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de 2주 차

김동하·2020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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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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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어학원을 다녔을 때 복도 벽에 한 문구가 있었다.

학원 밖 사람들은 한 가지 언어밖에 모릅니다.

당시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 하나조차 시킬 줄 몰라 쩔쩔맸던 나는 어렵사리 주문한 샌드위치를 들고 다른 나라 친구들과 점심을 먹곤 했다. 손짓 발짓해가며 서로 말을 주고받았는데 틀린 문장, 어눌한 억양으로 버벅거리며 말을 뱉고 있는 걸 보자니 영어가 뭐라고 우리를 작게 만들었다. 그래도 각자의 나라에선 각자의 삶이 있는 어엿한 시민인데 여기선 식비를 아끼기 위해 조금만 싸온 점심 도시락처럼 일 인분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아 갈수록 풀이 죽었다. 영어가 늘지 않아 기죽어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하나의 언어를 더 안다는 건 더 넓은 세계를 누리기 위한 티켓'이라고 말했다. 그 티켓은 값지기에 쉽게 얻을 수 없다며 우리를 다독였다.

위코드 부트캠프에서 2주 차를 맞이했다. 코딩이 뭐라고 자꾸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매일 막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다. 일주일 치 빨래가 쌓여있다. 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으니 내가 아는 건 무엇일까. 그간 코드를 치며 보냈던 시간들이 허무하기도 하다. 오늘은 터미널 세션이 있었는데 간단한 명령어를 잊어 한참을 헤맸다. 분명 여러 번 봤던 것들인데, 생각도 다 나는데 커서는 깜빡이기만 하고 있으니 참 야속하다. '할 수 있다.'에서 '할 수 있을까?'로 마침표가 물음표로 변할 때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던 그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html, css, js 레플릿 세션이 끝나고 인스타그램 클론 코딩을 했다. js로 기능 구현까지 하며 처음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아직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단 하루도 긴장을 풀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사전 스터디를 시작하면서부터 혹시나 내가 제일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긴장을 하며 공부했다. 첫날부터 주어지는 레플릿 과제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가 즉각적으로 드러나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 촉각을 곤두세우고 문제를 풀어갔다. 내 페이스대로 가자 마음먹었건만 벌써 저만큼 앞서가 있는 동기를 보면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했다.

살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는데 새벽이면 매일 교보문고에 들어가 다른 사람이 쓴 책들을 검색했던 날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나와 비슷한 필력(내 기준에서)에서 나온 책들을 보며 '배가 아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배가 아프다'라는 표현 말고는 대체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분명 나보다 못 쓴 것 같은데 순위권에서 내려오지 않던 그 책들을 새벽마다 검색하며 밤을 새웠다. 악에 가득 차 있었다. 남는 건 없었다. 그래서 글을 더 잘 쓰게 된 것도 아니었고 냉정한 자기 객관화로 나의 문제점을 파악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만 부식시켰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 그때를 떠올리면 고통스러운 감정만 남아있다. 그렇게 호되게 당하고도 지금, 고작 레플릿 몇 문제를 더 풀고 인스타그램을 얼마나 완성시켰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니 이게 한국 교육의 잔재인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백엔드를 할지 프론트 엔드를 할지 고민하다 뒤늦게 프론트 엔드를 한 동기가 있다. 늦게 시작한 탓에 다른 동기에 비해 늦었고 내게 종종 질문을 했고 그럴 때면 초조해 보이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느껴 만질 뿐 내 코가 석자라 신경 쓰지 못했다.

오늘은 바쁜 날이었다. 프론트엔드는 이제 '리액트'를 슬슬 준비해야 했고 백엔드는 갓 '장고'에 입성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러 수업을 끝내고 정신없이 인스타그램 마무리를 위해 자리를 앉았다. 누군가에게 css에 대해 설명하던 동기는 지나가듯 말했다. '아, 나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 뿌듯하네.' 어딘가 불안해 보이던 그 동기가 밝게 웃는 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찡했다. 그래도 밖에선 어엿한 사회인이었을 텐데 그깟 코딩 한 두 줄이 뭐라고 사람을 작게 만드나. 이게 뭐라고 왜 우린 서로의 모니터를 신경 쓰나.

요 몇 년 글을 질리도록 썼던 것 같다. 돈도 되지 않는 글 이제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velog를 쓸 때 가장 행복하다. 글이란 내게 다른 세계를 누릴 수 있게 하는 티켓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글로 쓰며 다른 세계를 기웃거린다. 이번엔 코딩이란 티켓을 가지기 위해 매일 밤 책상에 앉아 코드를 친다. 댓글을 입력하면 댓글 창에 댓글이 달리는 로직의 코드는 사람마다 다르다. 화면으로 보는 기능은 똑같은데 그것을 구현하는 코드는 같을 수 없는 것이다. 내 세계가 있고 내 호흡이 있다. 자꾸 잊는다. 같아지고 싶지 않아 글을 썼고 개발을 공부하고 있다. Hello World. 매일이 무척 기대된다.

먹던 게 글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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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론트엔드 개발

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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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9일

동하님의 이야기가 왠지 엄청 위로 되네요 🤧 위코드 3개월 응원합니다! 👏🏻👏🏻👏🏻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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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

갓 동 하

1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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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

halo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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