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사자처럼 대학 동아리를 개설하기까지의 회고

사자·2024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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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2023년, 부산외국어대학교 멋쟁이사자처럼 대학 11기 동아리를 운영하며 스스로 고민하고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개발 커뮤니티 불모지에서의 2년

2019년 3월, 부산외국어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1학년의 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학생, 고등학생 때부터 개발자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블록코딩(스크래치, 엔트리…) 이외에 “프로그램 개발”을 접해 볼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전공자로서 선배들 혹은 교수님들로부터 개발의 세계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행복했다. 교과 수업에 열심히 임했고 그 결과 좋은 성적을 받고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얼른 실무적인 능력을 키워 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Python을 배우면 좋다더라”, “JAVA가 많이 쓰인다더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수업으로 문법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콘솔창에 별을 찍거나 덧셈을 하는 것 말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드는 지 몰랐다. 그걸 알고 싶어 좀 더 경험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얻고 싶었으나 그 방법 역시 몰랐다. 친한 선배들 역시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을 뿐 답을 찾지 못했고, 우리 학교에는 좋은 개발자 커뮤니티가 없었다.

분명 학과에 동아리가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주변의 아무도 그 동아리를 어떻게 들어가는 지 몰랐다. 거의 2~3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특정 교수님이 관리하시는 연구실이 동아리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었다. 연구실에 자리가 나서 교수님 마음에 들어 해 직접 오라고 해주시거나, 동아리장이 스카웃을 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교내 활동이 없다면 교외활동이라도 찾아보자는 마음에 구글에 “개발자 대외활동”, “컴퓨터공학과 대외활동” 등을 검색하다 “멋쟁이사자처럼 대학”이라는 대학 연합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국의 여러 대학들이 해당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고, 동아리에서 웹개발을 배운다는 것을 알고 무척이나 들어가고 싶었지만 역시나 우리 학교에는 없었다. 부산권에 다른 프로젝트성 동아리가 있으나 당장에 무언가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지원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나는 크게 낙심했다. 지방 사립 대학교에서는 개발 공부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를 기대할 수는 없는걸까? 재수라도 해야하나?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됐다. 휴학을 결심했다.

개발의 “ㄱ” 깨우치기

휴학 이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도, 복학 후 코딩하는 법을 잊어버릴까 불안해 간간히 알고리즘을 풀고 교과목 복습을 했다. C++, HTML/CSS, 파이썬 등을 번갈아가며 문법 책을 읽었다.(...) 당연하게도 “개발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었다.

21년 가을, 네이버에서 개최하는 개발자 컨퍼런스가 비대면으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관했다. 내 지식을 레벨 업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첫날 첫 시간대 세션부터 오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으나, 첫날 모든 세션이 종료된 후 나는 의자에 쭈그려 앉아 울었다. 약 5시간동안 단 하나도 제대로 알아들은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나는 개발의 “ㄱ”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컨퍼런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렇다면 개발의 “ㄱ”은 누구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인가? 의문을 가진 채 기계적으로 알바나 다니던 중 지인 A가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취업을 준비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나는 그 영향을 받아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때서야 원하는 결과물에 따라 공부해야 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ㄱ”을 깨우친 순간이었다. "ㄱ"을 깨우치는 것은 "개"를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도 충분했다.

이후 A와 함께 JavaScript 공부를 시작했는데, 헷갈리는 부분을 질문하면 A는 시간을 들여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주었고, 프론트엔드와 관련한 좋은 자료를 찾으면 공유해주었다. 분명 답답한 순간들이 있었을텐데 내게 재능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선의로 지식을 공유해주고, 둥가둥가 띄워주기까지 하는 A 덕분에 자신감을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어떤 직업을 가질 지”를 선택하고 나니 학습 목표가 보이기 시작했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으니 학습에 추진력이 붙었다. A의 추천으로 알게 된 Nomad Coders 강의를 통해 클론코딩 프로젝트를 몇 개 해 보면서 첫 웹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결과물과 나 스스로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주변에 엄청 보여주고 다녔다. A는 정말이지 막다른 길에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같은 존재였다.

부트캠프에서 배운 지식공유의 가치

남은 휴학 기간 반년동안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다가 멋쟁이사자처럼 부트캠프를 알게 되었다. 멋쟁이사자처럼 대학 동아리가 학교에 없어 나를 애타게 한 기업에서 부트캠프를 운영한다니. 그것도 비대면으로. 이만한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 당장 프론트엔드 스쿨 2기에 지원했고, 합격해 전문 강사님 그리고 열정적인 동기분들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부트캠프를 다닌 4개월은 기술적 성장이 있었던 동시에, 좁았던 시야를 틔우고 도전에 대한 용기를 북돋우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강의 내용을 잘 못알아들어서 부끄러워 “바보같은 질문 해도 되냐”는 말에 “세상에 바보같은 질문은 없다”고 말해주시고, 개인이 속도가 다른 게 당연하다고, 포기하지 않고 앉아있는 여러분이 대단하다며 응원해주는 강사님들, 함께 용기내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서로 고민을 나누던 동료들에게 큰 애정과 감사함을 느꼈다.

나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러니 좋은 기회가 참 많이 찾아왔다. 강사님들의 소속 회사에서 주최하는 컨퍼런스에 직접 연사자로 참여해보기도 하고, 스터디나 회고모임을 주도해보기도 하고, 동료들끼리 모여 책을 집필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지식을 나누기에는 민망한 지식수준이라고 생각 해 많이 망설였지만, 부트캠프 매니저님께서 "전문가가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지식이 있지만, 입문 단계를 지난 여러분이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메세지가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용기를 냈다.

화가 나고, 당황스럽고, 벅찬 순간들이 언제나 찾아왔지만 인내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때로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많이 배웠다. 도움을 베풀고자 하면서도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다시 정리하고 공유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내가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식은 물질과는 달라서, 내가 10을 내주어도 1을 얻으면 이득이라는 걸 깨달았다.
(덤으로 인간관계까지 얻는다.)

불모지 개간하기

부트캠프를 수료한 뒤 학교에 복학했다. 나를 낙심하게 한 불모지로 돌아왔지만, 지난 부트캠프 경험에서 “일단 일을 벌려놓으면 뭐든 배우게 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실력이 없더라도 의욕이 있는 프로젝트 팀원을 모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 프론트엔드 공부를 시작한 친구 B, 백엔드 C, 디자이너 D와 함께 학과 전시회 사이트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부트캠프를 다니면서는 내가 많이 부족해 JavaScript로 비동기 통신을 하는 방법을 잘 몰랐고 프로젝트에서도 비동기 부분을 제외하고 역할을 맡았는데, 학과 전시회 사이트를 개발하면서는 B에게 도움을 많이 받으며 비동기 통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팀 프로젝트는 제법 성공적으로 결과물을 냈다.

나는 공학도가 적은 외대, 개발 커뮤니티 불모지에서 만난 소중한 커넥션을 어떻게든 이어나가고 싶었다. 백엔드 팀원 C는 타 학과 IT 동아리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C에게 웹개발 공부를 하는 다른 학생들을 소개받아 겨울방학 모각코 스터디를 열었다. 웹개발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 귀한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스터디에서 매주 테크톡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테크톡에서는 각자 격주로 돌아가며 개발, IT 관련 자유주제를 선택해 조사해오고 그 내용을 공유했다. 발표 후에는 돌아가면서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거나, 관련해서 아는 TMI를 나누거나,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게끔 권했다. 총 6회의 테크톡을 진행하고 나니 우리는 약 15개의 주제에 대해 공유했고, 친해졌고, 6주 전보다 더 재밌게,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공통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긍정적인 영향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경험은 정말 짜릿했다. 대학 1, 2학년 시절 도움을 받을 곳을 찾지 못해 낙담하며 마음에 뚫린 구멍이 메워지는 듯한 벅참이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멋대

겨울방학 스터디를 진행하던 중, 스터디원 한 분이 단톡에 채팅을 남겼다.

“혹시 멋쟁이사자처럼 대학 운영진 같이 하실 분 있나요?”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저요” 하고 바로 답장을 남겼다.

개발을 시작할 때 느끼는 어려움을 알았고, 어려움을 느끼는 때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 도움을 우리 학교에서 받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다. 교내에 숨어 있을 그런 사람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찾아온 제안이었다. 멋쟁이사자처럼 대학을 개설하는 것은 멋사 부트캠프를 다니면서도 고민해본 적 있었는데, 함께 스터디를 하고 있는 열정적인 동료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하고 싶었다.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부족한 부분은 지금처럼 같이 공부해가면서, 서로 보완하면서 해결해나가면 되지 않겠느냐며 설득했고 결국 스터디원들 모두가 운영진을 하겠노라고 동참했다.

대표는 내가 되었다. 부담이 있었지만 이 불모지를 개간하고 싶다는 의지가 더 컸다.
(수락하고 보니 이미 운영진 목록에 내가 대표라고 써 있었다...)


그렇게 “멋쟁이사자처럼 대학 부산외대”가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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