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다닐동안 뭐하셨어요?

신하니·2022년 8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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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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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인재학부

나는 어릴때부터 게임에 거의 미쳐있었고, 추후 진로도 게임과 관련됐길 바랐다. 그래서 게임회사에 들어갈 수있는(있을 것 같은) 학과로 가고 싶었다. 그게 문과에서는 문화콘텐츠학과, 이과에서는 컴퓨터공학과였다. 정확히는, 갈 수 있다면 문화콘텐츠학과를 가되 문과는 게임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가능하면 컴퓨터공학과로 옮기자! 였다.

재수는 나름 성공적이었고, 내가 가고 싶은 학과는 하향으로 넣어도 붙을 정도가 됐다!(물론 컴퓨터공학과는 애초에 지원이 안되고, 문화콘텐츠학과의 경우) 그러고나니 애초에 1학년부터 이과 과목을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없는지 찾게 됐다. 이때 산업보안학과와 융합인재학부가 그 후보에 들어온다. 학과 이름이 정확치는 않은데, 산업보안학과는 4년 전액 장학금을 주고 문과/이과 구분없이 뽑는 곳이었다. 위치가 우리집에서 멀었지만, 붙길 바랐다. 하지만 예비 1번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융합인재학부, 융합인재학부는 자율전공에서 변화된 학과였는데(지금 생각하면 굳이 왜?) 문과/이과를 따로 뽑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은 자유였다. 1순위는 떨어졌고, 2순위에 가게 됐다. 우리집에서 가까워서 좋았다! 게다가 평지였고.

융합인재학부에서 문과/이과 크로스로 배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과에서 이과를 배우는 경우는 내가 유일했다. 수학 그리고 물화생 중에 두 개를 골라서 배워야했고, 컴퓨터 공학과 그나마 관련이 있을 것 같은 물리, 화학을 선택했다. 이 선택에 후회가 있는 건 아니지만...

코딩을 생각하고 온 만큼, 기획/코딩/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소모임(학과 동아리)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니 엄청난 소모임이다. 그리고 내 대학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고, 정말 고마운 (구)남자친구도 만났다. 운 좋으면 이번주에 이 친구랑 방탈출을 하겠지^__^ 룸인어스를 통해 예약을 못해서 아쉽네~

안녕, 코딩!

각설하고, 이 소모임에서 첫 코딩을 접했다. 파이썬...! 하지만 간단한 구구단/가위바위보 수준의 코딩도 할 수 없었고... 하필 거기엔 코딩이 취미인 천재급 동기가 있었다. 근데 그땐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아이가 평범한 수준으로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난 정말... 코딩이랑 안 맞는구나 생각했다. 친구도 그렇게 느꼈는지 우리 둘은 자연스레 코딩을 그만두게 됐다.

다시 문과로

그 후 2학년, 이과는 아닌 것 같고... 형법 등이 꽤 재밌어보였고 문과쪽으로 넘어갔다. 학과가 공무원 준비하는데 좀 특화된 학과였고, 아빠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자고 하셨었기에 그쪽으로 관심이 갔다.

이것저것

그 와중에 오픈컬리지라는 플랫폼을 통해 베이킹, 3d 프린팅 등을 배웠다. 나는 당시 중국에서 직구하는 걸 좋아했다. 그때는 육공다이어리가 완전 사무적으로 생겼었다... 예쁜건 해외에서 직구를 해와야했었다. 내가 직구하던 사이트(타오바오)엔 다양한 육공다이어리들을 팔았고, 이걸 판매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공동구매를 빙자한 블로그 판매(...)를 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있었는데 입금확인 등이 많이 번거로웠고, 소액이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세금을 피하게 되는 일이라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원래 투명 육공다이어리를 쳤을 땐 아무 상품도 나오지 않았었고, 그래서 내가 올린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랑 같이 문구 만드는 일도 했다. 이건 잘 안됐다...ㅎㅎ 아무튼 꽤나 열심히했다. 그러나 너무 생각없이 들어간 시장이었고, 나를 따라서 상품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뒤처졌다. 그 사람들은 많았고, 더 싼 값에 올렸고, 조금 더 전문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로 육공다이어리는 보급화 됐고 큰 기업에서까지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 역사 속에서 한 몫 한 것에 속이 많이 쓰렸었지만, 지금은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땐 정말 어렸다... 23살이었으니까.

공무원 시험 준비

그 이후엔 자연스럽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아빠도 같이 공부했으므로 그냥... 하게 되었다. 공무원은 절대 싫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일은 정말 모를 일인가보다. 처음엔 게을렀지만 점점 진짜 붙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몇 달간 열심히했다... 나름. 결과는 아빠는 붙고 나는 떨어졌다. 그래도 아빠가 붙어서 기뻤다. 날 도와주려고 공부한 시험에 붙어버리다니, 아빠는 천잰가보다.

2019년 1학기

아빠가 아팠다. 악성중피종, 희귀암이었다. 세 달 정도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세 달이었다. 나는 믿고 싶지 않았고, 아빠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어서 1년은 살 수 있다고 거짓말했다. 금방 들통났지만... 난 아빠를 제대로 돌봐드리지도 못했으면서 휴학은 했다. 미싱을 많이 했다. 미미녀(미싱에 미친 여자,,,)라는 별명도 얻었었다. 이때도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구나 싶다. 아무튼, 나는 미싱을 돌리고 아빠 옆에서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2019년 2학기

휴학을 했어야 했단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휴학을 했으면 정말 빠져나올 수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5개의 수업을 들었고 3개의 수업에서 F를 맞았다. 이렇게 학점이 나빠본 건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좋아하는 수업은 A+이었다. 이 강의를 들을 땐 정말 행복했다.

그 이후,

2020년은 코로나가 터졌고,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었다. 주로 전시, 박물관, 테마파크 기획 등에 대해 배웠다. 캡스톤 디자인 수업(졸업작품)도 들었다. 코로나여서 온라인으로 해서 아쉬웠지만, 상도 받았다. 이때 팀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보면서 내 부족한 점에 대해 깨달은 것 같다.
2021년엔 또 작게 사업을 해보려했었다. 휴대폰 케이스를 사려다가 휴대폰 케이스 만드는 기계를 사버렸던... 그냥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2021년 말에 게임 관련된 것을 배우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게임개발을 배우게 됐고, 코딩에 제대로 입성했다! 그러나 자전거 사고도 났었고, 눈에 보이는 것을 내가 직접 구현하는 게 좋았기 때문에, 프론트엔드를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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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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