두가 하늘만 쳐다보고 있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이미 우리 방 안에 와 있습니다. 신의 모습이 아니라 터미널 창, 마크다운 폴더, 밤새 돌아가는 백그라운드 작업의 형태로 퍼져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용 AGI(Personal AGI)의 개념입니다. 모두를 위한 하나의 거대 시스템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고유한 맥락 위에서 돌아가는 지능입니다.
[앞으로 10년의 작업 방정식]
= 렌트한 프론티어 모델 (원자재 성격, 점점 저렴해짐)
+ 내가 소유한 고유한 컨텍스트 (남이 복제할 수 없는 해자)
+ 둘을 연결하는 하네스 및 스킬 (내 작업 방식)

개리 탄 본인의 생산성 증가 그래프. 출처: Garry Tan: Own Your Intelligence
실제 Y Combinator 배치에서도 스타트업의 지표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1인당 생산성 지표입니다. 폴 그레이엄의 오랜 원칙인 "확장되지 않는 일을 하라(Do things that don't scale)"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제는 에이전트를 통해 개인이 '확장 불가능한 일'을 대규모로 처리하는 구조가 가능해졌습니다.
개리 탄은 25년간의 이메일, 메모, 회의록, 실패 기록 등을 22만 개 이상의 마크다운 파일로 구성한 시스템 GBrain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GBrain의 작동 방식]
1. 야간: 에이전트가 인박스를 단순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맥락에 맞게 처리.
어려움을 겪는 창업자의 메일이 오면, 과거 대화 히스토리와 유사 문제를 해결했던 포트폴리오 사례를 사전 정리.
2. 기상 직후: 단순 메일 목록 대신 정리된 브리핑 확인.
당일 미팅 상대의 이전 발언, 바뀐 점, 확인해야 할 질문 리스트를 미리 받아봄.
3. 실시간 대응: 업무 논의 중 에이전트가 내부 기록을 탐색해 필요한 선행 사례를 즉시 요약.

스킬 파일은 복잡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명확하게 쓰인 텍스트 지침입니다.
"일 잘하는 인턴이 읽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가이드라면, 에이전트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자연어로 명확한 업무 매뉴얼을 쓸 수 있다면 이미 에이전트를 프로그래밍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 YC에서는 비개발 직군인 재무팀 담당자가 에이전트를 활용해 100여 개의 엑셀 시트를 연동하는 내부 도구를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코더가 아니더라도 '에이전트 관리자'로서 일하는 형태입니다.
에이전트 시스템을 만들 때 흔히 겪는 실패는 작업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아서 발생합니다.

개리 탄이 제시하는 5단계 실행 가이드입니다.
| 단계 | 실행 항목 | 설명 |
|---|---|---|
| 1단계 | 에이전트 도구 설치 | Claude Code, Codex, OpenClaw 등 로컬 파일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환경 준비 |
| 2단계 | 개인 라이브러리 시작 | 폴더 하나를 만들고, 현재 프로젝트와 주요 협업자들의 핵심 맥락을 1페이지씩 마크다운으로 기록 |
| 3단계 | 첫 스킬 파일 작성 | 매주 반복되는 일 중 번거로운 작업(주간 보고, 회의록 정리, 리서치 등)의 업무 순서를 글로 정리 |
| 4단계 | 정기 작업(Cron) 연결 | "매일 아침 7시 인박스 분석", "금요일 주간 요약"처럼 부재중에도 돌아가도록 설정 |
| 5단계 | 작업의 스킬화 (Skillify) | 작업을 잘 마쳤다면 창을 닫지 말고, 에이전트에게 "방금 진행한 과정을 재사용 가능한 스킬 파일로 정리해 줘"라고 요청 |
[90일간의 진행 과정]
* 1주 차: 결과물이 다소 거칠고, 지침을 수정하느라 시간 절약 체감이 적음.
* 4주 차: 에이전트가 나만의 맥락을 반영해 답변하기 시작하고, 정기 브리핑의 실효성이 높아짐.
* 12주 차: 반복 업무 상당 부분이 스킬 파일로 처리되며, 동료들이 공유를 요청하는 자체 툴이 생김.
처음에는 나아지는 게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2주차에 흥미를 잃고 포기합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 있는 걸 꺼내서 문서화하고 실행하는 걸 꾸준히 반복하면 점점 플라이휠이 동력을 받아서 힘있게 돌아가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나아지는 게 잘 느껴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업무 효율이 급증합니다. 출처: Garry Tan: Own Your Intelligence
강연 후반부에서 개리 탄은 업무 지식의 소유권 문제를 짚습니다.
산업혁명 이전 장인들은 작업 도구를 직접 소유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공장이 들어서고 도구의 소유권이 기업으로 넘어가면서 장인은 공장의 부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식 노동자들은 '지식이 머릿속에 있으니 안전하다'고 여겨왔지만, 이제 업무 프로세스와 판단 기준은 텍스트 파일 형태로 추출되고 자동화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스킬 파일을 직접 소유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 업무 방식 자체가 누군가가 작성한 스킬 파일 하나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테크 분야에서 자주 나오는 세 가지 회의론에 대한 개리 탄의 답변입니다.
개리 탄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두 가지 사례를 덧붙입니다.
당대 유명 학자였던 라이프니츠는 헤이그의 다락방으로 찾아가 파문당한 스피노자와 3일을 보냈습니다.
이후 라이프니츠는 대외적으로 스피노자를 비판하고 만남을 축소해 말했지만, 사후 발견된 그의 연구 노트는 스피노자의 사상에 대한 메모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에이전트로 코드를 짠다고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비판이나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작업하는 환경을 들여다보면 이미 에이전트를 깊게 활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판적인 시선이 있다는 것은 새로운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개리 탄의 지인 중 한 명은 아들이 희귀 뇌전증 진단을 받자, 외부 지원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움직였습니다.
그는 관련 의학 논문, 진료 기록, 발작 일지, 약물 반응 데이터를 모아 8만 개의 마크다운 파일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의사가 새로운 치료법을 제안할 때마다, 아버지는 몇 분 안에 해당 방식이 과거에 시도된 적이 있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었는지 확인합니다.
"벤치마크 점수나 데모 영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개인이 노트북 한 대와 고유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개인용 AGI의 실제 모습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다음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문 만큼이나 어렵다 (All things excellent are as difficult as they are rare)."
개리 탄은 도구의 발전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난이도'의 장벽은 크게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도구를 활용해 개인이 어떤 '희소한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남이 제공하는 챗봇에 수동적으로 의존하기보다, 나만의 맥락과 스킬을 직접 기록하고 자산화해 나가는 흐름을 고민해 볼 만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