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원상연·2020년 9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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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플랫폼마다 좋은글? 을 모으고 추천해주는 서비스가 많아지는 것 같다. 퍼블리에서 보내주는 글도 잘 보고 있는데 그 중에 정리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이미지 - 퍼블리

최근에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우리가 직업으로 일을 하는데 있어서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한 마음이 계속 커지게되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해당글은 그 불안감을 어떻게 하면 좋게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번역)

본문 - Preparing Your Mind for Uncertain Times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수용법

요즘 정말 답이 안나오는 시기입니다. 나도 코로나에 걸리는건 아닐까? 백신은 언제쯤 나오는걸까? 내 직업은 안전할까? 언제 예전처럼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이 이러한 어려움에 대한 추측이나 추정을 할 수는 있지만, 어느것도 확실치 않은 이 상황이 우리를 더 돌아버리게 만듭니다.

인간은 불확실성을 싫어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것을 피할 수 있다면 뭐든 하려 합니다. 확실함이 보장 되어 있는 선택이라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불확실한 선택보다 선호합니다. 영국의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100%의 확률로 전기충격을 받을 때보다, 50%의 확률일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과민증은 사람들에게 우울증이나 강박성 장애와 같은 병증에 걸릴 위험에 더 노출시킵니다.

우리는 보통 불확실성을 항상 나쁘고, 반대로 확실한 것은 항상 좋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고대 철학과 계속 생겨나는 과학적 증거들을 보면 다르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리를 방해할 필요가 없으며, 하버드의 심리학 교수인 다니엘 길버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적절한 형태와 적당한 양의 불안은, 사실 큰 즐거움일 수 있다."

참고글: Surrendering to Uncertainty

우리는 결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스릴러 장르를 보거나 미스터리 장르를 읽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또는 잘 모르는 고백 쪽지를 받았다고 생각해봅시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그 점이 "당신이 달콤하고 밝게 느낄만한 불확실성의 한 종류이다."라고 길버트는 말합니다._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좋은-불확실성의 즐거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거의 알아채지 못하고 있습니다. 길버트와 그의 동료들은 설령 긍정적인 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람들의 즐거움을 늘려주더라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이 사라질 때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대다수가 직면하고 있는 어두운 면의 불확실성은 어떨까요? 코로나로 인해 지금 당장 직면하고 있는 질병과 실직으로 인한 고통 뿐만 아니라, 기약 없는 특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아마 이러한 종류의 불확실성(악의적 불확실성)이 기분 나쁨을 악화시킨다는 것을 느꼈을 것 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단지 경향일 뿐, 그렇게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악의적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고통받지 않을 선택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경험상, 알려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상되는 위험성을 감소시키는 방법 또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우는 것 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전적으로 전자에 집중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은 이부분이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참고글: Sit With Negative Emotions, Don’t Push Them Away

철학자들은 최소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불확실성과 무상에 대해 씨름해 왔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아테네에서 번성했던 스토아 철학은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대처하는데 도움을 주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그 이유로 스토아 철학자들은 특히 불안전한 시기에 살았습니다. 아테네는 도시국가로서 독립성을 많이 잃었고, 몇 년 전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이 해당 지역에 권력의 공허함을 남겼습니다. 오래된 지시체계는 무너졌고, 새로운 것이 아직 들어서기 전이었습니다.

삶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다고 스토아 철학자들은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통제하려 합니다: 우리의 주장, 충동, 욕망, 혐오. 우리의 정신적, 정서적 상태입니다. 스토아 철학 신조를 요약하자면,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여라". 그들은 이 능력을 숙달하면 "무적"이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스토아 철학자들은 그것이 쉽지 않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 삶에 내제된 불확실성(요즘 코로나시대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끝나지 않을 전투이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스토아 철학자의 얘기입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피터 오툴이 연기한, 로렌스가 차분하게 두 손가락으로 성냥불을 끄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후 동료 장교가 직접 따라하더니,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릅니다.

"아오! 엄청 아픈데," 그가 말합니다.

"당연히 아프지," 로렌스가 답합니다.

"그럼, 비결이 뭐야?"

"비결이라," 로렌스가 계속 얘기합니다, "아픈걸 신경쓰지 않는 것이지."

로렌스의 반응이 스토아 철학 그 자체입니다. 물론, 그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다만 감각적인 반응으로 남았습니다. 결코 패닉 상황으로 전이 되지 않았습니다. 로렌스는 고통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글자 그대로: 그는 그의 정신이 그의 몸이 느낀 것을 남기거나, 증폭시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참고글: Two Errors Our Minds Make When Trying to Grasp the Pandemic

마찬가지로, 코로나는 우리 삶의 모든 환경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반응은 여전히 우리의 것입니다.

이 사고방식의 강력함을 보여주기 위해, 스토아 철학자들은 언덕에서 굴러가는 원통과 비유합니다. 중력은 원통이 굴러가게끔 하지만, 원통의 모양은 얼마나 부드럽고 빠르게 굴러가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언덕이나 중력을 통제할 수 없지만, 원통의 모양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상태 역시 해당됩니다.

가령, 당신이 대부분의 부모님처럼, 집에서 일하면서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합시다. 이러한 사실은 언덕과 매치됩니다. 바꿀 수 없는 부분이죠.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태도입니다. 게다가 중대한 변화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테레사 수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항으로 부터의 미묘한 변화 정도, 만약 전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적어도 인정하는 것 입니다.

불확실성을 참는 능력은 커다란 보상을 줄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도 결국 지식에 대한 탐구를 이르게 합니다. 훌륭한 과학자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알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면서 이러한 미지 속에 살길 원합니다. "굳이 정답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 신비로운 우주에서 아무 목적도 없이 길을 잃는다해도,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 두렵지 않습니다." 또한 연구에 의하면,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더 창의적인 사고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문 시인 존 키엣은 '부정적 능력'이라는 용어를 소개하면서 비슷한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1817년에 그의 형제들에게 적기를, 작가들은 "사실과 이유에 대해 성급하게 접근하지 않고 불확실성, 미스터리, 의심 속에 있을 수 있을 때", 가장 창의적이라고 가정했습니다.

참고글: Fear Can Make You a Better Person

일본 철학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오직 불확실성 또는 그의 사촌격인 무상함을 용납하지 말고, 축하하라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불확실성이다.", 14세기 스님인 요시다 캔코가 썼습니다.

벚꽃을 생각해 봅시다. 벚나무들은 한 때로 유명합니다. 겨우 1~2주간 펴고 꽃잎은 사라집니다. 매화 같은 다른 꽃들을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벚꽃처럼 덧 없는 것을 즐기기 위해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나요?

그 이유는 "아름다움은 스스로 사라지는 것에 있다," 라고 도날드 리치가 그의 저서 'A Tractate on Japanese Aesthetics'에서 썼습니다. 인생은 일시적입니다.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날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요. 그게 인생에서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이죠. 벚꽃은 무상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이것은 항상 적용되어 왔습니다. 코로나는 우리의 집에 덧없음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서 축하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일 수도 있으나, 우리는 미지를 견디는 법을 배울 수 있고, 또한 삶의 불확실성 속에 내제 된 아름다움을 엿볼 수도 있겠습니다.

글쓴이 에릭 와이너는 'The Socrates Express: In Search of Life Lessons from Dead Philosophers'의 저자이다.


글을 전체적으로 쭉 읽으면서 퍼블리의 윤성원님이 요약을 정말 잘하셨다고 느꼈다. 같은 글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힘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원글은 주로 코로나 시대에 어떤 자세로 극복해야 하느냐지만, 윤성원님은 불확실성이라는 핵심을 집어내서 사실상 어떤 곳에도 적용하고 공감할 수 있게 뽑아낸 것 같다.

결국 코로나든 취업이든 이직이든 뭐든 현실을 빠르게 직시하는게 시작인 것 같다. 그 현실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내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한 것 같다.

기사 중간에 몇 개의 연관 글 링크가 있었는데 개별적으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주제랑 내용이 좋아보여서 하나씩 좀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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