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보다 설계가 먼저다: TLA+로 복잡한 시스템 설계하기

도현·2025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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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포스트는 워싱턴주 시애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Ben Congdon님의 The Coming Need for Formal Specification를 읽던중 영감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열심히 코드를 짜고 배포한 뒤, 금요일 저녁에 알람이 울립니다. "간헐적으로 데이터가 꼬입니다." 로그를 뒤져보지만 재현이 안 됩니다. 흔히 말하는 경쟁 상태(Race Condition)나 동시성(Concurrency) 이슈입니다.

테스트 코드를 짰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테스트 코드는 '우리가 예상한 시나리오'만 검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그는 항상 우리의 상상력 밖, 그 미묘한 타이밍의 틈새에서 발생합니다.

오늘은 아마존(AWS)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시스템의 심장을 설계할 때 사용하는 비밀 무기, TLA+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TLA+가 뭔가요?

TLA+ (Temporal Logic of Actions)는 코드를 짜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시스템을 설계하고 검증하기 위한 정형 명세 언어(Formal Specification Language)입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초고정밀 설계도'입니다. 우리가 건물을 지을 때 벽돌부터 쌓지 않습니다. 청사진을 먼저 그리고, 구조 역학적으로 무너지지 않을지 계산하죠. TLA+는 소프트웨어에서 그 역할을 합니다.

  • 코드(Code): "어떻게(How)" 동작할지 지시하는 것.
  • TLA+: "무엇(What)"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시스템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는 것.

2. 왜 TLA+를 써야 하나요? (특히 로우레벨/아키텍처 관심자라면)

단순한 웹페이지를 만들 때는 TLA+가 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산 시스템, 멀티스레딩, 블록체인, OS 커널 같은 복잡한 시스템을 다룬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① 모든 경우의 수 탐색 (Model Checking)
사람은 머릿속으로 "A 스레드가 이거 할 때 B 스레드가 저거 하면..." 정도까지밖에 시뮬레이션을 못 합니다. TLA+의 Model Checker(TLC)는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수십억 개의 모든 상태(State)를 전수 조사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절대 발견 못 할 극단적인 에지 케이스(Edge case)를 찾아냅니다.

② '구현'이 아닌 '설계'의 버그를 잡는다
AWS의 엔지니어들은 DynamoDB나 S3 같은 서비스를 만들 때 TLA+를 사용해, 코드를 한 줄도 짜기 전에 심각한 설계 결함을 찾아냈다고 보고했습니다. 코드를 다 짜고 나서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보다, 설계 단계에서 수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효율적입니다.

3. 어떻게 생겼나요?

TLA+는 프로그래밍 언어라기보다 수학 수식에 가깝습니다. 핵심은 "다음 상태(Next State)는 현재 상태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카운터 시스템을 TLA+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입니다. (개념적 코드)

VARIABLE count
Init == count = 0  (* 초기 상태: 카운트는 0 *)
Next == count' = count + 1  (* 다음 상태: 현재 카운트 + 1 *)

여기서 중요한 건 count' (프라임)입니다. 이는 "다음 단계의 값"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시스템의 상태 전이를 정의해두면, 컴퓨터가 이 수식을 바탕으로 발생 가능한 모든 미래를 시뮬레이션합니다.

4. 프론트엔드 개발자에게도 의미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최근 프론트엔드는 단순한 뷰어가 아닙니다.

복잡한 상태 관리: Redux나 XState 같은 상태 라이브러리는 사실 TLA+가 다루는 '상태 머신(State Machine)'의 축소판입니다.

비동기 처리: 사용자가 버튼을 광클할 때, 네트워크 요청이 꼬여서 데이터가 덮어씌워지는 문제 등은 TLA+적 사고방식으로 명쾌하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스템을 '상태(State)'와 '전이(Transi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줍니다.

5. 최신 트렌드: AI와 정형 검증의 만남

최근에는 이 TLA+가 AI와 결합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 사람: 영어로 대략적인 설계를 쓴다.
  2. AI: 이를 TLA+ 코드로 변환한다.
  3. TLA+: 논리적 구멍이 없는지 수학적으로 검증한다.
  4. AI/사람: 검증된 설계를 바탕으로 코드를 구현한다. (Rocq 등으로 중요 부품 증명)

이 파이프라인은 그동안 "너무 어려워서" 학계의 전유물이었던 정형 검증(Formal Verification)을 실무 레벨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마무리: 로우레벨을 향한 첫걸음
여러분이 리눅스 커널이나 고성능 오픈소스에 기여하고 싶다면, 코드를 빨리 짜는 능력보다 "전체 시스템의 정합성을 꿰뚫어 보는 눈"이 중요합니다. TLA+는 그 눈을 뜨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지금 당장 모든 프로젝트에 도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말에 "Learn TLA+" 사이트를 한 번 둘러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의 엔지니어링 레벨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줄지도 모릅니다.

Reference

Leslie Lamport의 TLA+ Video Course: TLA+ 창시자(튜링상 수상자)의 직강
Learn TLA+ (Hillel Wayne): 개발자 친화적인 입문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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