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저히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최고의 직업은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고 사업은 무모한 사람이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교대에 진학한 것은 쉽게 결정한 일은 아니었지만 단지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결정이었을 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가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 것이지 나태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교사가 된 이후에 열심히 살았다. 대학원도 가고 책도 5권을 썼다. 아이들과 2편의 영화도 찍고, 아이들의 시를 엮어 책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어린이날이면 사진을 찍어 액자에 담아 선물하던 때도 있었다.
교사가 된 지 12년이 지났다.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기에는 (운이 좋으면) 그나마 괜찮은 직업이다. 그다지 연구하지 않아도 젊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 시끌벅적하게 해주는 수업을 아이들은 좋아한다. 누군가 미리 만들어 놓은 교실 놀이를 따라만 해도 아이들은 재미있어한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12년 전 교사가 되었을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다. 대학원에 가고,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여러 교육 활동을 한 것이 어쩌면 안정적인 삶을 선택한 내 결정이 부끄러워 이를 감추려고 성장하는 척 부단히 노력한 것은 아닐까? 확실히 지난 내 인생에서 성장은 찾기 어렵다.
2년 전 여름, 정말 재미있는 일을 찾았다. 개발을 공부하면 가슴이 뛰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CPU 안에 들어가 있는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들이 하나 하나 동작하는 것은 마치 우주를 바라보는 것처럼 경이롭다. 프로그래밍으로 그 경이로운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과학을 넘어 마법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다가오는 3년이 지나기 전에 흥미를 잃을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 개발에 몰입하는 것도 성장하는 척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인 컴퓨터를 파고들 수 있는 크래프톤 정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인생에서 5개월을 완전히 투자해 볼 만한 좋은 선택일 것이다.
전공자 수준의 지식을 얻어가겠다. 코치님은 사실상 학부 4년 과정을 5개월에 다 할 수 없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전공자 수준의 지식을 얻고 싶다. 대기업 코딩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할 만한 자료구조와 알고리즘 지식을 쌓고 싶다. 단지 문제를 푸는 것만이 아니라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적용해 효율적인 코드를 작성하는 능력을 갖고 싶다. 운영체제 구현을 통해 컴퓨터의 동작 원리를 하위 레벨부터 이해하고 싶다.
인류는 우주를 만들지 않았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우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사람은 컴퓨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컴퓨터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지 성장했다는 느낌 따위를 얻으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다. 나는 확실히 성장하고 싶다. 2배, 3배가 아니라 100배, 1000배로 성장하고 싶다. 날을 새고 오후 2시에 일어나는 쇼맨십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열심히 공부하는 척이 아니라 짧은 5개월 동안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루틴으로 정글을 헤쳐 나가겠다.
전공자와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고 싶다. 그들과 지식을 공유하고 때로는 내가 지식 기여자가 되고 싶다. 누군가 컴퓨터 공학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쉬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유튜브와 같은 공개된 곳에 컴퓨터 공학에 대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네카라쿠배' 같은 곳이 아닐지라도 의장님 말씀처럼 커리어를 시작할 준비가 되면 좋겠다. '코더'가 아니라 '엔지니어'로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신입 개발자의 자격을 갖추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