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2024년은 가장 행복했고, 가장 불행했던 한 해였습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떻게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불행할 수 있었는지
작년의 나는 위의 문장으로 2024년의 회고를 시작했다.
2024년의 끝자락에서 나는 평범한 일상이 유난히 그리웠고, 심적으로 만신창이였다.
그래도 제이슨, 벼리와 함께한 부산 여행 그리고 친구와 다녀온 제주도 여행 덕분에 조금은 나은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025년은 2024년의 생각지도 못한 일로 마음도 몸도 많이 지친 상태로 시작되었다.
연말에 휴식을 취하면 25년의 시작이 조금은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칠 때로 지친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점점 더 지쳐갔다.
이런 상태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제대로 뛰어 든 취업 시장은 그리 쉽지 않았다. 사실 집에 또다시 무슨 일이 생겨 내려가야 할까 봐 서류를 넣는 것조차 망설였고, 그래서인지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지쳐 있던 나는 취업을 준비하며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서서히 무너져 갔고, 어느 순간엔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조차 제대로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공식 표기는 ‘콘퍼런스’가 맞지만, 이 글은 개인 회고인 만큼 편의상 ‘컨퍼런스’라고 표기합니다.)
무기력한 나날들을 보내는 중에 Google Developer Groups Korea Android에서 주최하는 Super.init(version=6) 발표자 모집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에는 단순히 2025년에 이루고 싶은 일 중에 컨퍼런스 발표가 있었기에 "발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스쳐 지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 갇혀 있던 내가 밖으로 나갈 계기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 컨퍼런스가 어둠 속에서 헤매던 나를 밖으로 이끌어줄 작은 한 줄기 빛이라고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컨퍼런스 연사자로 신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레아께 조언을 구해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 나의 경험을 최대한 담아 신청서를 작성했다. (레아 짱!!🥰)
감사하게도 메인 세션의 발표자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받고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내성적인 성격의 나에겐 컨퍼런스 발표는 큰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20분 동안의 발표 시간을 온전히 나 혼자만의 힘으로 채워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발표 준비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 이 경험은 계속해서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2026년에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양한 컨퍼런스의 발표자로 참여해보고 싶다.
[발표자료] '무차별 LGTM~👍'만 외치던 우리가 고봉밥 코드 리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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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를 계기로 오픈채팅방에서 컨퍼런스 발표와 관련된 대화를 나눌 때, 용기를 내어 내 경험을 공유했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게는 공개된 자리에서 경험을 꺼내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24년 12월부터 컨퍼런스를 많이 참여해보려고 노력했다. Super.init에서 발표자로 섰던 경험을 계기로 더 자주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비록 대부분 청중으로 참여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특히 드로이드나이츠에서 스크롤 성능 개선 세션이 기억에 남는다. 해당 내용을 참고해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해보며 좋은 경험으로 이끌었다.
초여름의 어느 날, 갑자기 왼쪽 옆구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커피만 마시고 저녁을 거른 채 너무 늦게까지 할 일을 했던 탓에 위나 장이 놀라 잠깐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증상이 요로결석, 산부인과 질환과 비슷해 보여 병원을 찾았지만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통증이 계속된다면 좀 더 큰 병원에서 복부 CT를 찍어보라고 제안해주셨다. 아프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계속 이어졌다.
규칙적이지 않은 생활이 원인이 아닐까 싶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고 건강한 식단을 챙겨 먹으며 규칙적인 삶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리한 나날이 이어졌고, 결국 최종 면접을 하루 앞둔 날에는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몸 상태가 나빠졌다.
어쩔 수 없이 인사 담당자분께 면접 일정을 미룰 수 있는지 문의드렸고, 감사하게도 컨디션이 괜찮아졌을 때 다시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그 순간, 예전에 제임스가 해주신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누군가는 지금이 바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계속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에게는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공부도 쉽지 않았다. 더 노력해도 모자랄 상황에 아프다는 이유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까지 줄어드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결국 큰 병원에서 명치부터 골반까지 CT를 찍었지만, 결과는 이상 없다는 말뿐이었다. 혹시 몰라 정형외과도 찾아갔는데, 정형외과에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심장외과 진료를 권했고, 심장외과에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심장 쪽 통증과 숨이 차오르는 느낌도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불안함만 남아 있었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한 달 정도 본가에 내려가 쉬었다. 쉬는 동안 통증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와 채용 전형을 준비하자 통증은 또 이어졌다. 간호사 친구의 조언으로 신경외과를 찾았다.
진료 결과 왼쪽 두통은 목이 많이 굽어 있어 그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왼쪽 옆구리 통증은 척추 4, 5, 6번이 휘어진 상태에서 신경을 누르고 있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장기에는 이상이 없으니 현재로서는 척추 문제를 우선 의심해보자는 의견이셨다.
그래서 요즘은 신경외과에서 신경 주사 치료를 받고, 물리치료와 약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 아직 원인은 확실하지 않지만, 주사와 약으로 통증이 줄어드는 만큼 26년에는 자세 교정과 운동, 식단 조절을 함께 하며 원인을 더 확실히 찾아볼 계획이다.
25년에 쓴 병원비만 얼마야... 아프지 말자.
앞서 말했듯이 옆구리 통증이 계속되면서 취업 준비도 쉽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으니 멘탈이 흔들렸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며 불안정한 시기가 이어졌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미웠고, 그 영향으로 스스로에 대한 의심도 커졌다.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게 없지?', '개발자를 해도 되는 걸까?' 같은 생각이 반복됐다. 책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내가 직무 선택을 잘못한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개발이 재미없어지기도 했다.
그때 제이슨이 울산에서 캠퍼스 프로그래밍을 진행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취업을 위한 공부하던 나에게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고, 제이슨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가능하면 강의에 온전히 참여해보라고 제안해주셨다.
그렇게 2박 3일간 울산에 다녀왔다. 과제를 진행하고, 페어와 이야기 나누며 개발에 집중하는 동안 오랜만에 개발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이때부터 다시 개발이 조금씩 재미있어졌고, 앞으로 공부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페어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선물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했을 뿐인데, 기분이 괜히 좋았고 묘한 감정이 남았다.
제이슨, 심지, 호두와 함께한 시간도 정말 좋았다. 각자의 고민을 안주 삼아 심지가 사준 맛있는 사케를 마시며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고,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마지막 날에는 울산 대왕암에 들러 바다도 보고 싱싱한 해산물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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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돌아온 뒤에는 책으로 먼저 개념을 익히고, 그다음 노트북으로 실습하며 복습했다. 이런 방식으로 학습을 하니 훨씬 집중도 잘 되고 공부도 재밌어졌다.
서울에 와서는 취미가 없었다. 스트레스를 피아노로 풀곤 했는데 자취방에는 피아노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사라지니 쌓이기만 했고,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러다 리니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게 되면서 4hands를 시작하게 되었다. 2-3주 간격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주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취미가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존재인 것을 깨달았다. 취미를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아프면서 한 가지 마음에 남은 생각이 있다.
취업이 다른 친구들보다 몇 달 늦어진다고 해서 내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것.
앞으로 거의 40년은 일하며 살아갈 텐데, 고작 몇 달이 내 인생을 결정짓진 않는다.
조금 늦어져도 괜찮다. 나는 그저 내 템포대로 가면 된다.
그리고 지금 출발선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인생을 규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
이런 마음가짐 덕분에, 이번 4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우리 가족에게도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봄날이 찾아오고 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평범한 일상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느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취업 준비도 마무리됐다. 2026년 1월 6일 입사를 앞두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몸 관리와 병원 치료, 여행 등을 하며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제임스가 해주신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닐 거다”라는 위로가 지금 와서 더 크게 느껴진다. 나에게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해나 진솔한 회고 잘 읽었습니다!
2025년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힘든 일들까지 이겨내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특히 올 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니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올 해의 좋은 마무리가 내년에도 그대로 이어지길 바랍니다!!