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와 도둑맞은 집중력

Chaejung·2024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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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고 생각한 것을 정리한 글입니다.

N개의 데스크탑에 파묻혀

스터디를 하면서 종종 화면 공유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켜놓은 창들과 데스크탑, Dock에 묻어놓은 창들을 보고 기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왜 그렇게 창이 많아요?'

필자는 창을 많이 띄워놓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런 반응을 들으니 문득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내가 하다 만 것, 앞으로 할 것을 띄워놓은 것이고, 나에게 필요한 것인데 이걸 한꺼번에 보니 다시금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고?'

과제 테스트, 서류 제출, 스터디 준비, 프로젝트, 글쓰기 해야할 게 쏟아지면서 마감 일자가 다가올 때까지 붙잡다가 제출일, 스터디 모임 등이 다가오면 데스크탑을 추가해 gmail, slack과 그때그때 필요한 창들을 켜다보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하는 것이 많지마는,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하나를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데스크탑이 늘어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제스쳐로 데스크탑을 옮기다 보면 내가 어디에 어떤 프로그램을 켜놓았는지, 어디에 원하는 검색 결과를 띄워놓았는지 헷갈려 가로로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을 멍하니 쳐다볼 때도 있다. 기껏 글을 쓰다가도 문득 스터디 때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화면을 옮겨 스터디 레포지토리 창을 켠다던가. 하나를 끝내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데스크탑을 휘적휘적 다녔었다.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도 그 사람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딴생각, 나의 경험이 떠올라 상대방의 볼륨이 낮아지는 것을 억지로 끄집어 올릴 때가 왕왕 발생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것 또한 집중력의 저하로 인한 문제였고, 나르시시즘의 일종이라고도 말한다. 이런 점을 경계하기 위해 항상 사람들을 궁금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의 경험과 결부 짓기 일쑤였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커서 나르시시즘이 된 것이 아니라, 주위를 살펴볼 능력이 저하돼서 나타나는 부작용이었다.

가는 곳마다 자신을 방송할 뿐 다른 정보는 수신하지 않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주의가 부패하면 나르시시즘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의가 자기 자신과 자기 자아에만 집중된 상태가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2장 몰입의 손상, 75쪽)

돌려줘요, 내 집중력

책 <도둑맞은 집중력>은 제목과 표지를 마주하고 나의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주리라 생각하여 선택했다.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이라니, 모든 일을 제쳐두고 이것부터 읽어서 당장이라도 답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둑맞은 내 집중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을 구입한 지 N개월(정확히 얼마가 됐는지 기억이 안 난다) 후, 책은 여전히 (집중력을 도둑맞아서 책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겠지만) 책장에 꽂혀 있었고, 안 되겠다 싶어서 글쓰기 커뮤니티인 글또에서 독서 모임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 책을 11명의 개발자와 함께 3주간 읽게 되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요약하자면, 결국 현대인의 집중력이 저하된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것이 기인한 것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인을 다섯 가지 정도로 말한다. 이는 수면 부족/빅테크의 서비스/스트레스/식단/교육 환경인데, 여기서 '빅테크의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큰 편이다.

혹시 해당 내용이 궁금하지만, 책을 읽기는 싫은 분들에게는 아래 유튜브 영상을 보기를 추천한다. 저자와의 인터뷰인데 거의 책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문해력 위기? 산만의 시대? 현대인들이 집중을 못하는 이유 (ft.도둑맞은 집중력, 요한하리 작가) - 조승연의 탐구생활 Youtube

사실 책을 읽고 나니 원하는 해답을 얻진 못했지만, 괜히 위로를 받았다. 이리저리 해야할 것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하고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이 내가 산만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이미 현대 사회는 과잉 정보의 시대이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게 멀티태스킹을 강요하는데, 사실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행동을 하나뿐이라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저하한다는 것. 그리고 널리 퍼져있는 가공식품은 인간의 호르몬 분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 이 외에도 개개인이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자료 조사를 하는 내내, 집중력 위기의 구조적 특징을 명심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문화에 살고 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개인적 실패로 받아들이고 개인적 해결책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압박받는다. 집중할 수 없는가? 과체중인가? 가난한가? 우울한가? 이러한 문화에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도록 배웠다. 그렇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힘을 내서 이 문제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아서 찾았어야 해.
(12장 값싸고 형편없는 식단, 326쪽)

여기서 이 글을 끝내기는 아쉬워 현재 개발자인 나와, 독서 모임 참여자분들의 의견을 빌려 글을 더하고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개발자와 수많은 탭들

어떤 기술을 학습한다고 했을 때, 기술 문서를 들어가 A-Z로 학습하는 것을 즐기는지, 또는 직접 적용해 보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뽑아서 학습하는 것을 즐기는지, 이 둘은 Bottom-up vs Top-down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둘 중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짧은 주기로 업데이트되는 기존 기술, 쏟아지는 새로운 라이브러리와 프레임워크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무래도 Bottom-up은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주로 Top-down 방식의 정보 습득을 하는 편이다. 또 언젠가는 무언가 궁금할 때 여러 가지 기술 블로그와 공식 문서, 사례들을 찾다 보면 크롬 탭의 title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내가 진정 무엇을 궁금해 했었는지, 설령 그것을 깨달았을지라도 적절한 해답을 얻었는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그 답을 찾지 못해 탭을 켜뒀거나, 나중에 읽어야 겠다고 대기시켜놓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우리에게 특정 방식의 읽기를 훈련시키는데, 바로 오랜 시간 한 가지에 집중하는 선형적 방식의 읽기다. 아네는 화면을 통한 읽기가 이와는 다른 방식, 즉 정신없이 넘기면서 초점을 옮기는 방식의 읽기를 훈련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네의 연구는 사람들이 화면으로 글을 읽을 때 "대충 훑어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는 정보를 재빨리 훑어서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려 한다. 그러나 아네는 사람들이 이행동을 오래 지속하면 "이러한 훑어보기가 번져 나가게"된다고 말했다. "점차 우리가 종이에 쓰인 글을 읽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거의 디폴트 상태가 되는 거죠."

1시면 일찍 주무셨네요

호주에서 오션뷰 레지던스에 살던 당시가 떠오른다. 워킹홀리데이 가기 전 나는 아침잠이 많고 절대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방에 머무는 첫날 알람도 없이 눈을 떴었다. 통창으로부터 들어오는 햇빛이 여름 한 낮의 그것처럼 가득하게 방을 메웠다. 대학가 근처 4평짜리 원룸에 들어오던 것과는 다른 태양이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매일 아침 알람 벨과 싸우는 순간순간이 괴로웠는데 호주에서 살 때는 매일 아침 해가 뜨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고, 내일은 어떤 풍경일까 기대된 채 잠에 들었다. 언젠간 오션뷰에 집을 마련하는 것이 1순위 목표로 자리매김했다.

아주 오랫동안 기계의 리듬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배터리가 고장날 때까지 밤이고 낮이고 끊임없이 돌아갔다. 이제 나는 태양의 리듬에 따라 살고 있었다. 하늘이 캄캄해지면 서서히 속도를 늦추다 마침내 휴식에 들었고, 해가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3장 잠들지 못하는 사회, 101쪽)

독서 모임 후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다. 피곤해 보이는 기력이 비쳐 토요일을 모임 요일로 잡은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들 전날 언제 잠에 들었는지 물어봤다. 나는 1시에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그러자 한 분이 이렇게 답했다.

'1시면 일찍 주무셨네요'

물론 필자는 평소에 3~4시에 자는 사람이라 비교적 일찍 잠에 든 것은 맞지만, 책에서 집중력의 저하에는 질 나쁜 수면, 짧은 수면 시간도 한몫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런 부분도 같이 이야기를 했었음에도 1시가 잠을 자는 데 이른 시간이라는 점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이 슬펐다.

수면에 대해서는 아직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많은 의견이 있다. 수면의 효과가 몇 가지 증명되었을 뿐 수면의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효과적인 수면법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고, 적정 수면 시간은 7시간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필자는 불면증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여기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다들 이야기하는, 자기 전 스트레칭, 따뜻한 물, 블루라이트 멀리하기 등과 같은 것을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는 없다. 개발자는 버그를 뒤로 하고 침대에 눕는 것을 두려워하며 설령 베개가 머리를 둔다고 해도 쉽게 잠들 수는 없다. 몸이 지쳐 방전된 것처럼 쓰러지는 것을 제외하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밤에 작업을 하지 말아야 하나. 그래서 결론은 결코 수면 시각에 대한 강박을 가지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스스로 정한 주기에 따라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필요하다. 기억력과 관련돼 있으므로, 어느 순간 내가 어떤 버그를 잡고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다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

“잘 자지 않으면 우리 몸은 그 상황을 위기로 해석합니다.” 록산느가 말했다. “잠을 빼앗겨도 살 수는 있습니다. 잠을 줄이지 않으면 아마 아이들을 키울 수 없을 거예요. 허리케인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을 거고요. 우리는 분명 잠을 줄일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라요. 그 대가는 바로 우리 몸에서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 몸은 이렇게 생각해요. ‘어, 잠을 줄이고 있네. 비상 상황인 게 분명해. 그러니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온갖 생리적 변화를 일으켜야겠어. 혈압을 올리자. 패스트푸드가 당기게 만들어야지. 빠르게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도록 당도 더 당기게 만들 거야. 심박도 올릴 거고…’ 이 모든 변화는 나는 대기 상태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3장 잠들지 못하는 사회, 107쪽)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독서 모임 후 나온 여러 의견과 나의 조언을 얹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목록은 다음과 같다.

  • 과잉 정보에서 벗어나기
    - 뉴스 레터 구독 해지하기
    - 탭은 그때그때 정리하기

  • 방해받지 않을 환경 마련하기
    - Slack 상태메시지로 바쁘다고 명시하기
    - 구글 캘린더로 코어 타임 미리 빼놓기

  • 수면 시간 지키기
    - 수면, 명상 앱 또는 영상 시도해보기
    - 아침 식사 챙기기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이렇게 저하된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개인이 할 방법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래도 막연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허무주의에 빠지면 변화하는 것이 없으니 이렇게 작게 나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필자는 웹툰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웹툰 앱을 지우고, 구독하던 뉴스 레터도 6개에서 2개(Korean FE article과 Medium)로 줄였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환경을 만드는 데에 좋은 조언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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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엔드 기술 학습 및 공유를 활발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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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일

제 실천을 공유드리자면,,,

  • 탭을 끄기 귀찮으니 새마음 새뜻으로 작업을 딱 시작하려고 할 때 저는 컴을 껐다 킵니다(윈도우 다시 열기 옵션 해제)
  • 슬랙은 DM이나 태그를 제외하고 알림 꺼놓습니다. 만약 무슨 댓글을 달았는데 별 중요한 스레드가 아니면 해당 스레드 알림을 해제합니다.
  • 카톡이나 인스타는 iOS 차원에서 알림 자체를 꺼버렸습니다.
  • 유튜브도 폰에 없습니다. (볼려면 사파리로 봐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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