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erence: @ianpark.vc
슈퍼카가 우리에게 주던 행복은 비효율과 낭비였다.
2026년 5월 25일, 로마 근교. 200여 기자 앞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름은 Luce—이탈리아어로 빛. 가격은 약 8억 5천만원
디자이너는 Jony Ive와 Marc Newson. 전 Apple 디자인 수장의 첫 자동차.
페라리 주가는 발표 다음 거래일 7% 하락.
온라인 반응
Nissan Leaf에 바디킷 단 거
Waymo 같아 보임
엔초가 무덤에서 돌아눕는다.
2년 이상 미뤄온 프로젝트의 첫 인상이었다.
내가 진짜로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면 페라리를 다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신화의 파괴를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그 차에서 도약하는 말 엠블럼은 떼어내 줬으면 한다
나는 그차가 실제로 잘 빠졌다고 생각한다. 전기차로서는
디자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차이기 때문에 페라리가 못 된 것.
효율은 또한 현대 사회의 한 부분이다. 기술산업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점점 더 소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 부분이다.
전기차의 차가움은 차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 자체의 차가움이다.
효율적 시스템은 인간을 부품으로 다룬다.
최단거리, 최저 비용, 최소 시간.
모든 결정의 기준이 단 하나.
그 안에서 인간은 데이터다. 대체 가능한 단위다. 의미는 측정 안 된다.
페라리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었다.
페라리는 비효율의 박물관이었다.
V12 엔진. 연비 4-5km.
두 사람만 탈 수 있다.
주차도 어렵다. 트렁크도 없다.
모든 결정이 의도적 비효율이었다.
그 비효율 안에 의미가 있었다.
전기차는 비효율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g, 모든 W, 모든 mm가 주행 거리로 환산된다.
페라리의 영혼이었던 '쓸데없이 호화로운 결정'을 전기차 플랫폼은 물리적으로 차단한다.
정체성이 침범당했다.
미니멀 효율은 아이폰엔 어울려도 페라리에는 한참 틀렸다.
최소의 선. 가벼움. 효율.
이것이 아이폰의 언어다.
페라리의 언어는 정반대다—
과잉. 비효율. 도발.
같은 디자이너의 같은 철학으로 두 브랜드를 만들면 한쪽은 죽는다.
20세기 초 한 작가의 문장—
당신이 즐겁게 낭비한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이 한 문장이 효율 thesis의 정반대편에 있다.
어린 왕자 여우의 말:
네가 너의 장미에 낭비한 시간이, 그 장미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들었다.
장미의 의미는 효율에서 오지 않는다.
너의 비효율적 시간에서 온다.
Thompson — 효율은 소외시킨다.
어린 왕자 — 낭비한 시간이 의미를 만든다.
둘 다 말하는 건 한 가지 —
의미는 비효율에서 나온다.
최적화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최적화된 페라리는 페라리가 아니다.
Dating 앱의 매칭 알고리즘.
친구 만남의 시간 효율
가족 식사의 퀄리티 타임
사랑의 영역에 효율의 잣대를 들고 들어간다.
그러면 사랑은 다른 것이 된다.
"놀랍게도 AI가 이 소외 문제를 도와줄 수도 있다.
AI가 효율의 일을 가져가면 —
인간에게는 낭비할 자유가 돌아온다.
효율 자체가 외주된다.
지난 250년 기술 발전은 일을 더 늘렸지 줄인 적은 없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정말 줄인다면
인류가 돌아가는 불행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있을까?
내가 자동차를 사는 이유는 이동인가, 의미인가?
내가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네트워킹인가, 우정인가?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정보인가, 시간의 동행인가?
답이 의미 쪽이면 효율의 자리는 줄여야 한다.
한 브랜드가 효율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브랜드의 의미가 사라진다.
한 개인이 효율을 삶의 잣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의 의미도 같이 사라진다.
의미는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심지어 비합리적이라도.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낭비한 시간을 떠올려 보자.
그 시간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측정되지 않았다.
생산성이 0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당신 인생의 가장 부유한 순간이었다.
그 시간을 더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