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들 제발 좀 너그러워집시다.

엽토군·2022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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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쓸 생각은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니까요. 특별히 누굴 저격하는 글도 아닙니다 워낙 비슷한 논의들이 쿨타임만 차면 돌거든요 - 마치 매일 올라오는 자바스크립트 프레임워크처럼, 자기가 사상 처음 해낸 생각이라는 것처럼.


코딩하시는 분들, 컴퓨팅 엔지니어링 하시는 분들, 우리 제발 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일합시다.

확실히 우리는 기계와 싸우는 게 일입니다. 오류가 안 나야 하고, 항상 기능이 작동하도록 보장해야 하고, 그래서 신경 쓰고 헤매며 화내야 할 게 많은 사람들인 건 맞아요. 근데 우리가 싸울 대상은 기계이지 사람은 아니에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오만 주제로 논할 수 있겠습니다만 딱 한 가지 차원만 언급할께요. 다른 사람에게 가혹하게 구는 거, 다 결국 자기한테 돌아와요. 그러니 성질을 부리고 싶으면 기계에다 대고 부리세요. 굳이 따지자면 그게 맞아요. 지나고 보면 성질을 안 부리는 게 제일이더랍니다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로켓 사이언스가 아니라는 점도 종종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아무래도 우리 대다수는 우리보다 대단한 사람들이 수학 연구하고 펀칭카드 코딩하고 해저케이블 깔아서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걷는 입장이란 말이죠. 왜 좀 겸손해지지 못할까요? 저는 웹개발을 배우면 배울수록 웹개발을 못 하겠다는 양심이 나는데요. ("이거 하나 docker run하자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탄소발자국이 배출되며 얼마나 많은 기여자들의 무료 노동을 빌어 쓰게 되는 걸까?")

비개발 직군 입장도 좀 이해하려고 해 주세요. 본인은 처음부터 지금 가진 스킬셋 다 알았고 HTTP 통신 다 이해했나요? 쿠키가 뭔지 네이버와 인터넷의 차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답답하세요?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일을 주고, 당신이 한 일을 활용해서 돈을 벌어오고, 당신의 제품을 사용하고 당신을 고용하고 해고해요. 그 사람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은 개발 직군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미 답답해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이모지라도 붙이고 쿠션어라도 넣는 건가 보다 하고 대충 넘어가주면 안 돼요? 그걸 갖고 무안을 주면 도대체 누가 무엇을 얻나요?; (← 일하는데 아무 쓸데없는 땀 이모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늘날 한국의 (특히 2030 남자) 개발자 여러분 최소한의 사회 분위기 눈치는 좀 챙깁시다. 비개발 직군 전문가들이, 개발자랍시고 거들먹거리며 온갖 유형 무형의 특별 대우 받아가는 개발자님들을, 얼마나 눈꼴시려워하는지 아세요? 개발자들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인 줄을 그들도 알기에, 어떡하면 저들이 들어줄 수 있는 요청을 보낼까 머리 싸매고 있는 게 여러분 회사의 비개발 직군 동료들이에요. 그것만도 힘 빠지는 일인데, 개발자들이 속으로 ‘왜 쟤네들은 메시지를 이따위로 보낼까’ 하고 씹고 있다는 것마저 알면, 같이 일할 맘이 나겠어요?

손자가 이르기를 좋은 장수는 용장도 있고 지장도 있겠으나 오직 덕장이 그 중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용장이란 전투의 기본 소양인 용맹함을 갖춘 장수이고, 지장이란 거기에 전투에 관한 여러 지식과 경험을 더한 장수이고, 덕장은 거기에 더해 전투에 관계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장수를 뜻해요. 전략과 전술을 논하기 위해 그 오랜 세월 참고돼 온 손자지만, 오늘날 개발 직군에서만큼은 왜인지 이런 교훈이 전혀 씨알도 안 먹힙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을 텐데요. 덕장 해서 뭐 하냐, 난 그냥 지장 용장까지만 할 거다 하시는 거라면, 뭐 더 드릴 말씀은 없지요만.

개발자(開発者)가 되기 전에 자(者, 사람)가 됩시다. 다들 인간됨의 그릇을 좀 키우려고 신경씁시다. 불필요한 분노, 불필요한 엄격성,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지불 요구 좀 그만하고 남들 하는 만큼만 평범하게 일합시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굳이 안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요? 이거 참 말해놓고 보니 너무 새삼스러워서 낯이 뜨겁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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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차 PHP 개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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