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스터디원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AI보다 어떤 점이 나은가요?”
그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대답하기 어렵다.
AI 에이전트, 바이브코딩, 온갖 생산성 툴들과 생성형 모델들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일하는 존재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이와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대체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AI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대체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결국 '대체불가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최근의 나는 단순한 개발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세상에 내놓기 위해 일하고 있다.
결국 '나'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브랜드도 대체불가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롱블랙 스토리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제는 마치 내 고민을 읽은 것처럼 정확했다.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

다양한 분야의 연사들이 나와 똑같은 질문에 대한 각자의 해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AI 시대에도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브랜드들, 자기만의 이야기를 쌓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하나의 힌트를 얻었다.
대체불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스토리’다.
이 글에서는 그 컨퍼런스에서 얻은 메시지를 바탕으로,
왜 스토리가 중요한지,
어떻게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팔 수 있는지’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이야기를 갖는 사람만이 결국 남는다.
나 역시 지금, 나만의 대체불가능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 한다.
롱블랙 스토리 컨퍼런스에 참여하면서 가장 많이 반복해서 들은 단어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바로 ‘이야기’였다.
AI도, 기술도, 데이터도 결국은 이야기를 잘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말이 유독 많았다.
기능은 대체될 수 있지만, 스토리는 대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송정훈 유타컵밥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파는 건 컵밥이 아니라, 정과 덤과 흥이에요.”
미국 현지에서는 낯설고 무겁기까지 한 컵밥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문화적 감정과 태도가 사람들에게 전해졌기에 줄을 서서 사게 되는 브랜드가 됐다.
그는 손님에게 서비스를 줄 때 무릎을 꿇고 눈을 마주본다고 했다.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을 건네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말이 나에게 깊게 남았던 이유는, 기술이나 품질이 아니라 스토리가 감정을 전이시키는 핵심 장치라는 걸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다.
정, 덤, 흥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마케팅 포인트가 아니라, 유타컵밥이 세상과 연결되는 이야기의 언어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임혜순 투썸플레이스 CMO는 “브랜드는 반전을 품어야 각인된다”고 말한다.
“케이크에는 대부분 이름이 없지만, 우리는 ‘스초생’을 만들었어요.”
‘스초생’(스페셜 초콜릿 생크림)은 원래 있던 메뉴였다.
하지만 고객 피드백과 이름 없는 제품이라는 낯설 만큼 익숙한 빈틈을 포착해, 그 안에 이름과 서사를 부여하면서 투썸의 대표 키워드가 되었다.
작고 사소한 디테일에 이야기의 씨앗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브랜드가 기억되려면 낯선 시선을 덧입혀 기존의 틀을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반전은 결국 고객의 기대를 뒤엎는 감정적 전환이며, 그 감정은 곧 ‘이야기’로 각인된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건 '스토리는 브랜드가 사람의 마음에 머무를 수 있는 유일한 장치'라는 점이다.
브랜드는 기능적으로 대체될 수 있어도, 이야기가 남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진짜일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따라오고, 다시 퍼뜨린다.
결국 ‘대체불가함’은 기술력이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좋은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만의 이야기는 어떻게 쌓아갈 수 있을까?”
“스토리를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잘 쓰는 법’에 대한 감각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그럴 땐 눈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임혜순 CMO는 FGI(소비자 인터뷰) 현장에서
메인 세션이 끝난 후 나오는 한 마디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관찰 당할 때보다, 관찰 받지 않는 순간에 진짜를 드러낸다.”
'스초생'이라는 작은 성공은 단지 네이밍 전략의 승리가 아니다.
그는 제품 개발이나 비주얼보다도 “이 제품에 왜 이름이 없지?”라는 아주 사소한 관찰에서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아냈다.
대중은 대단한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아 맞아, 나도 저거 느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에서 반응한다.
스토리는 그렇게 ‘누구나 봤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것을 건드릴 때 탄생한다.
관찰은 스토리의 출발점이고, 좋은 관찰자는 결국 감정의 구조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관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다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지성원 현대자동차 브랜드마케팅 본부장은 ‘헤리티지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모두가 0에서 출발하게 되었고, 그때 현대는 과거의 ‘포니’로 돌아갔다고.
당장 잘 팔리는 모델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다.
“브랜딩은 지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 내가 만드는 브랜드는 지금까지 무엇을 관찰했고, 무엇을 축적했는가?
다카하시 야스노리 CCC 대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좋아하는 것을 DB로 남기는 것이, 지적 자본이 된다.”
츠타야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사람들의 ‘좋아함’을 수집하고 설계하는 브랜드였다.
사람들이 그 공간에 머무르며 책을 사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그곳에 머무를 만한 이야기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관찰하고, 반복하고, 저장하는 것.
실패한 기획서, 실행되지 못한 아이디어, 미완성의 생각들.
이 모든 것이 결국 스토리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그 재료는 어느 날 문득,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로 변할 수 있다.
스토리는 일회성이 아니라 퇴적층이다.
그 사람의 감정, 관심, 태도, 선택이 켜켜이 쌓이며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축적의 감각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유니클로의 수석 경영, 키노시타 타카히로는 이렇게 말했다.
“AI가 도출해내지 못하는 답을 끌어내는 것이 진짜 편집자이고, 스토리텔러다.”
그는 스토리와 세계관, 캐릭터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진짜 이야기는 결국 사람과 부딪힌 현실에서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스토리를 쌓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귀 기울여주는 건 아니다.
스토리를 ‘팔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즉, 그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행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돌고래 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은 그 점에서 완벽한 예시였다.
광고계의 이방인이라 불리는 그는 늘 광고라는 형식이 지닌 고정관념을 뒤흔들어왔다.
“왜 포스트 돌고래유괴단은 안 나오냐고요?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플레이니까요.”
그 말이 처음에는 단순한 자부심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과정들을 듣다 보면, 그건 자부심이 아니라 확신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관찰하고 축적해온 감각들을 ‘문법’이라는 방식으로 팀에 내재화했고, 그 문법을 이해한 신입들이 시간이 지나 감독이 되었을 때 그 이야기는 회사 전체의 언어가 되었다.
이건 단순히 잘 만든 광고가 아니라, “이 브랜드는 왜 이런 방식으로 말하는가?”에 대한 서사적 일관성이다.
돌고래유괴단은 한 편의 광고가 아니라, 문법이자 세계관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관은 결국 ‘우리가 아니면 못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각인됐다.
이와 또 다른 방식으로, 이승재 아이디엇 대표는 광고의 형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광고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걸 우리는 솔버타이징(Solvertising)이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브랜드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해결책에 더 반응한다.
그래서 그는 ‘좋은 이야기를 쓰는 일’보다, ‘좋은 문제를 발견하는 일’이 먼저라고 했다.
광고라는 형식조차 벗어나 그저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행동 자체를 이야기로 만드는 방식.
그건 매우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었다.
스토리는 결국, 사람을 돕는 실천과 연결될 때 가장 잘 팔린다.
두 사람의 접근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관찰하고 쌓은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 방식이 문법이든, 행동이든.
나 또한 지금까지의 경험, 감정, 실패, 성찰을 쌓아왔다면 이제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말할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언어’로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야 비로소, 내가 가진 이야기를 사람들은 기억하게 될 것이다.
사실 아직 나는 내 이야기가 얼마나 특별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매일 보고 겪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연결하고, 의미화하려 애쓰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관찰하고,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걸 쌓아가려 한다.
그동안 쌓은 작은 실패들,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 매번 ‘이게 맞을까?’ 싶었던 시도들 역시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건네고, 익숙함을 뒤집어 질문을 던지고, 한 사람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더 많이 관찰할 것이다.
작은 불편, 감정의 결, 사소한 움직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오래 축적할 것이다.
성과가 나지 않아도, 지금은 기억되지 않아도, 언젠가 이야기로 돌아올 걸 알기에.
그리고 실천할 것이다.
내가 가진 언어로 문제를 해결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만들어가기 위해.
그게 내가 생각하는 ‘대체불가한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결국은 남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쓰는 중이다.
글을 쓰다 보니, 예전에 썼던 글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된 내용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