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 Inequality : 경제적 불평등

Do Junggeun·2020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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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ul Graham이 2016년 1월 작성한 Economic Inequality를 번역한 글입니다.
  • Translated by Do Junggeun (도정근)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급속도로 심화되었다. 특히 부자들은 더더욱 부자가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질문이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내가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시작하도록 도와주는 회사인 Y combinator의 창립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성공한다면 그 창립자는 부자가 될 것이다. 이는 내가 스타트업 창업자를 돕는 방식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어야 한다면, 나는 창업가를 도와주면 안 될 것이다. 나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러나 이는 이상하게 들린다. 무슨 일인가? 경제적 불평등은 하나의 지표(구체적으로는 소득과 재산이라는 두 가지 지표)로만 측정되지만 사실은 경제적 불평등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탈세나 마약 중독과 같은 많은 방식들은 부정적이지만,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당신이 인터넷에 검색할 때 이용하는 회사(구글)를 설립한 것처럼 일부는 긍정적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이해하고 싶다면 (더 중요하게는 경제적 불평등의 부정적인 측면을 고쳐나가고 싶다면) 여러 요소들을 별개로 생각해봐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주제에 대한 대부분의 글은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의 모든 측면을 단일한 하나의 현상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

이는 때로는 이념적인 이유 때문이고, 때로는 화자가 마치 빛이 좋기에 자신이 열쇠를 떨어뜨린 곳이 아닌 등잔 밑에서만 열쇠를 찾는 취객처럼 very high-level 데이터만으로 결론을 짓기 때문이다. 때로는 화자가 기술(technology)이 부의 창출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불평등의 중요한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쓰인 글들은 셋 모두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저지르는 가장 일반적인 실수는 이를 단순한 하나의 현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나이브한 방식은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부를 뺐어서 부자가 된다는 이른바 “파이 오류(경제적 파이가 일정하다는 것을 전제로 갖는 오류)”이다.

“파이 오류”는 보통 사람들이 증거를 조사해서 얻어낸 결론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냥 전제로 가정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 파이 오류는 아래와 같이 단정적으로 언급된다.

…상류층의 소득이 점차 국가 소득의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부분은 점점 감소하고 있다…[1]

어떤 경우는 더 무의식적이다. 그러나 이 무의식은 널리 퍼져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실제로 파이가 일정한 세상에서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부는 서로 나눠 먹는 고정된 파이인데, 한 사람이 더 많이 얻으면 다른 사람은 희생된다. 현실의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 목수는 부를 창출한다. 목수가 의자를 만들면 당신은 목수에게 그 대가로 돈을 주고 의자를 구매한다. 그러나 트레이더는 그렇지 않다. 트레이더는 다른 사람들이 돈을 잃기 때문에 돈을 번다.

사회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부를 빼앗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면, 그것은 부의 원인과 가난의 원인이 동일한 퇴보적인 것이다. 그러나 불평등이 꼭 그런 방식으로 발생할 필요는 없다. 한 목수가 5개의 의자를 만들고 다른 목수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면, 두 번째 목수는 돈을 더 적게 번다. 그러나 이것은 두 번째 목수에게 무언가를 빼앗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파이 오류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들 역시 경제적 불평등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하위 25퍼센트(1사분위)의 부나 소득이 어느 정도 비율인지를 기준으로 설명하는 관습에 쉽게 이끌린다. ‘하위 25퍼센트의 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서 ‘실제로 그렇다고 믿게 되는 것’으로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 쉽다.

퇴보한(부정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경제적 불평등은 비율이나 곡선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이유도 다양하고,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도 다양하다. 이는 한 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하거나 부유한 개인들을 찾아서 왜 그런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다.[2]

경제적 불평등의 변화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들이 다른 상황이었다면 무엇을 했을지(people would have done when it was different)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내가 부자들이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부를 가져오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한 가지 방법이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would-have 방법을 적용하면(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무엇을 했을지를 생각해보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지 않았던 1960년대에 가장 많이 했을 일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교수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기본적으로 Microsoft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그와 대부분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20세기 중반의 다른 흔한 길을 걸었을 때보다 부자가 된 것은 레이건 행정부가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를 시작하기 훨씬 쉬워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은 이상하게도 개인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꺼리는 듯하다. 모든 것은 통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규칙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부와 소득의 변동에 대해 정확한 수치를 알려주고, 그 근본 원인에 대한 나이브한 추측으로만 그 수치를 예상한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의 지대(임대료)를 통해 부자가 된 사람도 많고, 제로섬 게임으로 부자가 된 사람도 많고, 부를 창출하면서 부자가 된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부를 창출함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부를 빼앗음으로써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과는 — 도덕적으로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를 뿌리뽑기 어렵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나의 이유는 생산성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는 사용 가능한 기술에 달려 있고,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 부의 창출이 불평등의 지속적인 원인이 되는 다른 이유는 기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부자가 되는 부정적인 방법을 차단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부의 편차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를 창조함으로써 부자가 되는 방법이 가능하다면,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방법 대신에)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많은 사람들은 추진력이 강한 경향이 있다. 그들의 결점은 다양하지만, 보통 게으르지는 않다. 새로운 정책으로 금융 시장에서 큰돈을 벌기 어려워졌다고 해보자. 큰돈을 벌기위해 금융 시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평범한 월급을 받으면서 계속 일할 것인가? 그들이 금융 시장에 있는 이유는 금융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스타트업을 시작할 것이다. 결단력(의지)는 스타트업의 주요한 성공 요인이기 때문에 그들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3] 그리고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부를 창출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부의 편차를 제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크게 증가시킬 수도 있다. (제로섬 게임에는 적어도 상한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생산성의 변동을 가속화하는 수 많은 기술을 만들어낼 것이다.

생산성의 편차는 경제적 불평등의 유일한 원인과는 거리가 멀지만, 다른 모든 원인을 제거해도 남아있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핵심적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핵심은 커질 텐데, 다른 모든 편차들의 원인을 포함하도록 확장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핵심(생산성의 편차)의 주위에는 Baumol penumbra가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by 도정근) 부를 창출함으로써 부자가 된 누구든지 그 일을 더 할 수 없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보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것을 막지 않고서는 부의 편차를 없앨 수 없고, 사람들이 창업하는 것을 막지 않고서는 부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제 정리해보자. 부의 편차를 없애는 것은 스타트업을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현명하지 않다. 특히나 그 방식으로는 한 나라에서만 스타트업을 없애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야망 있는 사람들은 이미 세계의 절반을 돌아다니며 커리어를 만들고 있으며, 지금은 어떤 곳에서든 창업할 수 있는 시대다. 따라서 당신의 나라에서 부를 창출함으로써 부자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그 나라를 떠나 다른 곳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좋은 교훈을 얻고, 지니 계수는 더 낮아질 것이다.[4]

경제적 불평등의 증가는 더 나쁜 선택을 하지 않는 국가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는데 20세기 중반에 40년이 걸렸다. 그러나 내가 The Refragmentation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고,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미국 사회를 압축한 독특한 상황의 조합이었다.[5]

또한 그동안 우리가 관찰한 경제적 불평등 심화의 일부분은 다양한 나쁜 방식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개인이 부를 창출하는 능력도 엄청나게 증가했다. 스타트업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 시대의 산물이다. 스타트업의 세상 안에서도 지난 10년간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기술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비용을 엄청나게 낮추어 창업자들을 투자자들보다 우위에 서게 만들었다. 창업자들의 지분을 덜 희석되고, 이사회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둘 모두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데, 전자는 창업자들이 주식을 더 많이 보유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투자자들도 깨달은 것처럼 창업자들이 투자자들보다 자신의 회사를 더 잘 운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모습이 변하는 동안, 근본적인 힘은 매우 오래 지속되어 왔다. 실리콘밸리가 보여주는 생산성의 가속화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석기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미 중석기 시대에도 기술은 가속화되고 있었다. 단지 가속의 기울기가 낮아서 일생 동안 인지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지수함수 곡선의 왼쪽 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곡선이다.

당신은 이 곡선과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를 디자인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이다.

Louis Brandeis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가질 수 있고, 소수에게 집중된 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내가 그를 무시하는 것과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지수함수 곡선을 무시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곡선에 배팅하겠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경향을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지수함수 곡선을 무시하는 것은 당신을 다치게 할 것이다.


만약 생산성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 항상 경제적 불평등의 기본적인 증가를 유발한다면, 그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게 좋을 것이다. 부의 편차가 크면서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참신하게 느껴지는지에 주목하라. 지금까지의 공적인 대화는 오직 경제적 불평등을 감소시킬 필요성에 대해서만 이루어졌다.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Brandeis는 Gilded Age의 산물이고,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이제 잘못을 감추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또 지금은 부자가 되기 위해 철도나 오일 거물들이 했던 것처럼 정치인을 매수할 필요가 없다.[6] 실리콘밸리에 엄청난 부가 집중되는 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지는 않다.

미국에는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것들을 고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감소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증상부터 고칠 수는 없고, 근본적인 원인을 고치기를 희망한다.

가장 분명한 것은 빈곤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들을 공격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 것이라고 확신한다.[8] 사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감소시킨다고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빈곤의 감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빈곤과 불평등은 같지 않다. 당신이 요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이유로 도시가 당신의 을 끊을 때, 래리 페이지와 당신의 순 자산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당신보다 몇 배 정도만 부유할지도 모르고, 당신의 물이 끊기는 것이 훨씬 큰 문제일 것이다.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사회적 이동성의 부족이다. 나는 이것을 나 자신으로부터 직접 경험했다. 창업가로서 부자가 되기 위해 부자나 중상류층으로 자랄 필요는 없지만, 성공한 창업가들은 대부분 가난하게 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단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다. 래리 페이지가 자란 가정과 성공한 창업가가 꾸린 가정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래리 페이지가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사회적 이동을 가로막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랄 때 잘못되는 것들의 특정한 조합이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you make what you measure”(당신은 당신이 측정하는 것을 만든다)이다. 이것은 당신이 어떤 수치에 집중한다면 그 수치는 나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수치만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올바른 수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개념적으로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수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로, 대학 총장이 졸업률에 초점을 맞춘다면 졸업률은 높아지겠지만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제대로 배우는지와는 무관하다. 졸업률을 높이기 위해 수업을 쉽게 만들어서 학생들은 오히려 덜 배울 수도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적 불평등을 증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제들과 충분히 동일하지 않다. 우리가 경제적 불평등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진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문제에 집중해보자고 말한다.

예로, 빈곤을 공격하고, 필요하다면 그 과정에서 부(재산)를 손상시키자. 이 방법은 당신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부를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9] 그리고 소비자를 속이거나, 로비로 얻어낸 반경쟁적 규제나 탈세를 통해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멈추자. 그들이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도둑질을 하기 때문이다.[10]

통계만 보면 경제적 불평등을 고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광범위하게 측정된 통계의 뒤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고, 엄청난 모멘텀을 가진 역사적 추세와 랜덤한 요소도 있다. 만약 우리가 통계 뒤에 숨어있는 세상을 바로잡고 싶다면,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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