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24

동그란개발자·2025년 1월 5일

회고는 처음입니다.

그래서 작성하면서도 회고의 목적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회고를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왜 이런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은걸까, 하고요.

고민 끝에 저의 회고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였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 시점의 제가 가장 쓰고 싶은 것, 가장 기록하고 싶은 걸 적어보고자 합니다.

개발자로서의 수치적인 기록이라기보다는, 저라는 사람이 한해를 돌아보고 느낀 소회를 적은 회고록입니다 ✍️

2024년의 키워드

올해 말의 저는 이상하리만치 연말 회고에 집착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되더라고요.

알을 깨고 나온 한 해라서

2024년의 저와 2023년의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전의 저는 세상에 부딪히지 않고 스스로를 마음대로 정의한 채 동굴 안에 움츠러 들어가 있었습니다. '나는 경험이 부족하니까', '나는 이런 걸 모르니까', '나는 이런 면이 없으니까'...

올해의 저는 이리저리 경험해보고 부딪혀보면서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제 모습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여전히 신기하고 낯설고 얼떨떨해요.

그렇게 얻은 올해의 커다란 교훈은 "나라는 사람은 관계와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만남과 도전들에 뛰어든 덕분에, 저는 홀로 서는 존재가 아닌, 관계와 맥락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감정의 단차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셨나요?

주요 감정들이 컨트롤타워를 잡고, 특정 기억에 색깔이 입혀져 감정 구슬이 탄생합니다. 매일매일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기쁨의 노란 구슬, 슬픔의 파란 구슬, 분노의 빨간 구슬과 같은 알록달록한 구슬들이 생산됩니다.

종종 저는 감사회고나 일기에서 감정 구슬로 그날의 감정을 표현하곤 합니다.

올해는 새파란 슬픔의 구슬과 샛노란 기쁨의 구슬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 해라 특히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커다란 슬픔을 경험한만큼 작은 기쁨을 더더욱 감사하게 맞이할 수 있었기에, 가득 찬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이별

우습게도 헤어지는 날 깨달았습니다.

저는 상대방을 좋아하기보다는 이 사람을 통해 내가 원하는 이상을 보고 있었다고.

당시에는 외면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제가 바라던 개발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던 거 같습니다. 피아노와 베이스를 연주하고, 꾸준히 책 읽으면서 독서 모임에 출석하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지만, 앙꼬 빠진 찐빵 마냥 그토록 좋아하던 "개발"이 빠진 하루하루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직장에서도 제가 막연하게 상상하던 개발자와는 거리가 먼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서 더더욱 그러한 빈 자리가 크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가 소개팅 첫날부터 급하게 이슈에 대응하겠다고 노트북 펼쳐든, 당시 제 눈에는 너무나도 개발자 같은 그 사람을 봤을 때 '우와... 찐-개발자같다'하면서 괜시리 더 안쓰럽고 마음이 갔던 거 같아요.

불과 몇개월 전, 오기와 열정과 간절함으로 똘똘 뭉쳐 있던 저를 투영해 보아서였을까요?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빠져들고 예상치 못하게 허무하게 관계가 끝났을 때, 생각보다 더 힘들고 곤두박질 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글또

2024년 들어서 가장 잘한 일 = 글또에 들어간 일

막연하게 "개발자들이 글쓰는 모임"으로 알고 들어갔다가, 정신 차려보니 다양한 일들을 벌이며 현재 누구보다 진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3개월이 지났지만, 그 사이 배울 점이 많고 좋은 사람들을 잔뜩 만나면서 글또만의 따뜻함에 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저도 긍정적인 경험과 감정을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이라도 더 커뮤니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 벌인 일 list >

- 낮술낭독회: 낮술과 함께 각자 좋아하는 책들 이야기 하는 모임
- 로우레벨도 있또: C/C++, Linux 생태계 등 로우레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소모임
- 미룬이챌린지(운영진): 한 해의 끝에 미뤄둔 할일들을 집중적으로 처리하는 이벤트
- C/C++ 개발자 커피챗
- 이밖에 여러 모각글 벙개 급작스럽게 열기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처음으로 열어본 "낮술낭독회"입니다.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특유의 반짝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들고와서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처음인만큼 미숙하게 진행한 부분도 있었지만, 각자의 삶의 궤적에서 울림을 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제 상상보다 150%, 아니 200%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 활발하게 참여한 소모임 list >

- 쓸만한 10분 모각글또 (매일밤 9시 글 쓰는 모임)
- 피크민또 (피크민 하는 모임)
- 감사회고해또 (감사회고를 쓰는 모임)
- 책읽어또 (독서 인증하는 모임)
- 뮤직스타또 (음악 추천하는 모임)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쓸모또(=쓸만한 10분 모각글또)입니다.

리더분과 부리더분이 따뜻한 분들이셔서인지, 모임원들도 전부 서로 부둥부둥 응원해주는 분위기입니다. 쓸모또에서 종종 열린 오프라인 모임들도 좋았습니다. 함께 모닥불 앞에서 마시멜로우를 구워먹고 고기 구워먹고 슈톨렌 나눠먹으면서 소소하게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쓸모또 멤버들로부터 영업 당해 몇달만에 다시 시작한 피크민또에서도, 귀여운 피크민들을 자랑하며 함께 꽃심고 버섯 전투 나가며 즐거운 기억들을 쌓고 있습니다.

감사회고해또에서는 하루 끝에 감사회고를 적으면서 하루하루 긍정적인 마음을 다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글또의 여러가지 활동에서 얻는 활력과 따스함 덕분에,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찬 연말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독서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을 바빠서 못 읽는 시기엔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껴요. 책에 대한 허기가 져서 며칠동안 정신없이 책을 몰아서 읽으면, 어느순간 충전됐다, 강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자신이 부스러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읽고 나면 부스러졌던 부분이 다시 모아지는 느낌이 있어요.
-한강-

돌아보니 꽤나 많은 책들을 탐독 했습니다. 초반에는 독서 모임에 선정된 책들을 읽다가,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목록이 많아져서 여러가지를 찾아 읽었습니다.

< 2024의 Booklist >

마음 - 나쓰메소세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 - 캐롤라인 냅
단한사람 - 최진영
스토너 - 존윌리엄스
홍학의 자리 - 정해연
천개의 파랑 - 천선란
어떤 나무들은 - 최승자(완X)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완X)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 신미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정보라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삶은 왜 의미가 있는가 - 이한
프로젝트 헤일메리 - 앤디 위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은희경
모순 - 양귀자
희랍어시간 - 한강
코스모스 - 칼 세이건 (완X) 
서있는 여자 - 박완서

시집, 산문집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범주의 문학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꽤나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정량적인 수치를 떠나서, 순수하게 읽는 즐거움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읽는 순간에는 잠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여실히 느끼고 인생을 살아보면서, 저도 몰랐던 저의 언어를 찾기도 하고 억눌렀던 감정의 버튼이 눌려 눈물이 주룩 나오기도 했습니다.

📚 기억에 남는 문장 중 하나 ("천개의 파랑" 중)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콜리가 보경을 향해 조금 더 몸을 틀었다.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상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게 된 계기

우울과 불안으로 심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간헐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얼마나 막연한 기준들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단정짓고 있었는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저를 바라보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저도 모르게 제 자신에게 잘못된 프레이밍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틈틈이 기록한 상담 일지 중 일부

- 실제 사안을 대충 보고 자기자신을 작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 직장 안에서 인정받고 존재 의미를 찾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 “성장"과 "발전”이 중요한 사람이다, 동시에 불안도와 완벽주의가 높다
  👉 가시화할 수 있는 작은 성취들을 쌓기를 추천

"고독해지기"을 권하는 듯한 사회 풍조지만,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을 받으며 깨달은 건 사람은 절대로 온전히 홀로 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어려움 속에서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게 되며, 누군가 홀로 터널을 건너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고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얻은 스스로에 대한 인사이트들

나누고 기여하는데서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면서 얻는 에너지와 행복이 크다

  • 결정적으로 글또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글또에서 많은 일들을 벌이고 싶습니다~!
  • 이전에 움츠러들어 있던 저와 달리, 외부로 표현하고 표출하는 사람, 밝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지향합니다.

생각보다 직관적+감정적+산발적이고, 불안도와 완벽주의가 높아 의식적으로, 차근차근 Divide & conquer 해야하는 사람이다

  • 상담과 회사, 글또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 뭉뚱그려 사고하다가 불안에 압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더 나은 제가 되기 위해 논리적으로 쪼개고 차근차근 일을 처리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잘게 쪼개서 수행하기)
  • “로지컬씽킹”과 같은 책을 읽으며 논리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삶에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성장과 배움이 중요한 사람이다

  • 올해의 연애와 글또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 (솔직하게) 2024는 개발자로서 공부가 부족했던 거 같아서, 더 진득하게 공부하고 더 성장하고 싶습니다.
  • 고로 현 시점의 저는 목말라 있습니다

KPT 회고

2024년의 'Keep'

<업무>

- 질문 잘 하는 습관
- 일지 및 메모 쓰는 습관
- 노션 업무 큐 관리로 진행도 파악

<공부>

- C/C++ (포인터)
- 리눅스 
- 도커/쿠버네티스 (찍먹) 

<취미>

- 다독: 약 17 ~ 18권
- 다수의 독서 모임 
- 밴드 합주 및 공연 (건반)

<루틴>

-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루틴
- 킥복싱에 재미 붙여서 주 2~3회 꾸준히 운동
- 일기/감사회고 꾸준히 작성 

2024년의 'Problem'

  • 장기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의 개발 학습 부족 (단편적으로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학습, 하나를 진득하게 하는 경험 부족)

  • 일정의 우선순위 조절 (밸런스 X)
    👉 악기, 독서 모임과 같은 부수적인 것들이 많아서 개발/글쓰기에 온전히 투자하기 힘듦

2025년의 'Try'

나는 어떤 사람인가? + 2024년의 Problem으로부터 도출된 2025년의 Try 목록입니다

어떠한 value들을 가지고 2025년을 보낼 것인가?

Divide & Conquer

  • 나는 어떤 사람인가? item 2와 연관

  • 목표를 잘게 쪼개서 구체적인 계획으로
    - 작업등대와 같은 생산성 스킬 적극 활용해보자 !

  • "로지컬씽킹"을 읽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액션 아이템 도출하기

비우기, 덜어내기

  • 비워내고 덜어내는 건 곧 스스로에게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나의 욕구를 돌아보고 재배치하는 과정. 즉, 본질에 집중하는 연습

  • 현재 우선순위는 꾸준하고 가시적인 형태의 개발 학습 및 기록

  • 독서 역시 최근의 우선순위를 반영해, MUST LIST를 우선적으로 읽는 것이 목표:
    - 함께 자라기 🌱
    - 로지컬씽킹 🧠
    - 소프트웨어장인 👩🏻‍💻
    - 머니북 💰

  • 후순위인 밴드와 외부 독서 모임 포기

  • “접속” 줄이기 : 인스타, 슬랙 등 (Forest 앱 켜고 언제 내가 폰을 무의식적으로 폰을 드는지 Tracking)

  • 내면의 에너지레벨 꾸준히 들여다보고, 쉼이 필요할 때 쉼을 선택하기

가시적인 성과들로 과정 기록

  • Core 개발 공부 타임 (약속 X, 온전히 내 시간)
    - 글또에 재미 들려서 자꾸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하려 한다 👉 온전히 나의 Core time 설정, 주별 Habit Tracker 기록

  • 단순 개발 서적 읽기(X) → Github에 따로 레포 파서 개발 서적 기록하기
    - 기술 서적 4권 목표

  • 자격증 1개 따기

  • 기록하기, 그게 뭐든
    - 업무 일지, 회의록 그때그때 정리
    - 이 경험/책 통해 내가 얻은 건? 인사이트 기록하기

(구체적으로 어떠한 학습을 할지 1월 내 차곡차곡 업데이트 예정)

회고라는 행위는 결국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잘됐으면 해서, 내가 나를 가장 위하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닐까

연말에 치열하게 한해를 돌아보고 행적들을 되짚어보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내린 결론입니다. 한편의 글로 쓰기까지도 참 힘들었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영화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얼 올앳원스"의 대사를 끝으로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 모든 거절과 실망이 저를 이 순간으로 이끌었기에, 현 시점의 저는 나름대로 간절함과 포부가 큰 것 같습니다. 2024년의 저는 뭐든 뛰어들어보면서 진하게 경험하고 여러가지 극과 극의 감정들을 느끼고 성장했기에, 왠지 2025년의 저에게 신뢰가 가네요. 2024년을 긍정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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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5일

잘 읽었습니다~~ 앞에 감정과 관련한 내용들이 인상적이네요 ㅎㅎ

1개의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