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블라인드에 뻘글 하나를 게시했다. 평소 몇 지인들과 웃자고한 이야기들과 가짜사나이의 밈을 컴공버전으로 가공해서 블라인드에 가짜개발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썻었다. 그리고 아래의 캡쳐는 그 글의 전문이다.
처음 블라인드에서 생각보다 재밌다는 반응의 댓글이 많았다. 겸사겸사 관리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수나 늘릴까 싶어서 페이지에 공유하고 다음날 확인 해 본 결과는 놀라웠다. 원본 글은 여기저기 많은 커뮤니티에 공유되어있었고, 생기가 없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첫째로 실감한것은 대단한 가짜사나이 시리즈의 인기다. 글을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짜사나이를 응용한 밈을 이해하고 있다는게 신기했다.
두번째로 실감한 것은 개발자 드립에 공감할 만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 실제로 내가 대학원을 다닐 쯤에는, 모교의 소프트웨어학과는 복전 수강자의 수가 본래 학과 학생 수와 맞먹는 현상이 항상 일어났다.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밈을 이해할 수준의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체감했다.
내가 제작한 컨텐츠가 이렇게 공유된 적은 처음이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친구들이 전달해주거나 내가 발견한 사이트들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확실히 나이가 어린 학생이나 20~30대 개발자가 많은 커뮤니티들에서는 있는 그대로 유머로 받아들이고 재미있어하는 반응이 많았다.
다만 사람들의 연령이나 직업이 다양한 커뮤니티들에선 부정적인 반응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는 가짜사나이 시리즈를 잘 몰라서 글을 텍스트대로 진지하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을 제외하고 글을 작성한 의도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도 좀 있었다. 그 댓글들이 주로 하는 말을 종합해서 다음과 같은 의견들로 요약할 수 있었다. (물론 그냥 재미없다고 욕하는 반응은 제외했다)
다른 반응도 있었지만, 위의 두 반응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이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한 분야를 전공자들만의 신성 불가침의 영역으로 포장하는 걸로 오해한 것 같다. 아마 비전공자라는 단어의 사용이 큰 어그로를 끈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럼 내가 저런 글을 작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친구들이랑 떠오른 (내 생각엔) 기가막힌 가짜사나이 패러디 밈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뻘스럽게 터진 아이디어가 너무 공대스럽지만 웃겨서 공유하고 싶었다. 물론 찐스럽다는 느낌을 스스로도 받았기 때문에 익명에 기반한 블라인드에 글을 게시했다..
두 번째로, 다짜고짜 본인의 전공이나 본업을 모두 때려치고 '나도 학원에서 코딩이나 배워볼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는 걸 블랙코미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과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부분이 잘 전달되지 않아서 오해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자주 등장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언가 내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
일단 나는 프로그래밍 자체는 일상생활에서 편의를 개선해주는 부분이 많고, 또한 지적 유희로도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에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보기를 권장한다. 게다가 나는 항상 '프로그래밍은 재능빨이고, 개발자는 실력이 좋다면 금방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전공/학력으로 사람을 차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가짜개발자라는 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싶었다.
생각한 것과는 달리, 개발자라는 직업이
현 직장과 전공을 다 때려치고 달려들 정도로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과 함께 추가적으로 꺼무위키의 취업/SW 문서를 가볍게 읽어보는 것도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상당부분 겹친다.
흔히 처음 개발자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은 소위 네카라쿠같은 IT 서비스 대기업이나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개발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로운 문화, 좋은 워라벨, 노마드 같은 이미지 등 이유는 다양하다. 문제는 그 정도의 회사를 다니며 대우받는 개발자는 생각보다 소수라는 것. 아무리 IT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려서 상시채용공고를 올려댄다고 해도, 아무나 뽑아가지는 않는다. 그 회사에서 채용할만한 수준인 사람들만이 사원수를 채울 수 있다. 단기간 사교육에 의존한 주입식 교육만으로 네임드 회사에 취업하기란 재능러가 아닌 이상 쉽지 않다.
물론 요즘은 개발자를 원하는 기업이 많다. 웹사이트나 어플하나 없는 회사는 드무니까. 그래서 직장을 가지는 것 자체는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아마 이게 "나도 코딩 배워서 취업해볼까"라는 말이 등장한 원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문제는 많은 회사에 갈 수 있는 만큼 개발자의 처우도 극단적인 분포를 가진다. 같은 회사여도 개인별로 엄청난 연봉 차이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 당장 1~3년차의 주니어들만 비교하더라도 연봉이 2~3배가 차이가 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평균은 높지만 중위값은 낮은 피라미드 형의 연봉 분포를 보인다.
문제는 연봉이 낮은 중소기업들이 더 나아가 워라벨도 더 안좋고, 처우 외적인 복지나 문화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가끔 사용하는 기술이 이직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고인 기술스텍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준비되지않은 개발자로의 취업은 연봉, 워라벨, 기술 커리어의 삼박자를 모두 놓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경력 이직은 전 회사의 기술 커리어를 고려하고, 연봉협상시에도 전 직장의 연봉이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스타트가 꼬이면 복구가 매우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잘 준비해서 좋은 시작을 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개발자가 보통 정년을 보장받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서두룰 필요가 있다.
공무원 시험의 경우 한 번 합격하고 나서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않아도 일단 정년과 최소한의 승진은 보장된다. 이와 비교하면 개발자들은 한 번 취업을 한다고 끝나는 경우는 많지않다. 주니어부터 기술 커리어를 쌓고, 연봉협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빠르게 쌓아나가야 한다. 물론 1년이라도 더 빨리 현업에 뛰어드는 것도 좋은 성장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커리어를 쌓는지 그리고 얼마나 제품에 기여하고 좋은 보상을 받았는지가 이후의 커리어 패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충분한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내가 갈 회사에 대한 조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방식의 직업을 가지는 것이 본인에게 맞는지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발자라는 직업을 좋아한다. 이만큼 마음편하고 자유롭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도 드물다고 생각하고, 일과 나의 지적 유희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한것에 대해 보상받을 길도 많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개발을 한 번 배워보라고 전도하고 싶다. 다만, 처음에는 남는 시간을 투자해서 가볍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기초부터 조금씩 공부해보며 개발이 본인에게 잘 맞는지 확인했으면 좋겠다. 이 분야에 재능이있거나 최소한 재미라도 느낄때 본인의 업으로 삼는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공자는 위의 과정을 이미 학교를 다니며 겪기 때문에 그나마 나은 편이다. 다만 다른 전공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개발 공부에 도전할 때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도 없이 몸을 던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본래 가짜사나이 글에서는 '비전공자'라는 단어를 글의 서두에 강조한 이유가 크다. 당장 '나는 개발자를 할꺼야'라는 생각으로 학원부터 등록하지 말고, 다음 두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린 후에 본격적인 시도를 해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뻘글 끝
안녕하세요. 이 화제의 글 주인공을 이제 찾았네요 ^^ 저는 페북에서 불편함을 토로한 모 씨의 글에 댓글로 남겨주신 거 보고 찾아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즘 일에 치이고 있던 시절에 신선하게 재밌었습니다 ^^ 저는 비전공자이고 우연치 않게 이쪽 바닥에 들어왔고요 : )
도대체 이 재밌는 걸 왜 그리 불편하다고들 하는지 참 신기합니다 ㅎㅎ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ㅎㅎ
원작자가 여기 계셨네요.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이글이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저 당사자가 본인이기 때문이지요.
프로그래머 라는 직업이 좋은 이유는 공부를 계속해야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재능없어도 진짜 노력과 근성으로 내 몫을 해낼수 있는 직업이지요.
개발자의 특권의식이 아닌 본인 노력의 의한 정당한 자부심입니다.
절대 현업의 전공자는 비전공자를 비난하지 않지요. 그냥 자격지심일 뿐이죠.
우린 코드라는 결과와 합리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상대를 존중하는걸 좋은 자세라고 배웁니다.
기술은 누구나 배우는데 "자세"는 인성 문제로 귀결되지요.
불편하면 그냥 이쪽으로 안왔으면해요. 같은 동료로 만날생각하니 끔찍하네요.
재미있는글 너무 고마워요. 잘보고갑니다.
안녕하세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는데요..
저도 진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혹시 관련해서 블라인드 쪽지나 다른 방식으로 궁금한 점 여쭤봐도 될까요?
아 진짜 재미있게 보고 빵 터졌습니다. 밈이나 요즘 유행에 익숙하지 않은 관점에서는 비판이 나올수는 있지요. 근데 저런(?)식의 비판을 위장한 비난은....정곡이 찔린 것에서 나온 비난 아닐까요...
ㅋㅋㄲㅋㄲㅋㄱ엌ㅋㅋㄱ
니코드열지마냄새낰ㅋㅋㅋ
내 신입때ㅋㅋㅋㅋ 모습이닭ㅋㅋㅋ
간만에 웃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ㅎㅎ
0x04ㅋㄲㅋㅋ ㄱㅋ
스택오버플로우 너무 좋은 패널틴데요ㅋㅋㅋㅋ
아니 말이야 바른말이지.. 다른데는 몰라도 네이버지식인이나 카톡단톡방 이라면.. 질문 띡 올리고 답기다리는버릇은 뚜까패서라도 고쳐줘야되는거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
나른한 주말 아침 졸음을 깨워주는 재미있는 글입니다.
위트가 대단하세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모든 대답은 ACK로 통일한다! 에서 감명을 크게 받았습니다.
앞으로 의 일상에 적용해보아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개발자를 한다면 어떤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정말 결국엔 이것에 대답할 수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것 같아요. 비전공 입문자로써, 프로그래밍은 정말 끝없이 공부해야하고, 공부를 해도 자꾸 뒤쳐지는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많은데, 목표의식이 없으면 내가 이걸 왜하고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것 같습니다.
이쪽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다시봐도 재미있는 드립이었네요.
원본인 가짜사나이가 다음주부터 시즌 2로 돌아오는데 작성자님의 가짜개발자 시즌 2 기대하겠습니다 ㅋㅋ
컨텐츠 꼭 나왔으면... 본방사수합니다 ㅋㅋㅋ
부정적인건 어디가나 있는거고...
실제 사례에서 본 분은 본인 일에 대한 자부심 없이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좋은 글^^ 저도 비전공자로 개발쪽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 중...아무래도 전공이 아니다보니 확실히 기본 마인드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히 느끼죠(법대와 비법대도 리걸마인드 차이가 심한 것처럼).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오더도 조금 다르고 3년차 정도부터는 기획이나 PMO쪽으로 돌리려는 경향도 많았죠. 지금은 개발반 관리반으로 적당히 타협한? 월급쟁이로 살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스킬발전이 없어서...하여간 개발은 재미있는 일이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개발쪽 일을 하게 된다면, 전공도 전산쪽을 하고 싶네요. 가짜 개발자 컨셉 유쾌하게 잘 봤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멋지네요! 저도 개발 공부하는 중인데, https://quantpro.co.kr/ 해당 사이트 퀀트 내용 어떤지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짜개발자 재밌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