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ides 'Stay Hungry. Stay Foolish.' #1 - Connecting Dots

ephist·2023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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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돌아봄으로써만 점들을 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떻게든 미래에 점들이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 직감, 운명, 인생, 카르마, 뭐든지 간에. 이런 접근방식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며, 제 인생에서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Details

아마 한 번 쯤은 Steve Jobs의 Stanford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영상을 봤던 것 같은데, 최근에 우연히 다시 보니 그 땐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들이 생기더군요. 비록 영어가 짧아 모든 뉘앙스를 이해하는 데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야했지만 꼭 한 번 (아니 사실 최소 세 번 이상) 다시 제대로 들어보기를 강력히 추천 드립니다. [연설 영상], [연설 음성+자막]

아래는 연설문 전문과 번역문, 그리고 일부 제 생각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만약 제 코멘트가 방해가 되신다면 여기에서 영어 전문을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세 번에 나눠서 올릴 예정입니다.

Prologue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오늘 여러분과 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 중 하나의 졸업식에 참석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이것이 대학 졸업에 가장 가까워진 순간입니다. 오늘 저는 제 인생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별 것 아닙니다. 그냥 세 가지 이야기입니다.

Part 1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 번째 이야기는 '점들을 잇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대학을 처음 6개월 후에 중퇴했지만, 실제로 그만두기 전에 다시 18개월 가량 더 있었습니다. 그럼 왜 중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of my life.

이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됐습니다. 제 생모는 젊고 미혼의 대학원생이었고,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저가 대학 졸업자에게 입양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느꼈기 때문에, 변호사와 그의 아내에게 태어날 때부터 입양될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 딸이 더 필요하다고 결정한 것을 제외하고 말이죠. 그래서 대기 명단에 있던 제 양부모님은 밤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뜻밖의 남아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를 원하십니까?' 그들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제 생모는 제 양모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고, 양부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최종 입양 서류에 서명을 거부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제 양부모님이 나중에 대학에 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을 때 비로소 그녀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서명을 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unexpected baby boy' 라는 말이 찡하네요.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audience laughter).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그리고 17년 후에는 대학에 가게 되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스탠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로 제 working-class 계층의 양부모님의 모든 저축금이 제 등록금에 쓰이고 있었습니다. 6개월이 지난 후, 저는 그곳에서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대학이 어떻게 그것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부모님이 평생 동안 저축해온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퇴하기로 결정하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상당히 무서웠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한 가장 좋은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청중들 웃음). 중퇴하자마자 저는 저를 흥미롭게 하지 않는 필수 수업을 그만두고, 흥미로운 것 같은 수업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Working-class'는 '노동계급', '블루칼라' 등으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번역본이 더 어색해 보여 그대로 두었습니다.

졸업식 연설에서 '대학교 중퇴를 한 것이 내가 한 가장 좋은 결정 중 하나였다'고 말하는 ironical 한 멘트가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모든 것이 낭만적이진 않았습니다. 기숙사 방이 없어서 친구들 방 바닥에서 잤고, 콜라 병을 반납해 5센트 보증금을 받아 음식을 샀습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밤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7마일을 걸어,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서 주 1회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하게 된 많은 것들이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을만큼 귀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직접 연설을 들어보시면 'I loved it.' 이란 멘트에 진심과 추억이 뚝뚝 묻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s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calligraphy 교육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캠퍼스 곳곳의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에 붙은 라벨은 아름답게 손으로 쓴 calligraphy였습니다. 중퇴를 하고 일반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이 기술을 배우기 위해 calligraphy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 다양한 글자 조합 간의 공간을 변화시키는 방법, 훌륭한 서체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과학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으로 미묘했고, 저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calligraphy'는 '서예', '손글씨' 등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그냥 두는 게 훨씬 자연스러워 보여 따로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Standford 졸업식 연설에서 'calligraphy' 얘기가 나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Steve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Steve는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10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audience laughter & applause).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 10 years later.

이 모든 것이 제 인생에서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10년 후, 우리가 첫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할 때, 그 모든 것이 저에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맥에 그 모든 것을 디자인했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갖춘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대학에서 그 calligraphy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맥은 다양한 글꼴이나 비례 간격의 폰트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윈도우가 맥을 그대로 복사했기 때문에, 아마 다른 개인용 컴퓨터들도 그런 글꼴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청중들의 웃음과 박수) 만약 제가 중퇴하지 않았다면, 이 calligraphy 수업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지금처럼 멋진 서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대학 시절에는 미래를 예측하며 점을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 뒤 돌아보니 모든 것이 명확했습니다.

처음 세상에 PC를 내보이는 순간에도 서체와 같은 detail한 부분까지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Steve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iPhone UI가 그렇게까지 '인간 친화적'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이란 자부심 가득한 멘트에서 청중들의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웃음을 유발하려는 목적으로만 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Mac이 없었다면 멋진 서체들을 PC에서 볼 날이 많이 미뤄졌을 수도 있겠다'라고 저 역시 생각하고, Steve도 그 얘기를 하고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다시 말하지만,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뒤돌아봄으로써만 점들을 이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떻게든 미래에 점들이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믿어야 합니다 — 직감, 운명, 인생, 카르마, 뭐든지 간에. 이런 접근방식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며, 제 인생에서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Stay Hungry, Stay Foolish.' 보다 저는 이 부분에서 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나니, 프랙탈(fractal)의 작은 부분처럼 이번 연설에서 Steve가 앞서 한 얘기들(dots)도 빠짐없이 이어지는 게 (connects) 머릿속에 그려지더군요.

Part 2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References

profile
, a Lea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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