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내용은 나를 인터뷰하는 느낌으로 작성해봄
내가 많이 받은 질문들과 주변에서 많이 고민하는 내용들을 주제로 삼았다.
나는 30대 중반 비전공자였다. 유사 진로도 아닌 국어국문학과라서 완전 문과 출신이었다.
지방국립대 출신이고 그나마 학부생 때부터 수학과외를 하였고, 이직하기 전까지 3군데 학원에서 총 5년 정도 수학 강사를 겸하기도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학군 장교, 보험 설계사, 1인 스타트업였지만 법인사업자, 개인사업자 그리고 일용직이나 계약직까지 다양한 일을 해왔다.
사실 새로운 도전으로서 시작은 21년 1월 1일이다.
당시 나는 학원과 야간 배송보조를 겸하고 있었다.
30대가 된 지도 몇년 흘렀고 하루하루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나아질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년 결심으로 그 전부터 알고리즘에 간혹 떠오던 파이썬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은 12월 말부터 봤는데 새해에 해야지 하고 미룬 거다)
당시 접근은 이런 거였다.
12월 말이라 학원 방학이 있었고, 오랜만에 시간이 좀 나서 옛날 게임을 하고 있었다.
텍스트 스토리가 너무 많은 게임이었고, 30대인 나는 오래 앉기가 피곤했다. 누워서 게임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일본 게임의 하단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번역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길래
그럼 나는 하단 텍스트를 읽어주는 TTS기능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두리번 거리던 때다.
그러다가 파이썬으로 해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 물론 나는 이 기능을 원하는 만큼 구현해내지 못했다. 게임이다 보니 상황에 변수가 너무 많더라
고작 8시간짜리 강의 중에 4~6시간 부분 정도까지 이삼일에 걸쳐 반복해서 본 게 전부였지만, 크롤링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나는 매우 게으른 P로서, 자동화에 대해 관심이 컸는데 특히나 자료 수집 측면에서의 크롤링이 신세계였다.
그러나 당시 파이썬과의 인연은 크롤링에서 끝이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 며칠이 지금 나를 있게 한 가장 큰 장벽을 허문 날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빅데이터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진 지는 돌이켜보니 10년이었다.
사진 : 지금은 숨김처리 해둔 네이버 블로그 기록들
![]() ![]() | ![]() |
---|
사진 : 올해 초 교보문고 송길영 작가와의 브런치 당첨, 작가님과의 사진, 전자책(...)에 받은 사인
10년을 돌고돌아 온 것 같다.
당시에는 보험설계사로 서울에서 일하고 생활할 때였는데 사실 본업보다는 강의나 공연을 보는 것이 서울살이의 낙이었다.
그 당시에 가장 인상깊은 강연자가 바로 송길영씨였다.
내 관심사를 다 파악하고 있는 듯한 트렌드 분석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단순히 흥미 이상이 되지 못한 이유가 내가 저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엄두가 나지 않았고, 내 일에 접목시키기에도 멀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 때는 그냥 갈 수 있는 강연은 다 가봤었다.
최소 10번 이상은 들었던 것 같고, 당시에 온오프믹스 통해서 보이는 곳은 다 신청했고 콘텐츠코리아랩, 그랜드마스터퀘스천, 언론사? 뭐 그런곳에서 하는 것들도 가보고, 당시에 주말동안 이틀 내내 종일하는 수십만원 짜리 유료강의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독이 되었을까.
이 내용들이 나의 업이랑 너무 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후로는 간간히 책에 나오거나 TV에서 보거나 유튜브에서 보거나 하며 팔로잉해왔다. 추천하는 책이 있으면 때가 될 때 읽기도 하고 하면서..
그러다가 작년 말 내가 다친 후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자 할 때가 되어서 다시 내 안에서 솟아났다.
데이터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데이터를 통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나아갈 길을 제안해준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혜안을 가지고 있는 모습. 물론 지금의 나는 혜안은 커녕 문제 파악에도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이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 이전 경력들이 워낙 다양한 필드에서 여러 직위로 일을 해보다보니 사실 그간의 경험들에 비해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코딩을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어려움이 있긴 했다.
하지만 처음 파이썬을 시작하면서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라이브러리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는 점이 큰 위안을 주었다.
되려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해서 어떻게 배울지 모르겠다는 점이 제일 큰 벽이었다.
나는 그냥 취미? 단순한 배움? 정도의 선에서 파이썬을 시작했다보니 이게 왜 되는지와 왜 안 되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었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시기가 지나고 제대로 공부해볼수 있는 방법으로 대학원 입학을 고려했다. 제대로 된 배우면 해결되겠거니-하고
물론 시기를 놓쳐서 KDT5기를 시작한 거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한 결정이었다.
내 이전 경력들이 워낙 다양한 필드에서 여러 직위로 일을 해보다보니 사실 그간의 경험들에 비해 크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 영역에 대해 배우거나 알고있는 바는 없었으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반면 어려움이라면 경북대라는 장소의 특이성이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바로 내 경력이나 배경이 주는 어려움은 내가 잊고 있던 '비교'를 솟구치게 하는 때들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였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활동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KDT를 통해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입장이었던 것에 비해 주변의 학과, 학군단 동기들이 전역 후 대학원을 진학하고 공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제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점들, 선배들이나 아는 형들은 교수 임용을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점이 나를 위축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부럽고 대견하고 막 이런 날들도 있었고, 어느날은 문득 문득 무너지는 날도 있었다. (그날의 마인드 컨디션이 참 중요하다)
내가 이 공부를 시작하던 겨울-봄에는 오랜만에 이렇게 공부에 몰두하는 날을 경험하다보니 20살이 되어서 학교를 다니던 때가 된 것 같아 기뻤다.
그리고 나는 20살처럼 새로이 시작하는데 누군가는 많은 성취를 해내는구나 하는 점에서 참 인생 돌고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도 하곤 했다.
앞 기수에도 경대 국문과 출신이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들은 부분들이 말을 잘 한다는 부분이었다.
물론 국문과의 특징인 건지는 둘의 공통점인 건지 물으면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전공적인 특성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으로 굳이 풀어써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휘 별로 명확히 정의를 구분해내고 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
누구나 어떤 상황을 겪게 되면 심상이나 경험에 대한 사고가 생길텐데 그것을 상대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빅데이터, AI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의 도메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와 소프트웨어 스킬이 중요하다는 것을 수업이나 ADsP 자격증 공부하면서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ADsP 자격증 공부하다보면 제발 코드로만 대화하려 들지마라 이 개발자 녀석들아. 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이런 부분들이 상대적인 장점이 아닐까?
우리 기수는 다양한 언어 공부한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 다들 그런 편이라고 느꼈지만 정통 공대생 같은 친구들을 보면 확실히 다르구나가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외에 굳이 꼽아보자면 나는 LLM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물론 공부는 매우 짧다. 아직 내게는 너무 어렵다. '<시스템> 지식이 부족합니다!' 알림 뜨는 느낌- 이 쪽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한다.
사회 경험이 있다는 것이 확실히 장점이-고, 사회적 경험이 없는 이들을 사회적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사회 경험이 없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사회생활을 하셔서-라고 말로는 인정해주지만 실제로 이해가 닿지 않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참 많았다.
경력 전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원래 하고 있던 일에서 더 나은 발전을 하기 어렵거나 본인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경력 전환을 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크다.
그리고 새로운 필드에서는 정량적인 지표로서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힘들기때문에 나의 경험치를 체감하게끔 하려면 대면을 해야한다.
취준하는 분들께 하는 말로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30대는 서류에 약하고 면접에 강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나라도 동일한 능력을 가지면 어린 친구들 뽑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연봉에 대한 기대치도 낮고, 업무에 대한 능력이 우월한 경우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회사 생활은 혼자만의 연구나 공부가 아니기에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 훨씬 경험치 있게 대응할 수 있으리라.
다만 나처럼 주니어로 시작해야하는 입장이라면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장점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유지가 되면 다행이지 않을까?
사담이지만, 나는 취준할 때 지금 일하는 곳을 제외하면 다들 연봉이 내 생각보다 낮아 지원서를 넣지 않았다. 안되면 수학학원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수학학원 면접은 한 10군데 봤다.
그 중 3군데 합격했고, 이후는 합격 연락이 오더라도 다 거절했지만, 최종 결정이 났을 때 내 현재 연봉보다 학원이 1천만원 이상 높았다. 그런데 마음이 학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는 추후에 또 적어보겠다.
나는 주 6일 야간 배송보조업무와 주 5일 학원, 주 2일 과외를 주로 하고 월에 하루 이틀 정도는 근대골목에서 가이드같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오른쪽 어깨가 들어지지 않을 정도로 근육에 손상이 크게 와서 야간 배송보조업무를 그만두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나게 되고, 몸이 차츰 나으면서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그 전까지의 생활을 코로나 이후 3년정도 하면서 든 생각이 새로운 도전에 가장 큰 계기였다.
나를 더 갈아넣지 않으면 더 나은 삶을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었다.
원래는 마흔 살정도까지 해당 생활을 유지하면서 돈을 모으자는 계획이었으나 코로나에 진 빚도 어느정도 정리한 상태에서 몸을 다쳤다보니 방향을 아예 틀게 되었다.
공부해서 먹고살 수 있는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매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것으로는 내 5년 후 10년 후는 나아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나보다 했다.
주어진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과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나가는 삶 중 후자를 살고 싶었다.
단연코 KDT5기. 9to6에 야자, 주말공부까지 공부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물론, 무엇보다 강사님 능력치가 압도적이라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부트캠프는 무엇보다 강사 능력치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는 대학원장님 이하 사무실 분들도 다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셔서 특히나 추천한다.
무엇을 물어보든 많은 경험치가 있으신 것이 항상 느껴졌고, 그 모습이 공부하는 데 큰 목표이자 힘이 되었다.
그리고 스무 명 가까운 동기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점에서 서로 의지가 되고 자격증이나 공모전 등 여러가지 준비를 할 수 있는 점이 큰 힘이 되었다.
전공자들은 전공자대로 비전공자들은 비전공자들대로 각자가 알고있는 것을 공유하고 도움을 주던 것이 수료한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