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 군사훈련 후기

양세종·2023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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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글은 전문연구요원 3주 풀타임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틈틈이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쓰입니다.

후기

피라미드는 인간이 지은 게 맞다

누군가는 군대에서의 제식 필요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나는 옛날부터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건, 함께 싸울 수 있다는 뜻'이라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반대로 이해했다. 함께 걷고, 먹고, 잘 수 없는 군대는 함께 싸울 수도 없다.

3주간의 군 생활 중에 느낀 점은 분대원 15명만 모여도 혼자서는 매우 오래 걸릴 것 같은 일(e.g. 물 2.8t 나르기)을 빠르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작 분대 단위에서도 그러한데, 소대, 중대, 대대를 넘어 연대, 그리고 사단 규모의 인간이 이런 협동을 해낼 수 있다면? 충분히 피라미드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동시에 수백만명의 인간을 동원할 수 있는 국가 총력전의 상황에서는 개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뛰어난 개인도 오직 적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훈련된 군대를 이길 수는 없을 것 같다.

10k problem

그런데 군대의 문제는 그만큼 사람이 밀집되어 있을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매일 삼시 세끼를 먹여야하고, 옷을 입혀야하고, 물도 마시고 사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로봇으로 대체하면 안 될까 싶지만... 애초에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서도 우주비행사를 사용하는 이유는 예외적인 상황과 복합적인 문제를 충분히 빠른 속도로 해결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가벼운 기계가 아직 사람이기 때문이다.

군에서 나오는 부조리의 기원은 전부 다음 문제에서 파생된다; 너무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수많은 욕구들을 통제하에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 동시에 군대는 직접 생산하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가용 예산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

현역과 군 간부에 존경을

안보는 국가 체제의 유지 및 향후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3주만에 세뇌된 것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나라의 군대는 항상 안보와 인권이라는 축으로 존재하는 trade-off line을 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현실은 어느 정도 인권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겠지만...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면 현역 군인과 군 간부에 충분한 존경과 존중을 하는 것이 군대 밖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일기

1일차 (1주차 목요일)

  • 26연대 1교육대 3중대 3소대 1분대 (11생활관)으로 배정
  • 조교들이 생각보다 친절하다
  • 4시쯤부터 너무 추웠다. 패딩을 입고들어갈지 부모님께 드릴지 고민했는데 입은 게 좋은 선택이었다.
  • 첫날 샤워와 밥은 만족스러웠다. 전투식량과 컵라면이었다.

2일차 (1주차 금요일)

  • 6시부터 아침 점호를 한다. 아침도 맛있었다.
  • 이어플러그는 좋은 선택이었다. 불침번을 3번초 (12시~1시)에 섰더니 다들 코를 골고 있었다
  • 이발 훈련병이 되었다. 주말에 소대원들의 머리를 깍아줄 예정.
  • 부식을 와장창 준다. 살이 쪄서 나갈 것 같다.
  • 군대는 땀내나긴 하지만 생각보다 냄새나지 않는다. 오히려 오이비누 냄새가 묘하게 향긋하다.
  • 보충역 훈련목표가 현역과 달라서 그런지 원래 훈련소는 그런건지 생각보다는 합리적이다.
  • 분대장(조교)들이 저번 기수보다 일처리 속도를 마음에 들어한다.
  • 전투복, 방한 용품 등을 불출(분배)하느라 바쁜 하루가 지나갔다.

3일차 (1주차 토요일)

  • 첫 구보를 뛰었는데 생각보다 할만하고 다 함께 뛰는게 신난다. 이것이 K-러닝크루?!
  • 11생활관 15명인데 다들 서먹한 게 덜해졌는지 잡담하기 시작했다.
  • 코로나 때문에 (PCR 검사 결과 확진이 나와서) 정신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1,2소대의 절반이 사라졌는데 3소대는 살아남았다. 덕분에 여유로운 오전이었다.
  • 확진자들이 이동, 통제하느라 분대장들(조교들)이 힘들어보인다. 오후엔 좀 사려야할 것 같다.
  • 전투복과 전투화를 풀장착하고 첫 제식 훈련을 받았다. 3소대는 전반적으로 말도 잘듣고 문제없이 잘 따라가는 것 같다.
  • 이틀 연속 불침번이었따. 오늘은 6번초(3시~4시)

4일차 (1주차 일요일)

  • 불침번을 서다가 사회와 달리 여기서는 거수자를 과하게 제압해도 군 형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회와 달리 처벌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점심도 맛있었고, 이제 세탁이 가능한데 분대별로 인원이 제한될듯하다. 손빨래를 결국해야만 하는 것인가?!
  • 3소대가 추진업무(여러 잡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여기저기에 불려다녔다(뭔가 옮기기, 뭔가 분류하기, 기타 등등); 오늘은 1시반에 취사관(식당)을 미싱했다... 살려줘... 그래도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다른 생활관이 세척(설거지)를 했다. 두개 중대 분량의 설거지... 쉽지 않아보였다.
  • 생애 첫 이발을 해봤다. 재밌었다!
  • 저녁엔 비가 와서 판초우의를 써봤다... 별로였다...

5일차 (2주차 월요일)

  • 중대문고와 158번에게 책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 비가 와서 전투복을 입고 아침 실내 점호를 했다.
  • 구보를 안 하고 먹는 아침은 더 맛있었다.
  • 귀마개를 잃어버렸다...! 분대원들이 다 함께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 ㅁㅁ예방교육을 했는데 생각보다 영상 퀄리티가 높았다. 거의 웹드라마?
  • 저녁 점호... 왜 하는 걸까... 너무 귀찮다...

6일차 (2주차 화요일)

  • 슬슬 분대장이 구보 속도를 올린다. 밥도 슬슬 메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 막사에서 종이로 체스도 만들어서 하고, 카드 게임 같은 것도 하고 있다. 다들 집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거 같다.
  • 대규가 행군 끝나고 돌아오면서 막사가 보이면 '와~집이다' 할 때 기분이 별로라고 했는데 뭔지 알 것 같다.
  • 어제 잃어버린 귀마개를 찾았다. 예방 접종 받으러 간 성당에서 158번이 주웠다. 타 중대 애가 잃어버린 것 같다. 역시 기도를 하면 좋은 일이??? 그치만 악한 카르마를 쌓아버렸다.
  • 오늘은 낙옆 쓸기라는 추진을 해봤다 ㅇㅅㅇ

7일차 (2주차 수요일)

  • 부모님께서 입영날 법당에서 쓰신 편지가 도착했다.
  • 우리 분대가 우수 제식 점수를 하나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PX 각?
  • 이제 방탄모, 전투조끼에 총까지 들고 총기 휴대 제식 훈련을 하니까 진짜 군인처럼 느껴진다. 내일부턴 수류탄, 사격 등 다양한 훈련이 진행된다.
  • 책을 많이 읽고 있다. 165번과 체스 등을 하며 생각보다 심심하지 않다.
  • 건물 밖 외곽 목욕탕에서 샤워하고 왔다... 그래도 목욜을 시켜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 이제 곧 코로나 확진 인원들이 돌아오면 빨래를 32명이 한 세탁기로 해야한다. 사람이 많아지면 항상 문제가 늘어난다.
  • 흙에서 구른 전투복을 입고 잔다. 불침번이 12시에 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점호도 해야한다... 힘들당...

8일차 (2주차 목요일)

  • 이틀 연속 불침번은 너무 피곤하다
  • 체력 검정 팔굽혀펴기를 불합격했다. 계속 더 내려가야 카운트 한다고 하면서 30개 했는데 15개를 카운트해서 짜증나서 확 내려갔다가 올라오지 못 했다... 발이 움직이면 끝이었다.
  • 야외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14도이다. 중대에서 챙겨준 방한 용품(동내의, 귀마개, 장갑) 절대 챙겨
  • 수류탄 훈련을 하면서 군장 친숙화 훈련도 시작되었다. 공격배낭에 다양한 물품을 넣고 40분 정도 걸어서 이동해서 수류탄 훈련을 진행했다. 분대장(조교)들이 시키는 대로 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던질 때는 계속 말도 걸면서 긴장도 풀어주는 배려를 느꼈다.
  • 달리기는 중대에서 37등했다. 연경 23 후배도 한명 있는데 23등했다.
  • 오늘 저녁 먹고 돌아가다가 우리가 떠들었는데 앞 제대도 떠들다가 걸려서 우리가 떠든 것까지 같이 혼났다. 우리는 빠르게 군가로 전환해서 살아남았다. 연병장 한바퀴 돌고 오라던데 오늘도 악한 카르마를 쌓았으니 착한 일을 하나 해야지...
  • '운 좋은 사람' 나오라는 당직책상의 말에 가위바위보로 세척조를 피했던 내가 나갔는데 그냥 일 시킬 사람 부른 거였다. 일을 겁나 하고 왔다. 도파민 중독 반성해.
  • 첫 총기 분해와 조립을 했다. 재밌었다.

9일차 (2주차 금요일)

  • 어제 다들 굴려지더니 아침 뜀걸음 열외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 오늘은 사격술 훈련이다. 160번이 안면마스크를 쓰고 자기는 닌자 메타로 간다고 한다. 다들 짧은 군생활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다.
  • 하루 종일 화기훈련 하느라 말 그대로 발에 땀나게 굴렀다.
  • 그리고 체력단련까지 해서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꿀잠잤다.
  • 분대 임무가 추진에서 외부화장실 청소로 변경되었다.
  • 점호 때 10분간 열심히 엎드려쏴 연습하다가 진짜 잠깐 누웠는데 걸려서 혼났다. 165번은 쭉 누워있어도 안 걸렸는데 억울쓰...

10일차 (2주차 토요일)

  • 클린데이라 아침부터 열심히 청소하고 휴대폰을 사용했다.
  • 여자친구가 어제의 억울함은 악한 카르마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 점심 먹으러 가야하는데 무한 대기 중이다. 군대의 모든 문제는 10k problem과 비슷한 것 같다.
  • 오후엔 TV를 보면서 개인정비시간(자유시간)을 가지고 있다.
  • 158번에게 '마흔에 읽는 니체'를 빌려서 읽고 있는데 별로다.

11일차 (2주차 일요일)

  • 불침번을 서고 오전에는 다른 사람들 종교활동 할 때 미희망으로 자고 운동하고 책을 읽었다.
  • 생활관에서 플랭크 대회했는데 야매로 4명 중에 1등을 했다.

12일차 (3주차 월요일)

  • 오늘은 영점 사격을 하는 날!
  • 나는 첫차시에 바로 통과했다. B급이지만 빨랐죠? 그래서 오후 내내 총이나 닦으며 놀았다.
  • 집에 도착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걸어서 1시간 거리였다. 물론 공격 군장도 함께)

13일차 (3주차 화요일)

  • 오늘은 화기 3일차 교육! 다행히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피로가 쌓여서인지 어제보다 더 피곤했다. 앞으로 화생방 각개, 행군도 와장창 군장과 함께 걸어야하는데... 넘 힘들당
  • 체력 검정 2차는 모두 완전 잘 했다.
  • 행군 완전군장을 피하기 위해 공격군장을 신청했는데 바로 까였다.

14일차 (3주차 수요일)

  • 오늘은 화생방 훈련! 좀더 멀리 걸어갔다.
  • 훈련이 끝나 갈 때쯤 비가 와서 빠른 전장이탈을 했다.
  • 어릴 때부터 기관지가 안 좋았기 때문에 차등제를 신청해서 그냥 CS탄이 있는 곳을 걸어지나갔는데도 짠 고추가루 맛이 났다.
  • 슬슬 탈영하고 싶다. 괴로워~~! 그런데 항상 저녁에 밥 먹고 씻고 나면 행복해진다. 이 곳은 인간사육장 그 자체다.
  • 몇 일전 찍은 사진이 나와서 서로서로 구경했는데 다들 나보고 미군처럼 나왔다고 했다. 험프리스로 가라고 한다.

15일차 (3주차 목요일)

  • 탈영하고 싶다. 넘 힘들다. 어제 판초우의 입고 행군이 에바였다. 오늘 각개전투훈련은 영내에서 했는데도 험한 말이 절로 나올 뻔 했다.
  • 하지만 뜀걸음을 하고 나서 밥 먹고 씻으니 또 즐거움이 충전되어버렸다. 이번에는 중대에서 27등으로 올랐다. 나는 1.5km보다 3km 달리기에 좀 더 강한 것 같다. 연경23 후배는 15등으로 올랐다.

16일차 (3주차 금요일)

  • 오늘은 각개 2일차! 먼저 갔다온 형들이 다 빼라고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20분은 걸어내려와야하는 산을 포복하고 뛰면서 고지전을 시뮬레이션했다. 158번은 아이는 미국에서 낳아야한다고 다짐했다.
  • 조 분대장이어서 돌격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했는데 '빨리 하고 빨리 끝내자'라는 생각으로 그냥 다른 조원들이 도착하자마자 계속 돌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니까 1사로(가장 왼쪽) 사람이 너무 힘들어서 1분만 쉬다 가자고 했는데 그냥 20초만 쉬고 계속 했다. 결국 그 때 너무 체력을 많이 써서 내려오다가 160번은 발을 크게 접질렀고, 158번은 철조망에 다칠뻔 했다. 조장으로의 나는 ENTJ였떤 것 같다. 사람들이 다친 걸 보고 좀 많이 반성했다.
  • 참고로 이 날은 교육대장 명령(?)으로 완전군장을 하고 1시간반정도를 왕복했다. 훈련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17일차 (3주차 토요일)

  • 여유가 낭낭했던 주말, 휴대폰 사용하고 추진(잡무)인데도 평화로웠다.
  • 오전에는 헌혈하고 오후에는 체스를 하니까 순삭되었다.
  • 너무 노는 것처럼 보였는지 169번의 카드를 뺏겼다.
  • PX도 가고 추진 업무(이름표 분류하기)도 했다.
  • 165번은 분대장에게 어깨빵 의심을 당해서 짝사랑에 실패했다.

18일차 (3주차 일요일)

  • 오늘은 느낌이 좋지 않다. 내일 행군이라 하루종일 개인 정비로 바쁠 것 같다.
  • 군번줄을 차고 다니니까 다들 찐군인 같다고 한다. 근데 너네도 찐군인이야... 슬프게도 말이지.
  • 으악 행군인데 내일 비올 것 같다.

19일차 (4주차 월요일)

  • 행군을 시작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왔다. 6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걸었다.
  • 160번은 각개 2일차에 다쳐서 열외했는데 배식과 세척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군대? 목발 짚고 있는 친구도 있는데...?
  • 오후 쯤에는 내 전투화에서 워터파크가 개장 되었다. 절대 남자애는 미국에서 낳아... 6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걷는 걸 선택 없이 강제받는 건 불합리하다.
  • 씻고 저녁 먹고도 판초우의 입고 막사로 왔다... 화가 난다.

20일차 (4주차 화요일)

  • 비가 와서 실내 점호를 했다. 훈련은 언제 끝나는 것인가?
  • 그래도 이제 야외훈련은 다 끝나서 실내활동만 있다.
  • 다음 기수를 위해 장구류 정비, 실내 청호를 무한으로 하고 있다. 모레면 이 여정이 끝난다.
  • 다들 쉽사리 잠들지 못 하고 있다.

21일차 (4주차 수요일)

  • 오늘은 수료식을 연습했다. A급 전투복을 입고 했는데 아무튼 힘들었다.
  • 오늘은 164번의 생일이었다. 딱히 무언가 해주지는 못 했고 그냥 생일 축하한다는 말만 해줬다.
  • 정말 바쁘다 총을 무기고에 보관하고 청소하고 분대장이 새로운 먼지를 찾고 다시 청소하는 하루
  • 행군한 날 보다 더 힘든 것 같다 @.@

22일차 (4주차 목요일)

  • 직전 날에도 불침번과 아침 점호를 했다... 군대 싫어...!

원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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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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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안녕하세요? 이번에 군사훈련을 가게 되었으며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주변에서 상비약, 속옷, 마스크를 많이 쓰니 마스크 스트랩(귀안아프게하는것), 등을 가져가라고 하는데 실제로 쓰이는지 빠꾸 당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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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8일

꿀빨았네

3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