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며 "올해는 이랬었지, 내년엔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만 해왔던 내가, 이번에 글또에서 회고 세미나를 듣고 직접 회고를 해보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회고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를 떠올리면 후회가 많아질 것 같았고, 글로 남기면 부정적인 이야기로만 채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년 전 퇴사 후 한국으로 돌아오면 일자리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후회가 밀려왔다. 일을 병행하며 이직을 준비했다면 이런 후회는 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직에 성공했더라도 회고를 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회고는커녕, 내년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에 급급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방식도 나만의 템포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고를 결심한 이유는, 내가 겪은 일들과 그때의 생각을 정리해 오늘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얼마 전 방 정리를 하다가 고3 때 쓰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흔적을 보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런 감정을 미래의 내가 또 느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회고도 가치 있을 것이다. 마치 타임캡슐을 여는 기분처럼 말이다.
대학에 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나의 고3 다이어리
회고가 처음인 나는 사진첩과 커밋 기록을 참고하며 키워드를 뽑고 시간순으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1분기에 멘토링 프로그램(f-lab)에 참여하며 비전공자인 내가 부족한 기초를 채우기 위해 자바스크립트부터 리액트와 넥스트까지 공부했다.
특히 자바스크립트로 SPA 게시판을 만들어보며, 뷰나 리액트 같은 라이브러리가 얼마나 개발자들에게 도움을 주는지 깨달았다. 이후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협업 툴과 다양한 라이브러리를 접했고, 프로젝트에 적합한 라이브러리를 고민하는 경험도 쌓았다.
현재도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도입해보고 있다. 하지만 도입 후 예상치 못한 단점에 직면하면서, 라이브러리 선정 그리고 검증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달라진 점은, 내가 쓴 코드에 대해 "왜 이 코드를 쓰는지" 더 깊이 고민하며 한 줄 한 줄 신중하게 작성한다는 것이다. 불과 5-6개월 전의 코드라고 해도, 그 당시에는 최선이라 생각했던 코드들이 지금 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이를 통해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멘토링 중엔 알고리즘 스터디에도 참여하며 하루 두 시간 정도 문제를 풀었다. 하지만 실력이 크게 늘지 않은 이유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답지를 확인했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어려운 문제에 집착한 점도 한몫했다.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지만 알고리즘은 논리적이고 효율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놓지 않을 계획이다.
알고리즘과 프로젝트를 하면서 커밋했던 기록. 이때는 질보다 양에 승부한 커밋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 보고 이곳저곳 다니며 맛있는 음식들도 먹었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만나는 친구들마다 인생 네 컷을 찍자고 해서 "이게 유행인가?" 싶었다. 굳이 유행을 따르진 않는 성격이지만 찍고 다녔는데 남는건 사진이라고 했던가? 덕분에 추억이 생긴 것 같아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내가 먼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상반기에는 콘서트에 여러 번 다녔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해외 투어만 다니느라 한국 팬들을 신경 써 주지 못했다고 상반기에 콘서트를 연달아 잡아버려서 나도 덩달아 티켓팅을 하고 콘서트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콘서트를 하는 당일은 도파민이 하늘까지 치솟아서 너무 즐거웠지만, 그다음 날부터 오는 공허함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내가 콘서트를 가는 이유는 이 사람들의 젊은 에너지를 보면서 나도 하루를 젊게 살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퀄리티의 콘서트를 준비하느라 고생하고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해서 나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가게 되는 것 같다.
도파민 맥스였던 콘서트
멘토링 프로그램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이력서 제출을 시작했다. 예전에 일본 기업에 지원할 때는 신입이었기 때문에 나의 개발 열정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엔 경력직으로 지원하는 만큼, 내가 회사에서 어떤 기여를 했고,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했는데, 이 부분을 글로 쓰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처음엔 '경력이 있으니 면접까지는 볼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한 주에 30개 가까운 지원서를 냈지만, 서류 탈락이 이어졌다. 다행히 한 곳에서 코딩 테스트 기회를 얻었고, 두 곳은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코딩 테스트에서 나는 내가 생각보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정 문제를 보고 동적 계획법(DP) 문제라는 것은 파악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답지를 보며 공부했던 방식이 근본적인 이해를 돕지 못했음을 실감하고, 이후부터는 한 시간 정도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고, 해결하지 못한 부분은 기록에 남겨 복습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또한 어떤 알고리즘을 사용했는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풀면 되는지도 기록에 남겨가며 학습 방향을 점검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코딩 테스트 문제를 풀면서 내가 공부했던 알고리즘이 실제 현업에서 이렇게 활용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전에는 단순히 사고력을 높이기 위해 알고리즘을 공부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이해하게 되니 흥미가 생기고, 더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동기부여도 얻게 되었다.
면접 경험도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 되었다. 금융계 회사 면접에서는 내가 그 업무를 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고 느껴 솔직하게 "이 일은 제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스스로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었다. 다른 한 곳인 메디컬 회사 면접에서는 대답을 이끌어 내기 쉽게 질문을 해주시고 회사 분위기도 좋은 것 같아 가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회사에서 '프론트엔드적인 역량이 보이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도 상처받지 않았다. 이미 면접 과정을 통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서류 탈락이 계속되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기로 했다. 이력서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FE 개발을 맡아 라이브러리 선정부터 배포까지 직접 진행하고 있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최소한 MVP까지 완성하여 서비스를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동생네 조카가 태어난 후 거의 조카바보가 되었다. 밥을 먹고 난 마죠리카 같은 얼굴과 베시시 웃는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이제 목도 가누고 되집기도 하는 중이다. 부모님이 조카를 보러 자주 갈 수는 없는 상황이라 시간이 많은 내가 동생네로 가서 동생대신 당분간 집안일을 해줬다. 이럴땐 백수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생에게 아직 축하선물도 못해줘서 얼른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조카를 보러 가있는 동안에는 주말엔 글또 스터디에도 참여하고, 오프라인 모임에도 참여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 살지 않아서 정보도 많이 얻지 못하고 기회가 있어도 지금 사는곳과 멀어서 쉽게 가지 못했지만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가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귀여운 참새 발만 살짝👣
이번 회고를 통해 오랜만에 사진첩도 보고,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본의 아니게 1년동안의 이직취준 생활을 하게되어 항상 좋은일만은 있지 않았다. 개발자를 그만둬야하나? 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 선택지는 아직도 유효하다. 얼마나 이 생활이 이어질지 장담할 순 없지만 그래도 올해 1년만 더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성경에는 남은 날을 계수(세어보다)하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라는 구절이 있다. 남은 날이 어쩌면 먼 미래일 수도,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되어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온 삶들이 모여 오늘의 회고가 만들어졌다. 내년에는 올해의 나를 돌아보며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