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았다. 뭐든 해보려고 링커리어와 같은 대외활동 사이트들을 열심히 뒤졌다. 그러던 중 큐시즘 24기 모집 글을 보게 되었고, 기업 프로젝트와 실무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다는 커리큘럼을 듣고 지원하게 되었다. 근데 이때까지 나는 코딩을 학교에서 배운 C, Java, Python만 사용할 줄 알았고, 지원서에도 이 내용을 바탕으로 지인에게 RN을 배우고 있다는 식으로 썼던 것 같다.
큐시즘 24기의 기업 프로젝트는 개발을 직접 하지 않아서 사실 무슨 내용으로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카찹이라는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 같은 조를 했던 친구가 30기에 다시 지원했을 때 운영진으로 있어서 친하지는 않았지만 반가웠다.
밋업 프로젝트는 헬스케어 플랫폼을 만들었는데, 이때 나를 포함해 같은 개발 파트 분들이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개발의 A to Z를 경험해보자는 마인드로 다 같이 풀스택을 했다. 사실 나는 개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같이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리고 이 당시에 학과 축구 동아리 형이 석사였는데, 같이 연구실에 와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고 제안을 해줘서 드론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연구실 학회 발표와 밋업 발표가 겹치게 되어서 같은 팀 개발 파트 분들이 얘가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학회 발표 가서 발표가 끝나고 교수님이 다 같이 술 사주신다고 했는데, "죄송하지만 잠깐 코딩 좀 하다가 마무리하고 나가겠습니다"라고 어렵게 말씀드리고 밋업 마무리를 얼른 하고 나가서 교수님과 술을 마셨었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코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포기하려 했었는데, 큐시즘 24기에서 만난 밋업 팀과 연구실 형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를 배웠던 것 같다. 24기에는 노력을 배웠고, 큐시즘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24기 끝나고 1~2주 뒤에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24기 큐시즘 때 남자 중에 제일 막내였고, 아마 군대 안 갔다 온 사람이 나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큐시즘의 마지막 행사인 '큐시즘의 밤' 때 행사를 진행하고 뒷풀이를 가서 앉아있는데, 형들이 "군대 별거 없다"라고 놀렸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군대가 너무 걱정이 많았는데, 형들이 저러고 놀리니까 진짜 큰일 났다 싶기도 하고 별거 없나 싶기도 했는데, 경험한 지금 생각해보니 진짜 별거 없었던 것 같다.

23년 10월 전역을 하고 편입을 했다. 군대에서는 개발에 대한 공부는 잠시 접어두고 인공지능을 공부했었다. 그래서 연구실을 들어가고 싶어서 교수님들과 면담을 진행했는데 잘 안됐다. 그러던 중 편입 멘토링을 진행하던 친구가 학교에서 해커톤이 열리는데 한번 나가보라고 해서 리액트 강의를 일주일 정도 듣고 해커톤에 나가서 개발을 했다. 이때까지도 개발을 잘 몰라서 나는 퍼블리싱만 하고 다른 프론트 분이 API를 연동해주었다. 그러고 이때 이후로 개발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서 큐시즘 30기에 다시 지원하게 되었다.
큐시즘 OB는 따로 면접을 보지 않아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근데 OB 지원 기간을 놓치고 YB로 지원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큐시즘은 24기 때보다 더 떨렸고, 내가 말을 그렇게 못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알았던 내용도 제대로 얘기 못 하고 내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 했던 것 같다. 사실 왜 붙었는지 모르겠다. 이때 같이 면접 들어간 친구가 말을 너무 잘해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다. 그리고 이 친구가 면접장에서 나오고 역까지 같이 걸어갔는데 계속 들러붙어서 친해졌다. 큐시즘에서 만난 동생들 중에 제일 친한 동생인 것 같다.
30기 기업 프로젝트는 SKT Devocean 마이페이지 개선 과제를 진행했다. 이때 24기 같이 했던 친구가 같은 팀이 되었고, 31기 부학회장, 경영총괄팀장까지 같이 한 두 명도 같은 팀이었다. 또 맨날 장난치고 놀리는 동생도 같이 팀이었는데 정말 재밌는 팀이었던 것 같다. jQuery를 사용해 데보션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이거에 적응하느라 개발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발표하고 데보션 측에서 이를 받아들여 웹사이트에 적용을 해주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결과물에서 약간의 수정이 있긴 했지만, 지금의 문제를 정의하고 납득시킬 만한 기획을 짜온 기획자들, 혹할 만큼 잘 나온 UI를 만든 디자이너들, 그걸 구현하여 눈앞에 보여준 개발자들까지 정말 고생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다. 다 같이 모인 지 좀 지난 것 같은데 다들 한국에 들어오면 조만간 보고 싶다.
밋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와중에 재밌는 해커톤을 발견했고 4인이 팀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밋업 개발팀이랑 다 같이 참여하기로 하고 신청서까지 단번에 제출했다. 약 100개의 팀이 참가 신청하고 10개의 팀이 해커톤을 했는데, 적은 시간에 쓴 우리의 기획서가 뽑혀서 해커톤을 하러 가게 되었다. 부산에 가서 배를 타고 가면서 하는 해커톤이었는데, 형이랑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가기로 했다.
근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행기를 놓쳐서 배를 못 탈 뻔했는데 서울역 지하부터 KTX 타는 곳까지 1분 만에 뛰어가서 겨우 KTX를 타고 부산에 가 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를 타고 가면서 해커톤을 하고 오사카에 내려서 형이랑 누나는 쇼핑을, 나랑 동생은 같이 먹을 걸 먹으면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오면서 코딩을 하는데 배멀미 때문에 토를 하고 죽는 줄 알았다. 와서 발표를 하고 상을 타고 부산에서 이틀 놀고 집에 복귀했다.
상도 타고, 놀기도 놀고 재밌었다.

30기는 그냥 코딩 그 자체에 대해서 배운 것 같다. 프론트도 잘하는 사람들과 같은 팀을 하고 백엔드도 잘하는 사람들과 해서 소통적으로나 코딩적으로나 많이 배웠다.

경영총괄팀 팀장을 맡게 된 형이랑 부학회장을 하게 된 친구랑 같이 한 기수를 더 하고 싶어서 이번에는 운영진으로 큐시즘을 하게 되었다. 맡게 된 역할은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역할이었는데, 이런 거에 관심이 없었어서 걱정이 되었다. 운영진으로 같이 하게 되었기 때문에 YB 운영진들, 학회원들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이 경험도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아직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하기에는 부족한 실력이기 때문에 이 사람과 같이 하면 좋은 감정이 남겠다는 사람들을 뽑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기획팀으로 하게 된 친구들과 처음 회의를 진행하는데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 OT를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3~4일은 대면으로 만나서 같이 행사를 기획했다. OT를 진행하고 학회원들 반응이 좋아서 고생했던 게 다 잊혀질 정도였다.

OT를 기획하던 도중 면접이 있어서 면접을 보고 왔는데 바로 합격했다는 문자가 왔다. 같이 준비하던 친구들이 깜짝으로 케이크도 사줘서 고마웠다. 운영진 일과 인턴을 같이 하는 게 힘들었는데, 같이 하는 친구들이 열심히 같이 준비해줘서 잘할 수 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같이 놀고는 하는데 맨날 만날 때마다 한 명 이상이 회의가 있어서 놀다가 회의하고 다시 놀고를 반복한다. 이제 회의 없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1기 때는 약시 분들을 위한 크롬 익스텐션을 개발했다. 큐시즘은 웹 프론트엔드 파트로 이루어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익스텐션을 개발하는 것이 어려울 거라 생각해서 해당 아이디어에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나는 어려운 걸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해서 지원해서 하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과연 약시 분들을 위한 솔루션을 냈을 때 실제 사용자의 시각으로 UT를 진행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기획 사람들이 열심히 뛰어서 여러 센터들에 가서 실제 약시를 겪고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사용자의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보는 시각을 길러줬던 것 같다.
그리고 31기는 큐시즘의 밤이 내 생일이랑 같아서 축하도 많이 받았다. 케이크를 하루에 3번 받는 건 처음이었다.
여러 졸작, 인턴, 큐시즘, OSSCA 등등 다양한 일정들을 소화하면서 일정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바쁘다면 바쁜 일정이었지만, 어느 하나 망치지 않고 잘 소화해낸 것 같다.

31기를 운영진으로 보내고 32기를 시작하기 전에 운영진으로 같이 하자는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운영진으로 하면 내 취업 준비에 집중을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거절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운영진으로 할 때는 다른 학회원들에게 다가가기 더 쉬웠던 것 같은데 학회원으로 하니 다른 학회원들에게 말을 걸기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다른 학회원들이랑 더 못 친해져서 아쉬웠다. 그래도 같은 팀으로 한 사람들이랑은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다.
거북목 개선을 돕는 온디바이스 서비스 '거부기린'을 만들었다.
사실 이번에도 이 프로젝트를 한 이유는 좀 어려운 것 같아서이다. 흔히 접해보지 못했던 기술인 일렉트론을 사용한다는 점과 프론트에서 거북목 탐지를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정말 이 아이디어를 하고 싶어서 주변에 일렉트론을 사용하는 회사에 다니는 형이 있습니다! 라고 하며 어필을 했다.
그리고 뽑히고 나서 폴더 구조를 어떻게 잡느냐를 고민했는데 터보 레포로 일렉트론 앱, 웹 앱, UI 패키지, API 패키지를 분리해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웹을 초기 MVP로 잡고 일렉트론을 나중으로 둬서 UI 패키지와 API 패키지를 분리해놓으면, 나중에 일렉트론을 작업하기 편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개발을 하던 도중에 그냥 일렉트론과 웹을 투트랙으로 병렬로 작업하기로 했고, 일렉트론의 렌더러를 웹사이트로 만들어서 개발하기로 했다. 여기서 터보레포를 유지하기에는 작업 비용이 너무 큰 것 같아, 일반적인 레포로 다시 구조를 틀었다. CI/CD 세팅도 터보레포 맞춰서 해놨는데 다시 구성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미디어파이프로 거북목 탐지하는 로직도 직접 구축해서 유저 데이터를 바탕으로 테스트도 진행했는데, 혼자 개발하면서 유저한테 테스트를 하기 전에 테스트를 혼자 진행해봤는데 이거 때문에 거북목이 된 것 같다.

배운 것보다 자신감을 얻었다. 32기를 진행하면서 링크드인으로 스타트업 커피챗 요청도 오고, 다른 학회원들이 "그래도 오래하셨으니까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라며 묻기도 했다. 개발을 아직 많이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뭐라도 오래 하니까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큐시즘, 한국대학생IT경영학회를 4기수를 마치며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나는 큐시즘을 이런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다른 큰 동아리들보다 많이 알려져 있다고는 못 하겠지만, 정말 좋은 동아리인 것 같다. 큐시즘을 4기수, 2년 동안 하면서 얻은 것이 정말 많다.
내 대학 생활을 함께하고, 개발의 시작이었던 큐시즘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24, 30, 31, 32기 분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큐시즘 명예 학회원 호우님의 멋진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