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6
나도 꽤나 지성인일거라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오늘만큼 악의 없이 책을 즐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 1부를 읽었다.
글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장면 전환이 잦은데 그 전환점이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참치형 몸을 가진 여인을 생각해내게 만들고,
그 아녜스의 손짓으로 아녜스는 내 지인이 되어버린다.
순식간에 아녜스의 가족사는 카페에 앉아 듣는 수다 마냥 턱을 괴고 몰입하게 되었다.
1부의 제목은 '얼굴'이다.
얼굴이란 내가 내가 되는 것이 라고 작가는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1부의 순간들은 아녜스의 얼굴이었던 것 같다.
아녜스의 얼굴은 순수한 고독 속에서 진정한 개인적인 것을 찾아낸다.
아주 인상적인 구절이 많았다.
나에게 흘러들어왔던 생각들이 이렇게 멋진 통찰력으로 다시 표현된다는게 정말 벅찼다.
요즘에, 아주 가까운 사람을 지켜보면서 그 사람의 아주 사소한 무언가에 뒤섞인 시선을 만들어질 때가 가끔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라.
얼굴은 단지 어떤 견본품의 일련번호일 뿐이다.
...
삶과 죽음에 대한 열정적인 동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눈에 인간 원형의 단순한 한 변이체로 비치지않고,
상호 교환이 불가능한 고유의 본질을 지닌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증오의 올가미는 우리를 너무나 긴밀하게 증오 대상에 옭아맨다.
...
서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상대의 몸을 꿰뚫는 두 병정의 외설스러운 친밀함.
아버지는 바로 그런 친밀함이 싫었다는 것을.
뭔가 자세하게 적고 싶은데,
내 생각을 포장하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정도만 적어도 내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오니 오늘은 여기서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