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달려온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나 자신을 책임지는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세월 겪었던 숱한 위기들은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여전히 새로운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은 결국 오늘의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기에, 막막한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줄 확고한 삶의 중심이 절실한 때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간의 경험으로 얻은 지혜들을 차분히 기록해 두려 한다. 이 작은 기록들이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 이 글에서 서술하는 내용은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이라는 점을 명시한다 🔉
- 나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 글을 작성한다.
-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서
-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리해보기 위해서
이 글은 타인을 향한 설득이 아닌, 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자기지향적인 기록이다.
"세상이 변했다. "
대학 시절 소셜 네트워킹 자리에서 선배님께서 후배들에게 하셨던 말이다.
당시 선배님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의 임원이셨다.
"우리 때는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취업이 보장됐어. 좋은 직장에서 마음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애 키우면서 월급 꾸준히 저축하면 대출 땡겨서 내 집도 마련할 수 있었는데...
이 공식이 더이상 맞지 않아. 그래서 나도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모르겠어. "
70~80년대 대학을 다니던 베이비부머 세대 (Baby-boomer Generation)들은 위와 같은 패턴만 따라가면, 무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대학이 직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고 그 월급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도 없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고, 바뀌어 가는 세상 속에서 젊은이들이 성공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집을 마련하는 방법도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10년 전에 누가 감히 먹방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그 누가 게임하는 영상을 찍어 올리는 일이 돈이 되는 직업이라고 상상했겠는가?
일반적인 어른들의 눈에 이들은 그저 공부 안 하는 골칫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세상이 바뀌어가는 속도가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속도를 아득히 추월하여서 발생하는 괴리감이다.
과연 젊은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까?
사회 변동이 극히 적었던 원시 및 농경 사회에서 자녀의 삶은 부모가 걸어간 궤적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어른의 경험은 곧 생존을 위한 절대적인 지혜였으며, 마을의 최고령자는 미지의 고난을 이미 극복해 낸 경외의 대상이자 선지자였다.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는 바로 이 '경험의 유효성'에서 비롯되어 현세대까지 계승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시대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현세대는 더 이상 이전 세대가 닦아놓은 길을 따르지 않으며, 그들의 인생 패턴 또한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즉, 앞선 세대의 경험이 자녀 세대에게 더는 절대적인 정답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른은 여전히 과거의 성공 공식과 협소한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이는 그들이 그 방식대로 생존하며 승리를 거머쥐었던 기억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의 크기만큼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15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스마트폰과 앱(App)이 등장했고, 거기에 따른 수익 모델도 생겼다.
10년 뒤에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는 오직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변하는 세상에 맞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이동할 것이다.
결국 세대별로 부자가 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대별로 집을 사는 방식도 다 다르다.
취업을 하는 방식도 다 다르다.
➡️ 우리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20대 초반 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내가 20대를 살아갔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반대로 필자가 40대 선배님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 분들은 그 분들만의 방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라면 이런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 글 초반에 언급했던 선배님 얘기로 돌아가보자면, 그 선배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누군가한테 조언하는 것을 조심하신다.
"내가 10년 전에 사회생활을 했던 분위기랑 지금 세대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게 또 다를 수 있고!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요즘 세대한테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겸손하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하는 말은 참고만 했으면 좋겠어. "
단순히 이분이 특별했던 것이 아니라,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조언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며 조언하는 일에 매우 신중하다.
자신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잘못된 조언으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입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말이 요즘 세대한테는 안 맞을 수도 있겠다.'
반면 사회적으로 내세울 만한 성과 하나 없이 나이만 먹은 사람들은, 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해대며 그들에게 집중되는 찰나의 권력을 즐기곤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패턴은 항상 똑같다.
"내가 나이가 많고 너보다 삶의 경험이 많잖아. 그러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
일반적으로 내세울 게 없는 어른들의 마지막 무기가 "나이"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잖냐? 그러니까 넌 내 말을 들어한다. 어른이 말을 하는데... "
➡️ 누구나 살면서 이런 말 한 번씩은 들어봤을 것이다.
앞으로 주변의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면, 이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꼭 확인해보길 바란다. 무슨 학벌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 무엇을 이뤘기에 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려고 하는지... 이런 꼰대들은 그저 그 순간 자신에게 집중되는 관심과 거기에 따라 오는 권력을 즐기는 사람이지, 가치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필자 주변에도 이런 부류의 인간이 몇 명 있다.
그들은 나이만 많을 뿐 사회적으로 이뤄낸 것도 딱히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육체적인 나이가 많을 뿐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최대한 거리를 두길 바란다.
가능하다면 인연을 끊는 것을 권장한다. 인생에 별 도움도 안 될 뿐더러 아까운 내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유난히 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결국 그 조언을 받아들여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그 인생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미국 사회에서 상대에게 실례가 되는 가장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는 바로 'How old are you?'일 것이다.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미국인들은 의아함과 불쾌함이 섞인 표정으로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인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나이 그 자체가 개인의 역량이나 인품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지 않으며, 어떠한 사회적 특권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미국에서 보낸 8년의 세월 동안, 나이를 묻는 이들의 절대다수는 역설적이게도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온 동양인이었다. 반면 유교 문화권인 한·중·일 사회에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선다. 이곳에서 생물학적 연륜은 곧 서열이자 사회적 권위로 직결된다. 시대가 변하며 나이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있으나,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갖는 유무형의 위력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 여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단 이러한 현상이 "있다/없다"로 인식하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중심의 서열 문화를 비판했다가는 자칫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최고의 접근법은 이러한 현상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나에게 유리하게 사용할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타인보다 더 지혜로워야 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오랜 직장 생활을 한 보통의 직장인이 그 경험만으로 남들보다 탁월한 통찰력을 가질 이유가 없다.
사람은 살아온 여정, 마주친 고난, 그리고 그에 대한 대처 방식에 따라 통찰력과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운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그 사람의 진정한 성숙도를 좌우한다.
용이 되고 싶다면 용을 찾아가야 한다.
이무기는 결코 용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스스로도 가보지 못한 길을 안내할 수는 없기에, 그저 잘못된 이정표를 제시할 뿐이다.
사업에 성공해 본 적 없는 이가 경영의 도를 논할 수 없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지 못한 부모가 올바른 부모의 역할을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다.
무언가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반드시 해당 분야에서 정점을 찍어본 이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 요식업으로 승부를 보겠다면 백종원을 찾아야지, 분야가 전혀 다른 IT 스타트업 대표를 찾아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검증된 이의 조언을 얻기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하거나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가가 무엇이든, 제대로 된 멘토에게 얻는 지혜는 인생을 바꿀 값진 자산이 된다. 또한 성공한 이에게 닿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접근하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 한 사례를 보자.
결혼을 앞둔A는 절친B로부터 예비 신랑의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타인의 말에 쉽게 휘둘렸던A는 결국 갈등 끝에 파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뒤B는A의 전 약혼자보다 조건이 훨씬 좋지 않은 남자와 결혼해 아무 문제 없이 살고 있다.
➡️ 만약B가 이미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면 그 조언은 참고할 가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미혼이었던B는 조언자라기보다 오히려 잠재적 경쟁자에 가까웠다.
➡️ 당시B는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할지 조언할 자격이 없었다.A는 친분이라는 이름에 속아 잘못된 이에게 길을 물었고, 그 참혹한 결과는 오롯이A혼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몇 년 전,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던 이영표 선수의 강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노력이 재능을 이긴다"는 내용이 강연의 핵심이었는데, 이에 대해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반론을 제기하며 논란이 일었다.
사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이영표 선수의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성공에 있어 재능의 힘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듣는 대상을 생각해보면, 왜 이영표 선수의 말이 틀린 게 아닌지 알 수 있다. 강연의 대상은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이다. 아직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명확히 모르며, 성장을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세대다. 만약 이 학생들에게 "성공에는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면 어떻게 될까?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재능 탓으로 돌리며 학업을 포기하는 핑계로 삼을 것이다. 이영표 선수는 학생들이 이런 합리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아직은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나이인 만큼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듯 어떤 말이든지 듣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일반적으로 틀린 말도 옳은 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속담이나 명언을 가져다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합리화하거나, 맥락 없이 아무 상황에나 대입하곤 한다.
➡️ 만약 이 강연의 대상이 성인이었다면, 그의 발언은 격려가 아닌 현실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선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언의 개념을 확장하여,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권유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주변 지인이나 가족의 사례까지 포함한다면 끝도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두 가지 사례를 꼽아보겠다.
- 사례 1)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이들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았다.
그중 절친했던H는 이른바 '멍멍코인'에 전 재산을 투입했음을 인증하며 나에게도 매수를 제안했다.
그는 진심 어린 어조로 "네가 가장 친한 친구라서 특별히 알려주는 것"이라며 나를 설득했다.
평소 투자에 보수적이었던 나는 끝내 응하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그 코인은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만큼 폭락했다. 친구H는 투자금 대부분을 잃고 나서야 멈췄다.
- 사례 2)
과거 MBC에서 방영되었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함께 출연하며 각별한 사이였던 정준하가 사석에서 동료 노홍철에게 특정 종목의 투자를 권유했던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당시 정준하는 악의 없이, 진심으로 해당 종목이 성공할 것이라 확신했기에 소중한 동료에게 추천한 것이었다. 정준하 본인 또한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을 만큼 그의 의도는 순수했다. 하지만 그 진심이 불러온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는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진심은 진실을 보장하지 않는다.
➡️ 그 사람의 진실성이나 정직함을 믿지 말고, 그 정보의 팩트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
“이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 믿어 봐야겠다.”
➡️ 이게 가장 위험한 생각이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의 경우, 어떤 사람이 확실한 정보라며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투자했다고 해도, 그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투자하면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누군가에게 속고 있을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대부분 그렇다.
원래 진짜 고급 정보는 개미들에게까지 절대 흘러나오지 않는다. 개미들에게까지 정보가 풀렸다는 건, 그건 이미 고급 정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업가들은 “잘 되면 사업가”고 “안 되면 사기꾼”이라고 불린다.
잘 돼서 사업가가 된 사람이나 망해서 사기꾼이 된 사람이나, 결국 둘 다 진심으로 믿고 말한 것이다.
필자 혹은 필자의 가족에게 투자하라고 했을 때 사기꾼으로 전락한 사람도, 본인이 대성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그렇게 될 줄 몰랐을 뿐이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부모가 진심으로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조언이라 해도, 그 의도가 선할지언정 내용 자체가 반드시 옳다는 보장은 없다.
부모님도 결국 인간인지라, 어디선가 주워들은 소문이나 오래된 경험에 기반한 잘못된 지식을 진심 어린 태도로 전할 때가 많다.
➡️ 이런 점에서 오히려 부모님의 조언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과 나의 인생에 “올바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셨는지 여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특히 부모님이 현실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성취가 부족하거나, 팔랑귀(귀가 얇은) 성향이라면 그 조언의 가치는 더욱 의심스러워진다.
실제로 직접 경험하거나 들은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 유명 유튜버는 평생 유튜브를 해본 적도 없는 어머니가 이런저런 콘텐츠에 대해 요청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는 것 때문에 짜증난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아는 여사친 부모님은 자신의 딸에게 결혼하지 말고 평생 혼자 사는 게 속편하다고 하시며, 결혼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신다고 한다.
친구 집의 할머니는 아들에게 '가족끼리는 도와야 한다는' 이유로 사촌의 사업에 투자하라고 조언했고, 그 결과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부모님의 조언은 참고 자료로 삼되, 스스로 검증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진짜 '잘 되는' 길이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의 경험 부족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 관계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내가 믿는 유명인의 지인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 예시)
내가A를 신뢰한다고 해서,A의 지인을 무작정 믿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 지인이 투자 등을 권유한다면, 반드시 철저히 검증하라.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의 일상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 사진 요청, 사인 요청, 지인 소개 등으로 바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를 사기꾼인지 여부까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반면 사기꾼들은 이런 유명인과의 '인맥'을 과시하며 자신을 포장하고, 사람들을 속인다.
그래서 “나 누구 안다” 하며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설령 사기꾼은 아니더라도, 자존감이 낮거나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 바꿔 말하면, 나 자신도 인맥을 과시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럴 때마다 사주나 타로, 관상 같은 것들이 달콤한 유혹처럼 다가온다. 데이트 코스로 가볍게 즐기거나 지친 마음을 달래는 '심리적 비타민' 정도로 활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문제는 이것들이 삶의 설계도가 되어 결정을 좌우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실제로 주변에서도 안타까운 풍경이 심심치 않게 펼쳐진다. 서로의 성격과 가치관이 잘 맞아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 단지 '궁합'이 안 좋다는 이유로 흔들리고, 심지어 관상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에 휘둘려 상대에 대한 확신을 잃기도 한다. 아이의 탄생이라는 숭고한 순간조차 철학관에서 받아온 점괘에 맞춰 수술 시간을 정하는 부모들도 많다.
이렇듯 점술과 미신에 과몰입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이성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마비시킨다.
살다 보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때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대신 "타로 카드가 이렇게 나왔으니까", "우린 원래 안 맞는 사주니까"라며 책임을 운명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당신이 진짜로 바꿀 수 있었던 소중한 관계와 기회들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태도가 위험한 이유는 객관적인 분석과 합리적인 추론으로 대안을 찾는 대신 초자연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순간 이성적인 사고는 마비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한 바로 그 지점에서 광기 어린 맹신이 시작되는 것이다.
둘째, 정교한 심리 기술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소위 '용하다'는 소리를 듣는 곳일수록 '콜드 리딩(Cold Reading)'이라는 기술에 능하다. 상대의 관상, 옷차림, 말투를 통해 정보를 얻어낸 뒤, 누구나 겪을 법한 고민을 마치 특별한 예지력으로 알아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결국 당신의 대답을 재료 삼아 만들어진 가짜 운명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셈이다.
점쟁이가 용하다면 왜 길거리에서 장사할까?🤔
만약 그들이 정말 미래를 완벽히 꿰뚫어 본다면, 왜 타인의 운명을 상담해주며 생계를 이어가겠는가? 진정한 예지 능력이 있다면 이미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호구들의 시장에는 사기꾼이 몰린다👫
최근 무속인의 수가 8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영적인 힘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시장과 그곳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결과이다. 세상 어디든 기댈 곳 없는 간절한 마음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그것을 노리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당신의 인생은 카드 한 장이나 생년월일 여덟 글자, 혹은 얼굴의 생김새로 결정되지 않는다. 궁합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신뢰이며, 관상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통찰력이다. 앞으로 어려운 고비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나쁜 운명' 탓으로 돌리지 말자. 대신 이성적인 판단과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
당신 삶의 주인공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다. 점쟁이의 입이 아닌, 당신의 손끝에서 진짜 운명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정답을 아는 것과 실제 상황에서 그걸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훈수 두는 사람들(훈수충)은 마치 자신이 페이커나 제갈공명이라도 된 양, 남의 선택을 비난하며 조언을 쏟아낸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단언컨대 올바른 선택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대개 남의 인생에 훈수 두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인생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드물다.
🚨 타인의 문제를 멀리서 지켜보며 훈수 둘 때와, 본인에게 직접 닥친 문제를 해결할 때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정답을 안다 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다 보면 정신적 압박과 어려움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아는 바를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남이 실패했다고 훈수 둘 이유도 없다.
그간 여러 경험을 거치며 몸소 깨달은 점들을 정리했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들을 질서 있게 정리해보고자 함을 다시 한 번 밝힌다.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책임져 줄 수도 없다.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는 온전히 본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 또한 온전히 본인의 몫임을 명심하자!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