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 2022년을 돌아보며!

장동균·2023년 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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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개발자 커리어의 첫 해였던 2022년을 돌아보고자 한다.


카카오 합격

꿈만 같았던 회사에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하기 몇 달전 kbs1에서 카카오를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함께 비판했던 내 자신이 미웠다.)

흔히 말하는 네카라쿠배는 나의 실력으로 절대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회사들이었다. 2022년 하반기, 30곳이 넘는 회사에서 서류 탈락을 경험한 탓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첫 합격이 카카오라는 사실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스터디카페에서 코딩테스트 공부를 하다가 합격 메일을 받았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3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C프로그래밍 수업에서 교수님께들은 "영문학과 학생치고 잘했네"라는 말을 녹음해서, 힘들 때마다 듣던 학생은 남들이 꽤나 부러워할만한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한 문장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교수님께 인정을 받아서가 아니라, "영문학과 학생치고"라는 단어가 거슬려서였다.

무언가 보여주고 싶었다. 영문학과 학생이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컴퓨터공학 전공이라는 벽 뒤에 숨은 그들에게 당당하게 말해주고 보여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비웃을 수 있겠지만, 내가 그들에게 보여준 방식이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오픈채팅과 에브리타임 채팅을 통해 그들의 과제를 돕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그들이 감사의 의미로 주는 그 어떠한 것도 받지 않았으며, 가끔 받게 되는 족보는 그대로 에브리타임에 올려버렸다.

내 행동은 선의가 아니었다. 내가 나를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그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고, 이를 통해 그들의 질문이 해결될 때면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마치 그들을 내가 이긴 것 같았다. 이러한 행동이 바보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바보같은 행동이 나를 버티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나의 전공 때문에 내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그 증명의 끝이 카카오 합격이었다. 카카오에 입사하면서 나는 더이상 내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됐다.


프로젝트의 시작

가장 처음 배정 받은 프로젝트가 1주일 정도 후에 사라진다는 사실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급하게 QA 직전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솔직히 카카오라는 회사에 대한 로망이 정말 컸다. 엄청난 실력을 가진 시니어 개발자들이 즐비하고, 체계적이면서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로직들이 내부 코드에 있을 것이라 상상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촉박한 일정에 쫓겨 정해놓은 체계들은 무너졌고, 각자 자신의 일을 하느라 정신 없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마치 코드를 찍어내는 기계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1. 지라 이슈 등록
  2. 해결

이 과정의 반복은 개발 자체의 흥미를 점점 떨어트렸다. 무언가 주도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내가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내 프로젝트에 반영되는 경험들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개발이었다.


Yapp 20기

이러한 니즈로 나는 Yapp이라는 연합동아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Yapp에 지원한 이유는 딱 한가지.

"내가 하고 싶은 주제로 재미있는 개발을 하고 싶다!."

그런데... 팀이 만들어지고 일정 관리 플랫폼이라는 큰 틀이 정해지면서 나는 크게 좌절했다.

계획을 잘 짜지 않는 나에게는 정말 재미 없는 주제였다. 재미있는 개발을 하고자 왔는데, 또 재미없는 개발을 하게 될 나의 미래를 상상하며 절망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보다 이 프로젝트의 과정을 즐겼다.

재미를 만드는, 개발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소는 프로젝트의 주제가 아니었다.

프로젝트에 대한 오너십이 재미를 만든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사실을 정말 많이 깨달았다.


나의 가치관을 바꾼 사람과의 만남

Yapp 프로젝트가 반환점을 돈 시점에 나는 나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덕업일치"

나는 이 단어가 개발자의 가장 중요한 마인드라고 생각했다. 개발이 어느 때는 일이면서, 또 어느 때는 취미여야 개발자로서 성장하고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에게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처음 해봤다. 수영복도 처음 사보고, 스키도 처음 타보고, 서울 곳곳의 명소들도 처음 가보았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일과 취미는 분리되어갔다. 솔직히 처음에는 불안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거의 모든 시간을 개발에 쓰다가, 갑자기 다른 것들을 하려니 어색하면서 불안하기도 했다.

이런 불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점점 나는 확신을 가졌고 또 단단해지고 있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개발이 나에게 무의미해지는 순간, 그 순간에 내 자신도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가진 다른 취미, 생각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나에게 선물해준 그 사람이 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앞으로 수십년을 더 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이 나의 모든 것이 되었을 때, 오히려 더 쉽게 무너지게 된다. 개발에 대한 부담을 조금 놓음으로써 나는 개발을 더 즐기고 행복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수십년 이 일을 더 할 자신이 생겼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때보다 단단해졌다.


프로젝트의 안정

운이 좋게도 변화한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팀원, 조직 등이 변경되면서 잠시 혼돈의 시기가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조직의 변경을 통해 프로젝트의 전직군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주기적으로 생겼다. 이 시간에 더 적극적으로 나의 의견을 어필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 회의가 구성원들의 오너십을 키우는 가장 큰 순간이 되지 않았나 싶다. 모든 직군이 모여 프로젝트의 지표를 확인하고 개선할 점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내가 꿈꾸던 카카오의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프로젝트의 인원이 줄었다. 사실 우리 프로젝트는 그 규모에 비해 과한 인원이 투입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아주 작은 업무도 나누어서해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했다. 인원이 줄면서 훨씬 많은 작업 기회들이 생겼고 이를 통해 주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앞으로

나는 카카오를 퇴사하고도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공부와 증명이 필요하다.
또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순간 나는 퇴사할 계획이다. 그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량적인 지표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내 자신이 그 순간을 알아챌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더 많이 공부해야한다. 요즘 특히 공부에 대한 우선순위를 잘 정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 해야하는 것들을 미루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2023년의 목표

  • 더 많은 취미를 가져보기
  • 일정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기고 처리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다. (툴에 태해서도 고민이 필요)
  • iOS와 안드 기본 개발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 연합동아리를 한번 더 해보자! 상반기는 너무 바쁘니 하반기에 지원하기로. 대신 절대 FE로 지원하지는 않기. 클라 혹은 node를 통한 백엔드 개발로 지원해보기 (클라를 한다면 반드시 웹뷰를 하는 팀으로!!!)
  • 인프라에 대한 이해. 배포 웹서버 구축 정도는 할 수 있는 FE가 되어야 겠다. (사내 인프라도 학습해야겠지만 너무 종속되지는 말기)

마무리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운이 따랐던 한 해였다. 내 자신을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지쳐갈 때 꿈꾸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개발에 흥미를 잃어갈 때 오너십을 가질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 볼 수 있었다. 또 많은 업무와 개인적인 일들로 지쳐갈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그 순간들을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성장하고 싶다. 성장해서 나에게 힘이 돼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보답하고 싶다. 2022년 너무 부족한 나라는 사람과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가장 전하고 싶다. 2023년에는 내가 그들에게 보답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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