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9일부로 SW사관학교 정글 7기의 모든 과정이 끝났다. 2023년 8월 시작부터 12월 끝까지 하반기 거의 대부분을 대전 카이스트 문지 캠퍼스에서 보낸 것이다.
판타지 소설은 거의 읽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단어가 하나 있다.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에 등장하는 개념인 '마법의 가을'이 그것이다.
마력의 시간이라는 것은 모든 장소에 각각 다르게 일어나. 분명 가을 어느 시기인 것은 확실해. 그런데 우연히 그 마력의 시간에 접어든 장소에 사람이 들어가면 그에게는 온갖 희귀한 일이 일어나지. 그 짧은 가을 동안, 낙엽이 대지를 덮기 시작하고 마침내 첫눈이 오게 될 때까지, 그 사람은 평생에 기억될 단 한 번의 가을을 가지게 되지. 때론 모를 수도 있어. 그저 그 가을에 일어났던 일만 기억하다가 몇 년 후에나, 혹은 늙어버렸을 때 겨우 알아차리게 되지. 하지만 자신이 마력의 시간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낙엽이 대지를 덮을 때부터 첫눈이 오기까지 놀라운 일을 이룩할 수 있지.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느끼기엔 2023년의 가을과 겨울은 정말 순식간에 마법처럼 지나갔다. 이 회고록을 쓰고 있는 2024년 1월의 나는 아직까지도 2023년이 끝났다는 실감이 들지 않는다. 인생에서 정글이 통째로 분리되어 나간듯한 신기한 기분이다.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정글에서 얻은 경험을 크게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이 4년에 걸쳐서 배우는 과정의 일부를 4달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압축적으로 공부하는 경험은 정말 귀한 것이었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아침 일찍 기숙사를 나와 밤 늦게까지 공부한 경험은 정말 어디가서 돈주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돈 주고 들어온게 맞긴 하지만..)
CS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 라는 일종의 감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정글에서 가장 값지다고 생각한 체험이 바로 이 팀프로젝트 경험이다. 5주 남짓한 기간동안 5명의 팀원이 모여서 그럴듯한 팀프로젝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또 얼마나 보람있는지를 직접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5명이 모여서 하는 프로젝트는 단순히 1명이 5번 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와 동시에 1명이 5번 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경써야 하고 수고로운 부분이 많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코딩 규칙, 협업 툴, 의견 공유 방식, 의견 전달 방식 등등을 사전에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프로젝트가 어느샌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라는 것 역시 알았다. 심지어 우리 팀은 팀장이었던 친구의 리더십이 탁월했던 덕분에 사전에 이러한 부분들을 확실히 정해두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을 많이 만났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팀이었던 사람들 모두가 너무 좋고 팀 활동에 참여를 열심히 해서 내가 구멍이 아니었나 싶은 의심에 시달리는 중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프로젝트 설치없이 즐기는 레크리에이션
Recreation without Installation, RecRe!
아직까지도 5주만에 이러한 프로젝트를 쌓아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조는 나만의 무기 발표를 '구현한 부분만 보여주는' 형식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이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더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였다. 왜냐하면 발표회장에서 관객들을 직접 레크리에이션에 참여시켜서, 즉 우리보다 훨씬 경력도 실력도 앞서는 개발자들이 우리가 만든 웹서비스를 체험해야 하는 발표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여기는 완성도가 부족하니까 발표 때 생략하자'고 넘기는 꼼수를 거의 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예 안 쓴 것은 또 아니다.)
결코 편하진 않았지만 언제 살면서 이런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을까 뿌듯한 감정이 밀려오는 5주였다.

<정글을 마치고 집에 와서 만든 프라모델 건담 캘리번>
건프라 조립을 5개월간 참았다.
크래프톤 정글은 좀 다르겠지만 카이스트 정글은 3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일시불로!) 참가비로 내야하며, 들어가고 나서도 내가 배워야 할 것을 알아서 찾아서 배워야 하고, 생활습관도 본인이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태해질 수 있는 곳이다. (밤낮이 바뀌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나같은 경우는 정글 중반까지는 5km 러닝을 일주일에 3번씩 꼬박꼬박 달린 덕분에 오히려 과정 시작보다 살이 빠졌었으나, 나만무 과정 중 날이 지나치게 추워지기도 했고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슬슬 빼먹었더니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그래도 이 과정을 참여한 것에 일말의 후회가 있느냐 물으면 자신있게 없다고 할 수 있다. 주변 사람에게도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5개월이었다.
정글때 풀ㄹ던 알고리즘 문제 다시 풀다가 발견ㅋㅋㅋㅋ5개월 동안 고생많았어!!!(밤낮 바뀐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