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후기이다.
읽고 싶었던 책들 중 하나였는데 그 중 가장 짧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줄거리는 주인공 그레고르가 어느날 갑충으로 변해버려 가족들이 기대하는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인간 취급을 점점 받지 못하게 되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서서히 죽게되는 내용이다.
소설을 실존주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물론 필자는 실존주의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없다. 더 정교한 해석을 보고 싶다면 다른 글을 찾는게 이로울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적어보고자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실존주의적 주제를 탐구하는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이다. 그레고르가 갑충으로 변하며 겪게 되는 고립과 소외가 실존주의 철학의 여러 요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레고르가 하루아침에 갑충으로 변하게 된 이유나 과정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종종 이유 없이 고통받고 무의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 직면해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실존주의적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실존주의에서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더라도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레고르는 그러한 시도를 점차 포기하게 되면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레고르는 갑충으로 변한 이후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동정심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혐오와 거부감으로 대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 안에 갇혀 인간적 관계를 잃게 되고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인간은 종종 타인과 단절된 상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직면해야만 한다. 이 소설 속에서 그레고르가 겪는 고립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타자 속의 자아 소외를 상징한다.
그레고르는 갑충으로 변한 이후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삶을 개선할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가족의 짐이 되어갔고 변모 이전 삶에서 느꼈던 책임감 또한 유지할 수 없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자유와 책임을 통해 스스로의 본질을 만들어간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변모 이후 자유와 책임을 모두 빼앗기고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었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며 더 깊은 불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스스로 더 이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거라 생각하고 갑충으로서의 삶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존재적 불안의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이다. 사르트르나 하이데거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자신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불안을 느끼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레고르의 불안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고 죽음에 가까워질 수록 심화된다.
결국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서 홀로 죽게 된다. 가족은 그의 죽음에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고 안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드러낸다. 실존주의 철학에서 강조하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암시한다. 죽은은 인간 존재의 불가피 한 것이다. 그리하여 실존주의에서는 죽음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죽음 앞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파출부의 손에 치워지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은 실존주의 철학을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레고르가 부조리하게 변신하게 된 것, 고립되고 소외된 삶은 실존주의 사상을 깊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과 그에 대한 실패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끝까지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인간은 본인의 가치를 창출해야만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작품 속 그레고르의 상황은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치매 환자, 히키코모리, 혹은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앓는 사람들 역시 그레고르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남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나에게 도움을 준 이는 점차 불만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드러나는 핵심적인 교훈은 인간은 도움을 주지 않는, 혹은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무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움을 요구하는 존재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변신에서 그레고르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그를 외면하지 않고, 그가 먹을 음식을 고민하며 배려했다. 그러나 결국 그레고르가 계속해서 짐이 되는 상황에서는 가족의 사랑으로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지만, 사람이 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이나 부담을 무조건 이겨낼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신이 사회나 가족 안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기 전 가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그가 벌레로 변한 이후 상황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레고르의 노력은 단지 가족이 그를 더 오래 참게 만든 데 불과했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라면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고, 청년이라면 사회 안에서 자신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슬프지만, 노년의 사람들 역시 자신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짐이 되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계산적인 접근이 아니라,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신, 타인은 그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따진다.
한편,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삶이 비관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오히려 맡은 일에 더 충실할 수 있었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었다. 결국,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을 읽고 "삶은 언제나 부조리하고 관계는 조건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려는 노력은 끝내 나를 더 발전시키고 자유롭게 만든다" 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안내하는 지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