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인은 다음 문장 P의 중의성을 지적했다.
P. 랄프는 어떤 사람이 간첩이라고 생각한다.
P1. 어떤 사람이 존재하여, 랄프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그는 간첩이다."
P2. 랄프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간첩이다."
P1의 경우 랄프는 특정 누군가가 간첩이라는, 국정원에 신고할 만한 내용을 생각하고 있다. 반면 P2의 경우 랄프는 이 세상 누군가는 간첩이라는 매우 당연한 내용을 생각한다. 위 두 해석의 차이는 다음 형식화에서 드러나듯이 존재 양화사를 믿음 문맥 안에 넣느냐 밖으로 빼냐에 달려 있다.
P1.
P2.
믿음 문맥뿐 아니라 양상 문맥에서도 비슷한 중의성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 Q는 중의적이다.
Q. 태양계의 행성 수는 홀수일 수도 있었다.
Q1. 는 태양계의 행성 수이며, 다음이 가능했다. "는 홀수이다."
Q2. 다음이 가능했다. "는 태양계의 행성 수이며, 는 홀수이다."
Q1은 분명히 거짓이다. 태양계의 행성 수는 8이며, 8이 홀수인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Q2는 참인 듯하다. 일례로 명왕성이 아직 행성이었다면 태양계의 행성 수는 9였을 것이며, 9는 홀수이다. 그리고 위 두 해석의 차이 또한 다음 형식화에서 드라나듯이 c의 한정 양화사를 양상 문맥 안에 넣느냐 밖으로 빼냐에 달려 있다.
Q1.
Q2.
이로부터 다음과 같이 De Re/De Dicto 구분을 정의한다.
형태론적 De Re/De Dicto 구분
문장 가 믿음 문맥 또는 양상 문맥을 가지며, 문맥에 지칭 표현() 또는 자유변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자.
- 가 형태론적으로 De Re라는 것은 해당 표현 및 자유변수가 믿음/양상 문맥 밖의 양화사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가 형태론적으로 De Dicto라는 것은 해당 표현 및 자유변수가 믿음/양상 문맥 안의 양화사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형태론적 De Re 문장은 표현의 양화가 믿음/양상 문맥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De Dicto 문장은 양화가 믿음/양상 문맥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보통 전자의 경우 표현은 사물을 지시하게 되고 후자의 경우 표현은 "사물이 아닌 무언가(e.g. 프레게의 뜻)"를 지시하게 되기 때문에 De Re를 대물적, De Dicto를 대언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P1)과 (Q1)은 형태론적 De Re이고 (P2)와 (Q2)는 형태론적 De Dicto임을 확인해 보라.
위의 De Re/De Dicto 구분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콰인은 형태론적 De Re 문장은 의미가 결여된 문장(nonsense)라고 주장한다. 콰인의 공격을 소개하기에 앞서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 이론을 빠르게 복습하자.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 이론
표현 의 지시체는 를 포함하는 문장의 진릿값에 관여하는 요소이다.
- 의 지시체가 같다면 임의의 술어 에 대해 이다. (라이프니츠 법칙)
- 가 으로 이루어진 문장이라면 의 진릿값은 의 논리적 형태와 의 지시체로 필요충분하게 결정된다. (합성성)
- 의 뜻은 의 지시체가 언어 사용자에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 뜻은 지시체를 결정한다.
- 의 지시체가 이고 뜻이 라면, 믿음 문맥 안에서 의 지시체는 이다.
콰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콰인의 주장.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 이론에 따르면 형태론적 De Re 문장은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
콰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다음을 생각해 보자. 평소에 랄프는 자신이 사는 도시의 시장인 오트커트 씨를 존경하며, 오트커트 씨가 간첩 공작에 가담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랄프는 으슥한 골목길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린 수상한 남자가 서류가방을 들고 달리는 것을 보고 저 남자는 간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남자는 오트커트 씨였지만 랄프는 이 사실을 모른다. 이때 P1은 참인가?
P1.
고전 논리학에서 일 필요충분조건은 내에 어떤 에 대해 인 것이다. 일면 가 오트커트 씨일 때 "Ralph believes: IsSpy(c)"는 참인 듯하며, 그렇다면 P1 또한 참일 것이다. 그러나 는 믿음 문맥 안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프레게에 따르면 의 지시체는 오트커트 씨가 아닌 오트커트 씨가 랄프에게 드러나는 방식, 즉 "으슥한 골목길의 수상한 남자" 또는 "시장"에 준한다. 전자의 경우 P1은 참이지만 후자의 경우 P1은 거짓이므로 P1의 진릿값은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P1은 넌센스(nonsense)이다.
요컨대 콰인의 요지는 형태론적 De Re 문장에는 대물적인 존재 양화사와 대언적인 믿음 양상 간의 긴장이 있다는 것이다.
콰인의 공격을 검토하기에 앞서 새로운 구분을 도입하자.
의미론적 De Re/De Dicto 구분
- 가 의미론적으로 De Re라는 것은 에 나타나는 임의의 표현 에 대해 이 와 지시체가 같다면 에서 를 으로 대치해도 진릿값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 가 의미론적으로 De Dicto라는 것은 의미론적으로 De Re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계의 행성 수"를 "팔각형의 모서리 수"로 바꾸면 Q1은 여전히 참이지만 Q2는 거짓이다. 요컨대 Q1은 의미론적으로 De Re이고 Q2는 의미론적으로 De Dicto이다.
자연스러운 질문은 의미론적 De Re/De Dicto 구분과 형태론적 De Re/De Dicto 구분의 관계이다. 이에 대한 프레게주의의 답은 다음과 같다.
정리. 프레게의 언어철학에 따르면 형태론적 De Dicto 문장은 의미론적으로도 De Dicto이다.
증명. 꼴의 문장 를 생각해 보자. 프레게에 따르면 는 의 통상적 뜻이다. 와 지시체가 같지만 뜻이 다른 표현 은 에서 와 salva veritate하지 않으므로 는 의미론적으로 De Dicto이다.
러셀의 기술주의 또한 위와 같은 결론을 함의한다. 그런데 고유이름과 대명사를 모두 "이름", 즉 뜻이 결여된 채 지시체만을 가지는 표현으로 간주하는 원시적 러셀주의는 다른 결론을 내놓는다.
R. 샐리는 빌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형태론적으로 De Dicto이다. 하지만 의미론적으로는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